2025년 10월 16일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등교 준비를 하는 아침, 표정은 뚱하고 목소리는 저기압인 둘째에게 남편이 물었다.
"그냥... 짜증 나..."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표정에 쓰여있다.
'나 곧 운다? 나 운다?!'
옆에 서있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팔을 벌려 안았다.
아이가 말했다.
"남자애들 짜증 나. 내 성격이 변하는 것 같아. 그러면 학교 다니기 힘들어지는데... "
터져 나오는 감정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우리 둘째는...
사춘기인가 보다.
부쩍 짜증 난다는 말이 늘었고, 이유를 물으면 콕 집어 말하지 못한다.
엄마에게 투덜댔다고 말 함부로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울기도 한다.
(투덜댄다고 해봤자 가소로운 수준이지만...)
자기도 자기의 그런 행동이 싫다고 조절되지 않는 감정에 속상해한다.
나는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진심 어린 상담을 해주면 좋겠는데 오늘은 특히 웃음을 참는데 실패했다.
문득 너무, 귀여워서...
웃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아이를 다독였다.
"지금은... 감정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정상인 시기야. 막 눈물도 나고, 막 화도 나고, 그러다 갑자기 또 신나고 그래. 너네 언니는 너무너무 울어서 학원도 몇 달 쉬었잖아."
그렇다. 첫째 아이의 사춘기는 더 침울하게 왔었다.
울면서 자기가 왜 우는지 모르겠단다.
그런데 그 눈물의 양이 살짝 훌쩍이는 정도가 아니다.
주르륵 소리도 없이 흘러내린다. 계. 속.
학원 수업을 들을 수가 없기를 며칠.
당분간 모든 학원을 끊고 쉬게 해 주었다.
그 질풍노도의 시기가 지나니 아이는 조금 더 성숙해지고 학원으로 복귀도 했다.
짜증 나는 데 이유를 알 수 없고, 이유를 모르니 더 화가 나고, 화를 주체할 수 없어 눈물로 흐른다.
우리 아이들은 나를 닮았다.
내가 호르몬의 영향을 많이 받을 때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도 그렇다.
다른 것이 있다면 나는 안아줄 어른이 없었다는 것이고, 아이들은 내가 안아준다는 점이다.
옛날에는 그런 것까지 받아주는 사회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때, 그나마 언니와 대화를 하면서 마음의 안정감을 얻었던 것 같다.
눈시울을 붉히는 아이를 본 남편은 그냥 가볍게 웃으며 '파이팅!'을 외쳐준다.
아이의 고민을 장난처럼 치부해 버리면 더 싫어하지 않을까?
듣는 어른이 보기에는 아무 일도 아니지만 당사자인 아이에게는 심각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는 내 마음과는 다르게 아이는 빨개진 눈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응!"
나는 평소에 아이의 고민을 들으면 같이 심각해지는데 남편은 다르다.
그것을 가볍게 만들어 버린다.
너무 땅속으로 파고들지 않도록, 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도록.
무게를 덜어주는 남편의 그 응원이 나와는 달라서, 그것이 아이를 키우는데 발란스를 맞춰 주는 것 같다.
오후에 하교를 한 둘째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폴짝 뛰어오르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쏟아냈다.
한껏 신난 목소리로 있었던 이야기를 쏟아내며 웃는다.
"아침에는 그렇게 울더니..."
"그러게... 큭큭..."
아이도 나도 같이 웃는다.
사춘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