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만나는 이야기

일기장에 쓰는 소설 후기

by 윙글

10월 16일


고백


일기의 형식을 빌어 늦은 고백을 해봅니다.

소설 '저승 버스 정비사'는 저희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에요.


서두에 알리고 시작했어야 하는 것을 제가 뭐라고 숨겨 놓았는지...

늦어도 너무 늦은 시점에서야 이것이 무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밝히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시점에요...


댓글을 보며 왠지 뭔가를 속인 것 같은 기분이 뒤늦게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바보 같은 고백에 이어, 저는 또 무례하게도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부터 후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지난주에 써두었지만 발행하기가 망설여젔습니다.


굳이 밝혀야할까...?

소설은 소설로 남기는것이 낫지 않을까...?

어두운 과거를 읽는것이 불편하지는 않을까?


주저하기를 여러번, 고민을 거듭하다 오늘에서야 용기를 내봅니다.


그런데 글이 조금 깁니다.

하고픈 말이 많았나봐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낙지호롱


올해 초, 시아버지의 제사를 지낸 후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처음으로 낙지 호롱을 제사상에 올린 날이었다.


남편이 아이들의 접시에 낙지를 하나씩 올려주며 말했다.

"아빠는 장모님 댁에서 이 낙지호롱을 처음 먹었는데..."

"그전에는 안 먹어봤어?"

"아니, 술안주로는 먹어봤지. 아빠 집은 제사상에 낙지호롱은 안 올렸거든. 이걸 상에 올리는 집은 그때 처음 봤어."


나는 그런 남편의 반응이 신기했다.

"엄마는 이게 당연한 줄 알았어. 어릴 때부터 제사상에도 차례상에도 낙지 호롱이 빠진 적이 없었거든. 외할아버지가 제사 때가 되면 항상 나무젓가락에 낙지를 돌돌 말았었어."

벌써 돌아가신 지 8년이 된 아빠를 떠올리며 낙지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의 움직임은 전부 그대로 멈췄다.

뚝, 뚝.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무렇지 않게 베어 문 그 낙지 호롱 한입이...

오랜만에 느낀 음식의 식감과 맛과 냄새가...

어린날의 아빠를 떠올리게 해 버렸다.


"어? 아니... 이게..."

당황한 나는 황급히 눈물을 훔치고, 더 당황한 아이들이 낙지를 내려놓았다.


"엄마가 할아버지 생각이 났나 보다."

남편이 옆에서 토닥거리고 나는 아이들이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채로 밥을 밀어 넣었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눈물이 흐르다니...

돌아가신 지 이렇게나 시간이 지났는데 눈물이 나온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슬픔이 잊힐 거라고, '시간이 약'이라는 어른들의 말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움도 옅어지고 마음도 무뎌지고...


하지만 8년이 지나고도 밥상머리에서 터진 눈물을 주워담는 나를 보고 생각했다.

대체 무뎌진다는 그때는 언제 오는 걸까?


그날의 당황스러움과 궁금증이 이 소설의 시작이었다.

나는 브런치 작가 신청, 활동 계획란에 두 번째 목록으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올렸다.




에세이가 소설로


처음에는 에세이를 계획하고 목차를 짰다.

그런데 뭔가 부족했다.

말로 딱 집어 설명할 순 없지만 에세이로는 부족했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소설을 떠올리게 됐다.

아빠가 하던 버스 정비... 정비사...

저승... 버스 정비사?!

그렇게 소설의 제목을 정하고 책의 목차를 전부 다시 짜기 시작했다.


주인공의 이름은 아빠의 어릴 때 이름인 '윤식'.

어릴 때 친구분들이 부르던 그 정겨운 이름으로 소설을 시작했다.


그 안에 아빠의 삶을 담아보고 싶었다.

그 안에 나의 바람도 담고 싶었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철없고 이기적인 딸의 욕심이었다.





소설로 썼기에 알게 된 것


소설로 아빠를 만나는 것은 정말이지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빠가 했을 법한 생각과 그 고민을 짐작해 본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리는 것 같았다.


점점 아빠의 입장을 헤아리다보니, 나는 어느새 아빠를 대변하고 있었다.

나의 변화가 당황스러웠다.


물론 글을 쓰는 동안 지나온 시간들을 마주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한 번도 아빠와 진솔한 대화를 시도하지 못한, 아빠의 내면을 들여다본 적 없던 나로서는,

'소설로 쓰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소설로 쓰기로 한 것은 미친 짓이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빠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직장생활은 어땠는지, 버스 정비는 어떻게 하는지...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글을 쓰면서 얼마나 깊은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아빠의 어릴 때 이야기를 들어 놓을걸...

아빠의 직업에 대한 것도 여쭤볼걸...

쌀포대 실을 한 번에 뜯는 법을 배워놓을걸..


그랬다면 아빠가 정말 좋아했을 텐데...

그랬다면 혹시 아빠가 덜 외롭고, 그로 인해 아빠가 술과 멀어졌을까?


마음이 너무 아플 때는, 잠시 숨을 고르고 글을 썼다.




사랑받은 기억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표현을 하지 않으셨을 뿐, 나는 아빠에게 사랑받고 있었다.


잠든 몸이 붕 떠올라 아빠가 안아 올린 것을 알았지만 나는 자는 척을 했고, 고사리손이라고 말하는 아빠의 눈은 세상천지 제일 예쁜 것을 보는 눈이었다.


단 한 번도 감정적으로 매를 든 적이 없었고, 한글을 가르칠 때에도 엄마와 달리 윽박지르거나 때리지 않으셨다.


손재주가 좋았던 아빠는 옥상에 전구를 달고, 마당에는 직접 만든 평상을 놓아 가족들이 좀 더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옥상에 누워 올려다보는 밤하늘이 참 예뻤다.




부부싸움


엄마, 아빠는 부부싸움을 자주 하셨다.

아마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그랬으리라.


그 싸움은 아이가 목격하기에는 너무 과격한 싸움이었다.

고성이 오가고 밀치고 옷이 찢기고 코피를 흘리고...


어린 남매가 불안에 떨며 울면서 애원해도 엄마, 아빠의 싸움은 멈추는 법이 없었다.


엄마, 아빠는 우리말을 절대 들어주지 않는구나.

나라는 존재는 엄마, 아빠에게 그다지 소중한 존재가 아닌가 보다.

그렇게 포기를 배웠다.


엄마와 싸울 때면 죽일 듯이 부릅뜬 아빠의 눈이 무서웠다.




중독


아빠는 점점 술에 취한 날이 많아졌다.

종종 마시던 것을 날마다 마시고, 저녁에만 마시던 것을 아침부터 마셨다.

술을 줄이라는 우리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아빠가 집에 올 때쯤이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불안했다.

풀린 눈으로 소리치는 모습이 진절머리 났다.


어떤 대화도 통하지 않았고, 누구라도 마주치면 싸웠다.

그럴수록 아빠를 미워했다.

그렇게 아빠와 멀어졌다.


간경화 진단을 받기 1년 전쯤에 알코올전문병원에 강제로 입원을 시킬까 상의를 했었지만, 우리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죽음으로 치렀다.

아빠를 강제로 감금·입원시키는 선택도 우리의 몫,

입원시키지 않은 대신 죽어가는 아빠를 지켜보는 것도 우리의 몫이었다.




늦어버린 투병


회사에 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 조곤조곤 전하는 그의 말이 천천히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간경화. 이미 늦어 손쓸 수 없는 상태.

복수가 가득하고, 아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


내 눈에서 눈물이 나온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빠가 싫었는데...

안 보고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슬프지 않을 줄만 알았다.

이렇게나 가족들을 힘들게 한 아빠니까... 크게 아프지 않을 줄 알았다.


"벌써 울면 어떻게 해... 마음 굳게 먹고 치료해야지."


나조차 예상하지 못한 눈물을 남편은 예상했던 것인지 차분하게 나를 다독였다.


간이 망가지고, 신장이 망가지고...

해독하지 못한 것들은 두통과 섬망을 불러왔다.


하루는 늦은 밤 걸려온 전화에 언니가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빠는 간호사들에게 둘러싸여 의자에 파묻힌 채, 공포 가득한 눈으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계속 군인이 있다고, 총을 들고 있다고 숨으려고 했다.


그 후로 아빠는 다른 세계에 계신듯했다.

맑은 날 창밖을 보며 비가 온다 말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인다 말했다.




임종


아빠는 끝까지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혼수상태에 계시다 돌아가셨다.

임종을 지키고 싶었던 나는 병원에서 심박수가 위험하다는 연락에 모든 일을 내팽개치고 병원에 달려갔다.


절대로.

절대로, 마지막 순간을 외롭게 보내드리기 싫었다.


다행히 한 번은 위기를 넘겼다.

두 번째 위기가 왔을 때는 심박수가 쉽게 올라가지 않았다.

언니와 날을 샐 생각으로 새벽까지 아빠의 곁에 있었다.


그리고 심박수가 뚝뚝 떨어지던 그 시간.

간호사들이 커튼을 전부 닫았다.

언니와 나는 아빠의 귓가에 달라붙어 사랑한다고, 걱정 마시고 편안히 가셔도 된다고 속삭였다.


이상하리만치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어떤 일이 닥치면 그 일을 실감하는 데 오래걸리는 탓이었나보다.


그리고 그 눈물은,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에게 자꾸 절을 받는 아빠를 보고서야 터져나왔다.

불 꺼진 상주 휴게방으로 도망친 나의 눈물은 폭포수처럼 몇 시간을 쏟아내고서야 멈췄다.




꿈에


아빠가 돌아가시고 몇 년 동안 줄기차게 꿈에 아빠가 나왔다.

꿈에서 아빠는 늘 환자복을 입은 모습이었다.


병원 어딘가에 숨어있는 아빠를 찾아내면 아빠의 눈이 이상했다.

고양이처럼 동공이 세로로 길쭉하거나, 눈동자가 초록색이었다.

보자마자 흠칫 놀라지만 이내, 아빠의 손을 잡고 타박을 한다.


"아빠, 어디 갔었어! 한참 찾았잖아. 우리는 아빠가...... 아무튼 가자."


'아빠가 돌아가신 줄 알았잖아. 사람들이 아빠 죽었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라고 하려던 말은 속으로 삼킨다.

그 말을 내뱉기가 무서웠다.




소설을 끝내고


나는 끝내 아빠를 삼도천 너머로 보내드리지 못했다.

이 소설 하나 썼다고 나의 내면을 전부 성찰하고, 아빠에 대한 감정을 충분히 조절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


그저 내가 담고자 했던 것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무리한 것에 만족한다.

서툰 글 솜씨로 소설을 쓰면서 파헤친 시간들은 아프고 후회스럽고...

좋았다.


기대하지 않았던 변화와 깨우침도 얻었다.

내 감정을 마주하고 아빠를 대변하면서 그 마음을 조금 헤아려본 것에 감사하다.


소설을 쓰고서야 아빠가 걸어온 길을, 고민들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처럼 아빠에게 끝없이 바라기만 하고 불만을 품고, 지적하려고만 했던 나의 태도를 이제야 돌아볼 수 있었다.

그 과정은 때로 너무 아프고 화가 나고 불편했다.

후회가 내 발등을, 손끝을, 마음까지 몇 번이나 찍어댔는지 모르겠다.


그런 순간을 맞닥뜨릴 때마다 꾹꾹 눌러 참았다.

눈물을 숨기고 감정을 숨기고, 다시 잠잠해지면 글을 썼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습관처럼 가리고 숨기고 참으니, 낙지 호롱을 먹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튀어나오는 것이었나 보다.

소설을 시작할 때 가졌던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아마도 이 습관은 고치기 힘들 것 같다.

대신, 갑작스럽게 눈물이 튀어나오면 '눌러뒀던 것이 나오는구나...' 할 정도는 되겠다.


그리고...

이리도 오랫동안 참을 눈물이 남아있는 이유는...

싫어한다고만 생각했던 아빠를 내가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랑의 시작에는 어린 날의 아빠가 보여준 사랑이,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소설은 끝났다.

나는 이 소설 속에 아빠를 향한 바람을 담고자 했다.

그 바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사람들과 대화하며 마음을 나누시기를.

짓눌렸던 책임감을 내려놓으시기를.

무기력을 이기고 신나는 일을 찾으시기를.

남겨놓은 것들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 되기를.

감사하는 나의 마음이 가 닿기를.

홀가분하게 떠나시기를.


마지막 바람은... 미처 담지 못했다.

이별은 참 어려운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사춘기를 대하는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