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날 통닭을 사들고 가면 기뻐하던 아이들처럼

보람

by 윙글

그날 아침부터 윤식이 지나는 길에는 모든 저승 버스가 멈춰 섰다.

무전이 오지 않아도,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버스 손잡이나 의자가 망가진 것은 없는지, 바닥이나 천장, 조명까지...

작고 사소한 부분도 할 수만 있다면 고쳐주었다.


마음을 달리 먹으니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더 명확해지는 것 같았다.


뭐라도 하는 것은 그 자리가 어디인지 인식하게 해주었다.

이곳이 무서우니까, 나는 못할 것 같아서, 무시받기 싫어서...

핑계는 끝도 없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뭐라도 하는 것.

그것은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게 붙잡아 주는 최소한의 경계선이었다.


대부분의 망자가 감사인사를 건네지는 않았다.

허망한 죽음을 건너는 사라들이 감사함을 느낄 여유가 어디 있으랴.

그저 차사와 운전사의 인사만이 그가 듣는 감사인사의 전부였다.


"정비사님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차량 정비만 하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이런 것도 고쳐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웃음이 귀한 저승버스에서 햇살처럼 환하게 웃는 그들의 얼굴이 이미 감사인사였다.


윤식은 그 웃음에 중독되어 갔다.

조금 더 보고 싶었다.

더 밝은 웃음을 보고 싶었다.

왜 이 기쁨을 이제야 알았을까?


땅콩이가 깔고 앉은 방석을 돌아보았다.

어르신이 전해준 마음처럼, 그녀가 탄 버스의 망자들에게 준 마음처럼.

윤식도 무엇인가를 나누고만 싶었다.


그런 윤식의 변화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신나는 일을 찾는 이들.

도착지가 삼도천이더라도 기대감을 잃지 않는 이들.


"삼도천에서 낚시라도 해 보까?"

"요양병원에서 5년이나 살았더니 징글징글한데 이렇게 버스 타고 돌아다니니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겄어! 차사 양반, 나 도착하고 나서 삼도천 강변 10바퀴만 돌고 가믄 안되까?"

"남편 눈치, 애들 눈치 보느라 못한 거 여기서 한 번은 해보고 갈라요. 노래 한곡 불러볼 테니까 한 번 들어봐 주실라?"


모두 자신을 위한 것들이었다.

나를 들여다보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

저승 버스에는 무기력한 망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말했다.

즐거움은 언제나 찾을 수 있다.

그곳이 저승 가는 버스라고 해도.


윤식은 두시간에 한번씩 길가에 있는 나뭇가지를 주워 조각하기 시작했다.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아이들이 어릴때 집에서 이것저것 잘 만들었더랬다.

그때의 기억을 살려 나무를 깎아 저승 버스를 만들고, 삼도천 통제소도 만들었다.

갓을 쓴 저승 사자도 만들까 하다가 실제와 달라 그만두었다.


그리고 하루만에 만난 5번 버스.

"차사양반, 인자 실내등 잘 들어오요?"

얼마 전에 배터리를 교체했다는데 배터리 경고등에 불이 들어오더니 시동이 꺼져버린 버스였다.

"네! 깜박거리지 않습니다."

큰 소리로 대답하는 차사는 30살 즈음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제네레다를 교체하고 주변을 정리한 윤식은 운전사에게 사인을 보냈다.

"다 됐네요! 이제 주행 한번 해보십시다."

운전사는 서둘러 버스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5번 버스의 운전사는 드물게도 여자였다.

그녀는 50대 정도로 보였는데 푸짐한 몸집에 야무진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부르릉!

버스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리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주행할 준비가 되었다.


"또 불편한 건 없소? 의자가 삐그덕 대거나, 뭣이 빠져브렀다거나..."

"아뇨! 특별히 불편한 건 없고... 아!"

고개를 젓던 운전사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운전석 한쪽 귀퉁이에서 작은 종이상자를 하나 꺼냈다.


"이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데... 혹시 가져가시던지, 처분해 주실 수 있을까요?"

"뭔 상자가 거기 있다요?"

"제가 한 번 열어 봤는데 안에... 알전구가 있더라고요."

옆에 있던 차사가 상자를 열어 보였다.

그의 말대로 상자 안에는 알전구가 들어있었다.


"버스에 써먹을 데도 없는 알전구가 있냐...? 운전석 자리만 차지하니까 치웁시다."

"그거... 버스에 매달면... 분위기 좋을 텐데..."

손을 휘휘 젓는 운전사와 달리 저승 차사는 알전구를 들어 올리며 아쉬워했다.

"허! 뭔 저승 가는 버스에 분위기 타령이래?"

운전사는 웃으면서 차사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 런가요...?"

그가 무안해하며 상자를 닫으려는데 상자 바닥에 하얀 종이 한 장이 보였다.

"잠깐, 차사양반 거 아래 뭐 있네."

윤식은 종이를 꺼냈다.

종이에는 알전구를 버스 안에 어떻게 장식할지 구상해 놓은 스케치가 그려져 있었다.


"이거... 진짜 저승 버스에 매달려고 했나 본데요?"

운전사는 스케치를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이 벌어졌다.

"거 봐요, 이거 매달면 진짜 예뻐요. 누가 알고 준비한 거네!"

거 보란 듯 확신에 찬 차사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대체 누가...?"

"이 버스 전임 운전사나 차사 아닐까요...?"


윤식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저승 가는 길이라지만 무엇이라도 하려는 그 마음.

망자들을 위한 배려.

그의 눈에는 상자 속의 알전구와 스케치가 뜨개질 실로 만든 의자커버처럼 보였다.


"이거... 지금 씁시다."

"네? 이걸 어디다 써요?"

"차사 양반, 이거 버스 안에 매달믄 큰일 난가요?"

"음...... 그런 규정은 없습니다."

"그러믄 이거 내가 매달아 줄랑게 쪼끔만 기다리시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윤식이 스케치를 확인하며 알전구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망자들의 양해를 구해 자리를 비우고 버스 모서리에 알전구를 꼼꼼하게 둘렀다.

전원을 연결한 다음, 모두의 시선이 담기는 순간.

윤식은 전원 스위치를 눌렀다.


반짝!

반짝!

반짝!


버스 안의 작은 알전구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작고 하찮은 그 불빛이 모여 사각의 버스를 사각의 우주로 만들었다.


미처 기대하지 못한 아름다움에 모두가 넋을 잃었다.

삶의 끝에서 만난 작은 반짝임은 망자들의 심장을 두드렸다.

눈꼬리에는 눈물이 맺혔다.


어...

어....!

하나 둘 목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하다 이내, 목이 메인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


망자들의 표정은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언젠가 지친 윤식이 월급날 통닭을 사들고 가면 기뻐하던 아이들의 표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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