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
다시 정비 버스를 달리기 시작한 윤식의 얼굴은 싱글 벙글이다.
알전구를 본 망자들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웃는 얼굴 하나하나가 그의 마음속에 박힌 듯, 마음속이 간질거렸다.
"땅콩아, 우리 정비소 가서 알전구나 한 트럭 싣고 와야쓰겄다."
알전구를 달아준 5번 버스와 헤어질 때는 승객들이 모두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마음이 뭉클해졌다.
괜스레 콧잔등을 한번 훔쳤다.
그들을 보내고 운전석에 오른 뒤 지금까지도 윤식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저승 버스를 탄 뒤로 가장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행하는데 싸래기 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부쩍 추워졌다고 느꼈는데, 눈까지 날리니 예전 생각이 났다.
이즈음 도심 곳곳에서는 캐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교회를 다니지는 않지만 하도 사방팔방에서 크리스마스다 선물이다 해대니 모를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크리스마스 전날이면 집사람과 모임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인형을 포장해 왔었다. 잠든 아이들 머리맡에 놓아주고 아침이면 좋아할 아이들을 상상하는 것이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선물을 사러 가자는 집사람을 따라 번거로운 그 길을 따라나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돈이 부족해 비싸고 좋은 장난감을 살 수는 없었다. 그래도 포장을 하고 머리맡에 놓아두는 것이 우리 부부가 나름대로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이때가 되면 크리스마트 트리 장식도 속속 만들어지고는 했다.
남자니까 그런 것엔 관심도 없는 듯 무심한 척했지만 눈이 달렸는데 이쁜 것을 왜 모를까!
반짝반짝 빛나는 그 알전구 불빛은 하늘의 별 같기도 하고, 오래전 보았던 반딧불이 같기도 했다.
이제는 그 알전구의 반짝임보다, 그 불빛을 보는 아이들과 망자들의 눈빛을 보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김윤식, 많이 변했네...'
피식 웃으며 산길을 오르는 정비 버스는 고요했다.
이 고요함.
그러고 보니 무전이 오지 않는다.
그가 정비를 다닌 덕일까?
아마도 크게 문제를 일으킬 버스는 대부분 정리가 된 것 같았다.
윤식은 부품도 교체할 겸 정비소로 향했다.
다시 돌아온 삼도천 통제소 앞은 여전히 웅장하고 어두웠다. 이른 아침의 안개까지 더해진 강가의 통제소는 잔뜩 뿌옇다 못해 앞을 가늠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를 밀어내고 버스를 주차하니 정비소장이 마중 나왔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소장님이 고생하시죠."
정비소는 모든 리프트에 버스가 올라가 있었다. 잠도 안 자는 망자가 한없이 정비만 하는 것을 보니, 윤식은 제 팔자가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자 무전도 거의 안 오고 부품도 좀 챙길라고 들렀는디 지난번에 가져간 대로 챙기믄 되겄죠?"
"아, 그러면 이쪽으로 오시겄소?"
정비소장의 안내를 받아 필요한 부품들을 채워 넣었다.
이번에 출장 정비를 갔다가 돌아오면 새 버스들이 들어올 것이다.
늦어도 내년 봄에는 새 버스들이 들어온다고 했으니...
그때는 나도 그만 다리를 넘어가야겠지.
윤식은 뒤를 돌아 삼도천을 한번 바라보았다.
이제 저 다리를 넘어가고 싶은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영원히 이 애매한 세상에 머물 수도 없는 일이다.
그때, 땅콩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 놈이 어느새 버스 밖으로 나와 정비소에 쌓아둔 물건들 틈을 돌아다녔나 보다.
상자들이 쌓여있는 곳 위에 올라앉아 빨리 오라는 듯 울어댄다.
'참나... 고양이가 상전이네.'
상자 위에 앉아 있는 모양새가 참 도도하기도 하다. 윤식이 가까이 다가오자 몸을 일으킨 땅콩이는 박스의 틈새를 긁어대기 시작했다.
"버스 문짝도 다 긁어 놓드만 상자까지 찢어블라고 그냐?"
상자가 더 찢기기 전에 고양이를 들어 올리는데 살짝 열린 상자 틈으로 익숙한 물건이 보였다.
동그란 알전구.
"워따, 많기도 하네! 이것이 왜 여기 있다냐?"
알전구가 가득 들어있는 상자가 못해도 10개는 되어 보였다.
누가 이렇게 많이 사놓았을까...
혹시 가져가서 다른 버스에도 쓰면 안 되는 건가...
고민하고 있는 찰나,
"아저씨! 윤식아저씨!"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버스들이 주차하는 곳에서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현미가 보였다.
"뭐여? 차사아가씨 또 보네!"
이게 또 인연이라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어? 이거 보고 계셨어요? 안 그래도 아저씨한테 부탁하려고 했는데!"
'이 아가씨는 뭐, 나만 보면 부탁할라고 해...?'
"그거, 제가 크리스마스 대비해서 준비한 건데... 망자들이 싫어할 수도 있고, 달아줄 사람도 없어서 일단 보관해 둔 거였거든요..."
"차사 아가씨였구만...?"
"네? 뭐가요?"
"이거 5번 버스에 갖다 놓은 범인이 차사아가씨 맞제?"
"네! 지난번에 5번 버스일을 잠깐 맡았어가지고... 그거 어떻게 아셨지? 혹시 5번 버스도 고치셨어요?"
"그래! 고치고 나서 그 알전구도 달아주고 왔제."
"정말요? 어땠어요? 다들 좋아하시던가요?"
한껏 기대한 그녀의 눈빛이 딱 철부지 어린아이 같았다.
"좋아하제! 사람눈 다 똑같어, 이쁜 것은 다 알아."
"하아... 다행이다! 반응은 나쁘지 않다는 거네요! 그럼..."
윤식을 흘끔 본 현미가 고개를 기울이며 눈가를 휘었다.
"혹시... 아저씨가 다른 버스에도 매달아 주실 수 있어요?"
그녀의 부탁이 없었더라도 그의 대답은 같았을 것이다.
윤식이 자연스럽게 상자를 한번 쓸었다.
"이거... 내가 버스들 전부 달아 줄라니까 차사 양반은 걱정하지 마시요."
"우와! 진짜요? 감사합니다! 자꾸 부탁드려서 귀찮아하실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현미의 얼굴이 한껏 밝아졌다. 덩달아 그의 눈가도 보기 좋게 휘었다.
"우선 차사아가씨 버스부터 갑시다!"
두 사람은 알전구 상자를 들고 주차장으로 갔다.
정비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넓은 주차장에는 수십대의 버스와 차사, 운전사들이 흩어져 있었다.
어떤 버스는 막 출발하고 있었고 어떤 버스는 이제 막 들어오고 있었다.
현미의 버스는 망자를 내려주고 주차장으로 들어와 있었다.
"아저씨, 그거 아세요?"
"뭣을?"
"아저씨 소문이요!"
"나?"
"아저씨 소문났잖아요. 버스 잘 고쳐주고 완전 잘해주신다고! 차사들이랑 운전사들 사이에 소문 쫙 퍼졌어요!"
"내가 뭣을 했다고 그런 소문이 난다는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윤식의 입가가 슬며시 올라갔다.
"아저씨가 되게 많이 도와주셨다던데...? 친절하고 성실하고 책임감도 강하시다고 다들 좋아하더라고요."
"에이... 너무 띄우지 말고!"
쑥스러움을 숨기느라 그의 시선은 종이 상자에 머물렀다.
"그래, 나도 들었어. 그 정비사 양반이 이 분인가 보구먼?"
"아! 그 꼼콤하게 잘 봐주신다던 정비사분이시구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근처에 있던 차사와 운전사들의 증언 같은 말이 얹어졌다.
"이거 보세요! 제 말이 맞죠?"
의기양양한 현미가 고개를 기울여 윤식과 눈을 마주쳤다.
"그려... 알았어..."
그의 얼굴에 기분 좋은 어색함이 걸렸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갑자기 찬물을 끼얹는 한마디에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현미가 타고 온 버스, 뒷문 계단에 환자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앉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