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망자

원한

by 윙글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진한 눈썹과 매서운 눈을 부릅뜬 얼굴에는 혐오가 가득했다.


"자네가 그런 말 들을 자격이 있어?"

남자는 주차장에 있는 차사들과 운전사들이 우습다는 듯, 비릿한 웃음을 입에 걸었다.

"자네 죽은 이유가, 하루 종일 술 마셔서 간경화로 간 거잖아? 식구들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킬라고 했다드만? 큭큭큭... 술 때문에 처자식도 등진 인간이 여기서 무슨 착한 정비사 행세를 하고 있어?"

비웃음을 곁들인 그의 독설이 넓은 주차장에 퍼져나갔다.


"누... 누구세요? 뭐 다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남의 얘기를..."

"내가 왜 몰라!"

당황한 현미의 물음도 끊어버리는 남자.

"저 인간 나랑 한 동네서 살았어. 내가 집안 사정 다 알고 있지."


남자는 내 말이 틀렸는지 어디 한번 말해보라는 듯 윤식에게 두 눈을 고정한 채 씨익 웃었다.

윤식에게로 쏠리는 시선이 제법 날카롭다.

차사와 운전사들은 아무 말 없이 윤식과 남자를 바라봤다.

뭐라도 변명을 바라는 듯한 그들에게 윤식은 할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맞다.

저 말이 다 맞다.

나는 아침부터 술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이 됐고, 그때부터 가족들과 더 멀어졌다.


나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날마다 마시면 좋진 않겠지.

하지만 내가 난동을 부리기를 했는가, 처자식을 때리기를 했는가?


젊잖게 술만 마시고 아무 행패도 부린 것이 없다.

마누라와 싸우기는 했지만...

이놈의 여편네가 워낙 성질을 부리니 싸움이 되었다.

아이들과 싸우기도 했지만...

어린놈들이 아버지 인생에 사사건건 지적질을 해대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술을 마셔서 싸운 것이 아니었다.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 때문에 싸운 것이다.

그래놓고 다들 나를 외면했다.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잠을 자고, 내 곁에 오지 않는 가족들을 보는 게 괴로워 나도 그들을 외면하고 살았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내가 왜 술을 마셨는데...!

한평생 희생하며 살아온 가장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것인지...!

깊어지는 원망은 술이 되고, 술은 결국 병을 불러들이고 말았다.

어느새 죽음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처참하게 짓이겨지는 마음에 돌처럼 굳어버린 윤식의 얼굴이 무언의 대답을 하고 있었다.

남자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내 인생은 실패했다고.


차사와 운전사들의 눈빛이 변해간다. 차갑게 식어가던 가족들처럼.


"망자는 통제소로 가서 신분확인부터 하십시오."

차사들이 남자를 주차장에서 내보내고서야 숨 막히는 시간이 끝났다.

윤식은 사방에서 찔러오는 그 눈빛을 감당하기 벅차, 조용히 정비 버스로 돌아왔다.


털썩.

의자에 앉아 이마를 짚었다.

술도 담배도 없는 이 세상에서는 쓸리고 깨진 상처가 온몸으로 번져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구나.

손끝까지 저려오는 고통스러운 마음이 견디기 힘들어 저절로 몸이 굽어졌다.

무릎에 이마를 대고 주먹을 말아쥐었다.

이를 꽉 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야옹.

야옹.

야옹.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돌다 멀어져 갔다.

윤식은 이제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쾅!

누군가 버스 문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윤식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네가 뭔 데 남을 도와? 니깟게 뭔데! 뭐, 봉사? 웃기고 있네. 밖에서만 위선 떨고 집에서는 개차반이!"

윤식을 뒤쫓아온 남자는 버스 안으로 들어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버스를 훑어봤다.

"어처구니가 없네... 이게 다 뭐여!"

쾅!

또 한 번 버스를 내리친 남자 때문에 땅콩이가 놀라 한쪽 구석으로 도망쳤다.


아무 말 없는 윤식이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남자는 버스에 있던 물건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우당탕!

정비용 부품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와장창!

알전구가 상자째 깨지는 소리가 났다.

윤식이 웃으며 버스에 실었던 물건들이었다.

차사들과 운전사들, 망자들을 웃게 해 줄 물건들이었다.


힘없이 바닥만 바라보던 윤식의 눈에 그 부서진 물건들이 들어왔다.

고개를 든 윤식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야이 상놈의 자식아!"

윤식은 벌떡 일어나 남자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한쪽으로 기우뚱 넘어지던 남자가 상자를 짚고 일어나더니 윤식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이 버스 바닥에 넘어져 한데 뒤엉켰다.

물건 사이로 구르며 밀치기를 여러 번, 남자가 윤식의 위에 올라타 주먹질을 시작했다.

퍽! 퍽! 퍽!

두들겨 맞는 윤식의 얼굴을 눈에 잘 담으려는 듯 남자의 눈동자가 커질 대로 커졌다.

윤식은 물건들 사이로 손을 더듬어 짚이는 대로 주워 들었다.


퍽!

남자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의 머리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엉덩이를 끌며 몸을 일으킨 윤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손에 들고 있던 부품을 떨어트렸다.

"사... 상훈아빠... 그... 내가..."

남자의 기분 나쁜 목소리의 실소가 흘러나왔다.

"킥... 킥... 나는... 강제로 입원해서... 바깥세상 한번 못 나가보고 죄인처럼 살았는데... 너는 뭔데 이렇게 팔자가 좋지? 너나 나나 중독인데 왜 나만 병원에서 혼자 죽었어! 왜 나만!"

남자의 고함소리가 버스를 가득 메우며 유리창이 잘게 갈라졌다.

파사삭!


"왜 나만 이렇게 죽었냐고!"

다시 한번 뱉어낸 남자의 고함소리에는 긴 시간 쌓여왔던 원한과 분노가 중첩되어 이질적인 소리를 만들어냈다.

와장창!

버스의 유리가 모두 깨지면서 귀를 찢는 듯한 남자의 절규가 넓은 주차장으로 울려 퍼졌다.


다음 순간, 스르륵 위로 치켜뜨는 남자의 눈을 마주친 윤식은 본능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왜 나만... 왜... 왜 나만... 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그의 눈은 무언가 끊어진 듯, 서늘함이 내려앉아 있었다.

남자는 바닥에 떨어진 부품들을 주워 들어 높이 치켜들었다.

그의 손이 윤식에게로 떨어지려는 찰나.


"카아악!"

고양이가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땅콩이가 팔에 매달려 손가락을 물자 그는 인정사정없이 팔을 내리쳤다.

버스 구석까지 내팽개쳐진 땅콩이가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고양이에게 물린 자리가 쓰라렸다.

남자는 손을 내려다봤다.


어? 뭐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아...!

가족들과 건강검진을 하러 가기로 했었지.

어린아이 속이듯이 남편을, 아버지를 그렇게 거짓말로 꼬여내 병원에 가두다니...


그날부터 병원에 감금된 나는 지독한 배신감과 금단증상에 시달리다, 시체처럼 늘어져 있기를 반복했다.

소리치고 물건을 부수고 반항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대에 묶여 있는 인간 같지도 않은 대우뿐이었다.

한참만에 면회온 처자식은 손바닥만 한 유리창으로 알 수 없는 눈빛을 보내올 뿐, 안부를 묻지도 않았다.

그리고 1년 만에 퇴원한 그날, 윤식의 소식을 들었다.

그는 자유롭게 살다가 죽었다고 했다.

장례식장에는 사람도 많이 오고 그 딸들이 서럽게도 울었다지...


그 소식을 들은 날, 처자식 몰래 사 먹은 술이 들켜 다시 병원에 강제로 입원을 했다.

두 번째 입원 후에는 단 한번의 면회도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는 나오지 못했다.


고개를 내리니 눈앞에 윤식의 얼굴이 보인다.

아, 저 인간은 나보다 잘난 것이 무엇이길래 죽고 나서도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인가!

저 얼굴만 보면 속에서 주체할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라 저 자식도, 이 세상도 불태워 버리고 싶을 뿐이다.

화가 난다.

다 죽이고 싶다.

다시 돌아가 복수하고 싶다.


"저쪽이다!"

멀리서 차사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남자는 그대로 버스에서 빠져나와 있는 힘껏 달렸다.


달리는 동안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나는 어떻게 죽었더라...?

그 마지막이 안갯속에 있는 것처럼 잘 기억나지 않는다.


뭐였더라...?

뭐가 되었든, 그 기억대로 죽일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마치 끓어오르는 분노의 힘이라도 빌린 듯, 남자는 달려오는 차사들을 힘으로 뚫고 나아갔다.

그를 힘으로 막는 것은 이제, 쉽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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