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원
남자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달려 차사들을 따돌리고 통제소 건물 뒤로 몸을 숨겼다.
돌기둥 뒤에 숨어 뒤를 한번 돌아본 그는 주위를 한번 더 둘러본 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인간세상으로 돌아가려는 심산으로 어두운 복도를 걸으며 어디라도 빠져나갈 곳을 찾았다.
복도의 한쪽은 나무문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고, 반대편에는 아치형으로 마감된 기둥이 문과 같은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그는 복도의 가장 끝에 있는 육중한 검은색 나무문 앞에 섰다.
검은 돌 벽에, 검은 문. 그리고 검은색으로 된 두꺼운 문틀까지.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그 문의 음침함은 검은색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치 나무 문에서 뿌리가 자라난 것처럼 검은 돌 사이사이로 뾰족한 가지가 뻗어나가고 있고, 문 손잡이는 사람 팔뚝만 한 쇠봉이 달려있어 돌리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하아아악!"
어느새 땅콩이가 쫓아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이 고양이 새끼가...!"
"야아옹! 야아아옹!"
있는 힘껏 울어대는 고양이의 입을 막기 위해 남자는 고양이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
"비켜!"
"캬아악!"
발길질을 피한 고양이가 남자의 허벅지를 물고 매달렸다.
그사이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차사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저쪽이다!"
"이런, 씨...!"
남자는 고양이를 떼어내지도 못한 채, 검은색 문의 철 손잡이를 돌렸다.
열린 문 옆에는 '흑문'이라는 낡은 팻말이 붙어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미처 읽지 못한 문장이 팻말 하단에 작은 글자로 쓰여 있었다.
'돌아올 길 없음'
그가 문 너머의 어두운 공간으로 발을 내딛는 그 순간, 힘겹게 내뱉는 윤식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땅콩아아아!"
윤식과 차사들이 달려왔지만 이미 남자는 문 너머의 어둠 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덥석!
현미가 땅콩이를 따라 문 안으로 들어가려는 윤식의 팔을 붙잡았다.
"안 돼요, 아저씨!"
"이거 놔봐! 땅콩이가... 땅콩이가 저기 들어갔단 말이여!"
"여기 들어가면 못 돌아온단 말이에요! 안 돼요! 안돼!"
멈칫!
돌아서는 윤식의 눈가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못... 돌아온다고?'
흑문의 공간은 그런 곳이다.
이승과 저승의 틈새.
어두운 그 공간에 발을 들이는 순간 알게 된다.
무언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을.
밑이 뚫린 것처럼 불안한 바닥.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는 불빛.
불빛을 향해 한참을 걸어가다 보면 다시 제자리.
가느다란 희망과 덮쳐오는 절망을 반복하게 만드는 잔인한 굴레의 공간.
어떤 방법으로도 망자가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공간.
그곳은 그런 공간이었다.
"죄송해요 아저씨... 저 때문에..."
현미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윤식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제가 그 망자를 제대로 통제 못해서..."
"통제고 나발이고... 우리 땅콩이는! 우리 땅콩이 못 데려온다고?"
흥분한 윤식의 말끝이 가늘게 떨려온다.
"차사들은 문을 닫아라."
묵직한 수문장의 음성에 차사들이 움직였다.
망자가 도주하는 것을 내려다보던 수문장이 예상한대로 흑문의 앞은 북적이고 있었다.
벗어나고자 하는 자를 끌어들이는 저 틈새가 또 한번 망자 하나를 삼킨듯하다.
차사들이 검은 문을 밀기 시작했다.
드르르륵.
"아... 안돼! 안돼, 땅콩아!"
눈물 섞인 윤식의 절규에도 차사들은 멈추지 않았다.
철컹!
결국, 문은 닫혔다.
닫힌 문을 두드리며 소리치는 윤식과 그를 말리는 현미.
그런 두 사람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차사들 사이를 누군가가 비집고 들어왔다.
11번 버스의 말 많은 운전사였다.
현미의 어깨를 한번 짚은 그는 윤식을 향해 말했다.
"아이고, 이 양반 여기 있었네. 찾느라 똥줄 빠질 뻔했잖어...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여?"
능청스러운 말과 달리 그는 윤식의 표정을 곁눈질로 슬쩍 살폈다.
통제소에 도착하자마자 들린 망자의 소동에 윤식을 살피러 왔으나 저리 울부짖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인자 진짜로... 딸내미를 어떻게 봐... 내가 어떻게...!"
애처롭게 문에 매달렸던 윤식이 스르륵 주저앉아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다.
"그만 하시요."
그의 손을 붙잡은 운전사가 윤식의 어깨를 꽉 잡았다.
"정비사 양반, 그 고양이가 그렇게 중요하요?"
올려다보는 윤식의 눈이 축축하다.
"중요하냐고?"
되물어본 윤식의 힘겨운 고백이 이어졌다.
"저 고양이는......"
큰애가 가장 힘들었을 때 기대던 고양이였다.
세상에 치이고 넘어져 힘들어하던 큰애가 날마다 끌어안던 고양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그 아이를 더 힘들게 한 것이 바로 나였다.
아이의 마음이 만 갈래로 찢기는 그때에, 나는 하루 종일 취한 채로 처자식과 싸움을 했다.
마주치면 싸우고, 마주치면 싸우고...
임신한 딸내미한테도 악다구니를 쓰고 싸웠다.
그런데...
그 딸내미가 키우던 고양이를 돌아오지도 못할 곳에 내버려두고 어떻게 딸내미를 보란 말인가...
"저 고양이한티 내가 빚진 것이 많단 말이요. 내가 우리 딸내미한티 상처 주고... 내가... 여기서라도... 저 놈의 고양이를... 잘 데리고 있어야 헌단 말이요..."
이런다고 그 후회스러운 시간을 되돌릴 수도, 용서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허나 이렇게라도 해야...
이 하나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애원하는 윤식을 내려보던 운전사가 한번 더 물었다.
"그럼, 저 고양이를 위해서 뭐든 하실 수 있겄소?"
실낱같은 희망을 건네는 운전사의 그 한마디에 윤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손을 붙잡았다.
"뭣이든 못하것소! 뭣이든! 시켜만 주시요!"
눈물이 그렁그렁한 윤식을 향해 옅은 미소를 보여준 운전사는 수문장에게 다가가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수문장님, 운전사 문현수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두 손을 공손히 모은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었다.
"이 망자가 자신의 영혼을 걸고 약조하니, 지켜본 운전사가 이를 돕고자 합니다. 저승의 모든 길을 여는 수문장께서 금지된 공간에 함께하여 주신다면, 저 망자의 귀환에 이 미력한 운전사 또한 영혼의 속박을 걸겠습니다."
'윤식아저씨, 영혼을 건다는 말까지는 안 하셨는데...'
현미는 슬쩍 윤식을 봤지만 듣고 있는것인지 아닌것인지, 아저씨의 표정은 애절함이 가득했다.
"충분히 가능한 망자입니다. 믿어 주십시요."
말을 마친 운전사가 깊숙이 고개를 조아렸다.
윤식은 운전사의 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지만 그저 애타는 마음으로 그의 뒤에서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조아렸다.
그들을 내려다보던 수문장이 나긋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김윤식 씨, 저 흑문의 공간은 아무도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습니다. 들어갈 수 없는 것은 우리가 통제하기 때문이고, 나올 수 없는 것은 그 어떤 망자도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단 하나, 이 통제소의 수문장인 저는 저 공간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지요. 허나, 제가 그 고양이를 찾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말하는 수문장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걸려있어, 오히려 서늘함이 느껴졌다.
"제가 그 고양이를 찾을 수는 없으니 김윤식 씨가 저 공간에 들어가서 고양이를 불러 데리고 와야 합니다."
"다... 당연히 제가 가야지요. 그렇게만 해주시믄 열 번이라도 가겄습니다."
조금 더 진한 미소를 머금은 수문장의 말이 이어졌다.
"저 공간은 그리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길을 찾는 것일 뿐, 그곳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저는 그 위험에서 지켜드릴 수가 없습니다. 딛고 있는 바닥은 불안하고, 알 수 없는 냄새가 망자를 유혹합니다. 희미한 불빛이 희망과 절망을 선사하며, 께름칙한 공기의 흐름으로 방향을 알 수 없는... 걸으면 걸을수록 위도 아래도 없어지는 듯, 정신이 아득해지는 공간입니다. 그 어둡고 불안한 공간 안에 망자가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을 벗어날 때까지 있다 보면 결국, 자아를 잃어버리고 고통과 절망을 반복하게 되지요."
수문장이 습관처럼 허리에 찬 장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다시 묻겠습니다. 정말 저 고양이를 구하러 가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