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윤식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는 절실하기만 했다.
지금 이곳에서 그리운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이것뿐이다.
"예, 가겄습니다. 지금이라도 바로 가믄 안 되것습니까?"
"아저씨..."
현미가 윤식의 한쪽 손을 잡았다.
"꼭... 저 안에 들어가셔야 돼요?"
굳은살이 베이고 주름진 그의 손을 내려다보던 현미가 고개를 들어 윤식과 눈을 마주쳤다.
"저 안은...... 정말로 위험한 곳이란 말이에요. 만약 오래 걸리면... 오랫동안 그 안에 계시면... 윤식아저씨의 의식이 흐려진단 말이에요... 가족들에 대한 속죄는... 정비사로 일하시다가 가족분들 만나서 하셔도 되잖아요. 우리 다른 방법 찾아봐요. 저도 한 번 찾아볼게요. 네?"
"저 고양이를... 저런 시커먼 구렁텅이에 처박아 놓고 속죄를 하라고? 우리 딸이 물어보믄 내가 뭐라고 말혀? 이 애비가 그 꼴을 그냥 쳐다만 봤다고 혀?"
"그건...! 그치만..."
"그라고... 저 고양이는 인자 나한티도 그냥 고양이 아니네 차사 양반. 그래도 저 자식이 살아서나 죽어서나 내 옆에 온 유일한 놈인디... 나는 그렇게는 못 허것소."
눈가의 눈물이 이미 말라버린 윤식은 결심이 확고한 얼굴이었다.
"나 꼭 돌아올텡게 여그서 저 말 많은 운전사 양반이랑 노닥거리고 있어. 알긋제?"
희미하게 웃는 그가 더 애처로워 보이는 것은 어째서일까...
현미는 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말 많은 운전사가 윤식과 현미의 어깨를 한번 껴안았다.
"어허이! 자네가 제 발로 저 안에 들어가는 최초의 망자여! 내가 여기 앞에 딱 버티고 있을라니까 후딱 댕겨와! 수문장님 옆에 딱 붙어서 떨어지지 말고!"
그는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냈지만, 윤식을 보내는 그의 눈동자도 떨리고 있었다.
결국, 수문장의 명으로 검은 문이 열렸다.
윤식은 차사들과 현미, 운전사에게 깊숙이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다시 볼 수 있을 테지만, 그동안의 고마움을 담았다.
그리고 돌아선 윤식은 수문장의 옆에 섰다.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어두운 공간. 그 속으로 윤식과 수문장이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디뎠다.
공기가 일렁이는 것 같은 시야와 짙은 안갯속을 걷는 것 같은 눅눅함.
딱딱하지 않은 바닥과 가볍게 떠있는 듯한 몸.
걸음이 길어질수록 방향과 시간을 가늠하기가 힘이 들었다.
5분을 걸었는지, 50분을 걸었는지 모를 만큼 감각이 사라질 즈음, 수문장이 멈춰 섰다.
"이 정도 들어왔으니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고양이를 부르세요."
수문장의 말대로 땅콩이의 이름을 부르기를 여러 번,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이고! 아이고! 있는 갑네. 아직 여기 있는 갑네!"
"예, 기특하게도 아직 김윤식 씨를 기억하고 자아를 잃어버리지 않았군요. 목소리로 고양이의 의식을 일깨웠으니, 조금 기다리시면 김윤식 씨의 냄새를 맡고 찾아올 겁니다."
"감사합니다! 참말로 감사합니다!"
머지않아 발밑을 스치는 느낌에 허리를 숙여 고양이를 잡아 들어 올렸다.
암흑에 가까운 그 안에서 멀리 보이는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고양이의 눈을 들여다보니 그 눈이 참 오묘하다.
스르륵 감기는 땅콩이의 눈을 보니 고 녀석 많이도 힘들었나 보다.
편하게 자라고 양손으로 받쳐 들어 품에 안았다.
몇 걸음 옮기다 내려보니 둘째 아이가 품에 안겨 실눈을 뜬 채 자는 척을 하고 있다.
고 녀석, 안방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었길래 작은 방에 옮겨주려고 안아 올렸더니 고양이처럼 몸을 말고 자는 척을 하는구나.
사랑스러운 아이의 사기행각을 모른 척 속아 주었다.
저녁마다 속아 주었다.
팔에 감겨오는 작은 손이 하찮은 힘을 주다 모자라 나머지 손을 보탠다.
"다 붙어, 아빠는 젤로 힘 쎙게 우리 다 붙어야 돼!"
막내와 팔씨름을 시작하면 늘 마지막은 남매가 전부 달려들어 안간힘을 쓰다 까르르 웃으며 데굴데굴 구른다.
"아빠는 왜 이렇게 힘이 세?"
물어오는 아이의 눈을 보니 마음속이 간질거린다.
아직은 내가 힘이 세다.
니들은 내가 다 책임진다.
"아빠가 비빈 것이 맛있어야. 쫌만 기다려라잉. 아빠가 젤로 맛있게 비벼줄게잉."
"계란은 그렇게 까는 것이 아니여. 아빠 하는 것 잘 봐봐라잉."
기다리는 아이는 아빠가 천재라도 되는 양 신기한 듯 바라본다.
"아빠, 아빠 어디 갔었어! 한참 찾았잖아. 여기 있는 줄도 모르고 우리는 아빠가...... 아니다, 아빠 괜찮아?"
환자복을 입고 구석에 숨어있는 나를 찾아낸 딸아이가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내가 병원에 있었던가...
버스를 탔었던 것 같은데...
새벽 4시쯤 출발해 도착한 낚시터에는 어스름한 달빛에 물안개가 올라오고 있었다.
"와아..."
물안개가 신기한 듯 아이들이 입을 다물지 못한다.
"여그, 여그다가 미끼를 끼워갖고..."
"여그를 잡고 뒤로 잡아댕겨서 멀리 던져블믄 돼. 그것이 아니고..."
"워따, 걸려븟시야..."
아이를 데리고 낚시터에 가면 미끼를 끼워주랴, 낚싯대 던지는 법을 알려주랴 바쁘기만 했다.
그래도 새벽부터 일어나 따라오는 아이들이 기특해 데리고 나왔다.
기어코 아이가 낚싯대를 휘두르다 뒤에 있는 나뭇가지에 걸려버렸다.
그래도 웃음이 나왔다.
한가한 물가에서 낚시 의자에 앉아 멍하니 윤슬을 바라보았다.
지렁이는 무섭다고 떡밥을 집어드는 아이의 낚시 바늘을 잡다가 손가락이 번쩍, 아프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
어... 날이 다시 어두워지나...?
갑자기 잡아놓은 물고기의 움직임도, 물결의 반짝임도, 아이들 마저 시간이 멈춘 듯 멈춰버렸다.
그 순간, 가슴속이 턱 막히며 묵직하게 옥죄어왔다.
안되는데...
아이들이... 아이들만은...
찌르르 통증이 느껴지는 곳을 내려다보니 손가락을 물고 있는 고양이가 보인다.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몇 번을 물었는지 손가락도 손바닥도 성한 곳이 없었다.
그 고양이의 눈이 참 오묘하다.
그렇게 윤식의 의식이 돌아왔다.
"이게 다 뭔..."
혼란스러운 윤식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둡고 눅눅하고 방향을 알 수 없는 이 곳이 더 환각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나가야합니다."
몇 걸음 앞에 수문장이 보였다. 그가 뒤돌아 윤식을 보며 말했다.
"어서 따라오십시요. 더 이상 머물면 고양이도 저도 김윤식 씨를 구해드릴 수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윤식은 고양이를 안은 채 수문장을 따라 걸음을 서둘렀다.
아픈 손 때문에 더 이상의 환각은 없었다.
열린 문 밖으로 나가기 전, 윤식이 수문장에게 물었다.
"그라믄... 저 안에 들어간 상훈 아빠는... 어떻게 된다요...?"
"그 망자는 아마 이 곳에서 긴 세월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가 기억하는 누군가가 이 곳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당분간은 그럴 일이 없을 것 같군요."
마지막으로 어둠속을 한 번 돌아본 윤식은 그 곳을 빠져나왔다.
드르륵, 쿵.
흑문이 닫히고 나자, 문틀에서 뻗어나온 뿌리들이 조금 더 자란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