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실은 버스(최종화)

다시

by 윙글

윤식은 밝은 빛에 눈을 찡그렸다.

흑문 너머에는 여전히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다.


"아저씨!"

"아이고! 나왔네 저 양반!"

윤식을 반기는 이들과,


"차사 현미의 징계 처리에 관한 건과 도망친 망자의 서류입니다. 그리고 현재 망자의 도주 원천 방지를 위한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서류로 수문장을 맞이하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서류를 들고 서 있는 집행관들을 내려다보던 수문장이 윤식을 돌아보았다.

"허허... 김윤식 씨, 어째 저만 손해 본 것 같습니다."

그는 재촉하는 이들을 두고도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발길을 돌렸다.

윤식과 현미, 운전사는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허리를 숙였다.



"아저씨! 손... 손이...!"

고개를 든 현미의 눈에 윤식의 손이 들어왔다.

그의 손은 땅콩이에게 물려 손가락도, 손바닥도 살점이 찢기고 벌어져 있었다.

현미가 다급하게 달려 나갔다.


정비소 한켠, 현미가 윤식의 손을 봉합하기 위해 평상 위에 앉아있었다.

살아있지 않으니 피는 흐르지 않았지만 느껴지는 고통은 여전하다.

"윽...!"

윤식의 입에서 고통을 참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아저씨..."

현미가 윤식의 손을 보다 고개를 들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으... 응?"

"정비사 양반, 이거 이거 완전 엄살쟁이네! 허허허..."

말 많은 운전사의 말에 귀가 벌겋게 익은 윤식이 그를 째려봤다.

현미는 터지려는 웃음을 참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그나저나 정비사 양반, 그렇게 안 봤는데 생각보다 깡이 있구먼?"

그의 말에 다시 시무룩해진 윤식이 고개를 숙였다.


"맞는 말이요..."

축 처진 윤식의 어깨를 보던 운전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뭐... 깡?"


"나는... 진짜, 인간 말종이요."

"뭔 소리여 갑자기..."

윤식의 말을 모른 척 대꾸하는 운전사에게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듯 그의 고백이 흘러나왔다.


"알콜중독자였어, 나는. 아침부터 술 마시고 잠 퍼자고... 말년에 암 껏도 안 하고 허송세월만 보내다 죽었어. 마누라고 자식들이고 마주치믄 싸우고... 인간 같지도 않게 살았당게... 여기 온 뒤로 딸내미 울음소리가 들려. 귓가에 울음소리가 계속 들린다고..."

윤식은 가슴을 후벼파는 딸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것을 입밖으로 꺼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볼수도 만날 수도 없는 이곳에서 들리는 자식의 울음소리는 윤식의 가슴을 끊임없이 찌르고 있었다.


"정비사 양반, 그 울음소리... 나도 들어봤어. 그거? 그냥 들리는 거 아니여. 그 소리는... 아빠 그리워하는 딸내미의 마음이여."

축축하게 젖은 윤식의 눈동자가 운전사에게 향했다.


"하루종일 슬프기만 한 게 아니란 말이여. 아마 딸내미는 잘 살고 있을 것이고 잘 살고 있어서 아빠 생각에 울 수도 있는 거지. 지 감정을 밖에 내놓지도 못하고 살지는 않는단 말이제..."

운전사가 윤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 정도면 잘했어. 세상에 완벽한 아빠도 없고, 완벽한 남편도 없다드라고. 그저 그리워할 뿐이지... 그리워하는 딸이 있다는 거는 좋은 아빠였다고 할 수 있는 거 아니겄어? 아까 그 망할 망자가 뭐라하든, 여기 차사들이 뭐라하든 그딴 건 상관없어. 정비사 양반이 스스로 인정을 해야제. 정비일도 오래 했담서? 그것만 봐도 얼마나 필요한 사람이여... 직장에서도, 아이들한테도 꼭 필요한 존재였구먼..."

그가 건네는 위로가 윤식의 마음을 적시고 있었다.




통제소의 소동이 마무리된 후, 현미의 징계를 기다리던 윤식은 생각할수록 속이 상했다.

알콜전문병원에서 의료용 알콜을 훔쳐 탈출하려다 추락사 한 상훈아빠는 죽은 이후에도 도망치려다 그 사달이 난 것이었다.


"그 썩을 놈이 도망친 것이 어째 차사 양반 탓이라고 헌다요."

"제 탓, 맞아요..."

"그... 그래...?"

현미를 감싸려던 윤식은 말문이 막혔다.


"버스에서 망자들이 내린 것만 확인하고 자리를 뜬 제가 잘못했죠. 빈 버스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했어야 하는데... 다시 버스에 올라탔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원래 거기까지가 차사의 일이긴 하지. 그래도 아직 5년 차 차사 치고는 작은 실수여."

운전사가 현미의 설명을 덧붙였다.


"아이고 차사 양반, 차사된 지 얼마 안 됐네이."

"네. 그래서 아직 서툴러요... 쓸데없는 일에 욕심만 많고..."

아마도 알전구를 쌓아놓은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


"원래 뭐든 신입이 제일 의욕 넘치는 거제."

웃으며 현실적인 말을 하는 운전사는 현미의 어깨를 토닥였다.


"세 분이 참 여유로워 보이십니다."

굵은 목소리가 대화 사이에 끼어들었다. 수문장이었다.

"아이고, 수문장님!"

벌떡 일어난 그들이 수문장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잠시 그들과 덕담을 나눈 수문장은 윤식에게 할 말이 있는 듯 둘만의 산책을 권했다.


"김윤식 씨, 이곳에 처음 오셨을 때를 기억하시지요? 저의 무리한 부탁으로 떠안았던 정비일을 그동안 참 잘해주셨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윤식은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짐작했다.


"이제... 다 고쳐졌군요."

수문장이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버스가... 다 고쳐졌습니까?"

아쉬워하는 윤식의 말에 수문장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아니, 당신이."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그가 윤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당신은 삶의 끝자락에서부터 짓눌렸던 무기력을 이기고, 당신 안의 죄책감을 깨닫고 또한, 스스로를 인정하였습니다. 그것이 김윤식 씨에게 가장 큰 숙제였겠지요."

그는 윤식의 어깨를 한번 쥐었다 놓았다.


"이제 김윤식 씨에게 선택지를 한 번 더 드리지요. 이곳 삼도천에 남으시겠습니까, 아니면 건너가시겠습니까?"

"아직... 도 정비사가 필요허다는 말씀이요?"

"당연하지요. 일단 그 알전구부터 전부 설치하시려면 바쁘실 것 같습니다. 허허허..."

작은 웃음을 터트린 수문장이 말을 이었다.


"정비가 꼭 버스 밑만 보는 것은 아닙니다. 망자들이 타기 좋게 고쳐주고 꾸며주고, 혹여 고장 난 망자들도 고쳐주면 좋지요. 고양이를 구해냈던, 가족을 위한 그 마음으로 말입니다."

윤식은 수문장의 마지막 말에서 그의 숨은 뜻을 알 것 같았다.


"삼도천을 건너지 않고 남는다 한들, 영원히 이곳에 계실 수는 없는 일이지요. 김윤식 씨 마음의 짐을 모두 덜어내고 준비가 되었을 때, 그때 떠나셔도 됩니다. 허나 만일 지금 이대로 삼도천을 건넌다고 하시면, 환생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지요.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김윤식 씨?"

수문장이 기특한 아이를 바라보는 듯한 얼굴로 윤식과 눈을 마주쳤다.

그의 눈 속에 윤식의 얼굴이 비쳤다.

윤식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뭐라고...

내가 뭣이라고...

하지만 만일...

이대로 조금 더...


머뭇거리던 윤식이 그의 눈을 보며 대답했다.

"인제사 이런 머시기를 느꼈는디... 아직은... 더 하고 싶은디, 그래도 된다믄..."

사실 수문장이 감사 인사를 건넬 때부터 윤식의 마음은 정해져 있었다.

"정비사를, 더 하고 싶네요."

언제였는지 기억에도 없던 젊은 날의 열정이 피어올라버렸기 때문에.





며칠간, 윤식은 주차장의 버스마다 전구를 달고 있었다.

의자와 전등 같은 것들도 고치며 하루를 거의 보낼 무렵,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비사 양반이 욕보네..."

돌아보니 뜨개질을 하시던 할머니가 땅콩이를 안고 서있었다.


"아이고, 어르신!"

후다닥 버스에서 내려오는 윤식의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얼굴이 폈네, 폈어."

"어르신, 아직 계셨네요!"

"응, 나 여그서 뜨개질 더 하고 있었제."

부드럽게 휘어진 할머니의 미소가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오메, 그것을 아직도 하고 계셨는 갑네."

"차사들이 해달랑게 했제. 안 그랬으믄 폰제 넘어가븟제."

"아유, 그러믄 진작 인사드릴 것인디 제가 몰랐어라."

"아이 됐어. 바쁜디 뭔 인사. 한가한 사람이 오믄 되제."

할머니는 품에 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윤식의 마음도 너그럽게 쓰다듬는다.


"그러믄 인자 제가 자주 찾아봬야 쓰겄네. 어디 계시요?"

"그럴 거 읍써. 나는 인자 넘어갈라고. 아까침에 넘어 갈라다가 정비사 양반 있다길래 와봤네. 얼굴봉게 쓰것구만."

윤식이 괜스레 얼굴을 매만지며 웃었다.


"나는 인자 넘어 갈랑게. 자네도 펭야 넘어갈 다리 너무 늦지 말고 가잉! 나 갈랑게, 들어가!"

따라 나오려는 윤식을 만류한 그녀는 꾸벅 인사하는 그에게 들어가라는 듯 손을 휘적휘적 저으며 멀어져 갔다.


그 해, 삼도천의 겨울 풍경은 조금 더 반짝거렸다.

밤낮없이 일하는 통제소 직원들의 표정도, 며칠에 한 번씩 오고 가는 차사들과 운전사들의 표정도 조금 더 반짝거렸다.


출장 준비를 마친 날, 윤식은 땅콩이에게 장난감으로 줄만한 물건을 몇 개 챙겨 다시 버스에 올랐다.

"땅콩아, 가자!"


어느 날 세상에 태어나 또, 어느 날 죽음을 맞이했다.

한평생 발버둥 치며 치열하게 살아 봤지만, 어찌 한번 살았다고 삶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을까?

죽어서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정비사가 되었다.

앞으로도 한동안 저승 버스를 정비할 것이다.

망자들이 편안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내 아이가 땅콩이를 만나러 오는 그날까지.

그래서 오늘도 시동을 걸었다.

멈추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에필로그 한편으로 마무리 해보려고 합니다.

마지막까지 함께 해 주세요!

정말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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