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식 오빠?

에필로그

by 윙글

"윤식... 오빠?"

여동생 하나 없는 그에게 낯선 호칭이 들렸다.

윤식의 고개가 무의식적으로 돌아갔다.

그곳에, 윤식과 동년배로 보이는 여자가 환자복을 입고 서 있었다.


인간 도로의 끝, 마지막 병원 뒤편에서 막 버스 정비를 끝냈을 때였다.


"누구...?"

"저 성순이예요. 정성순. 사환국민학교 같이 다녔던..."

"성순이? 그 삐삐 마른 원주댁네 성순이?

"예! 맞어요. 아이고! 윤식 오빠 맞구나!"


윤식은 반가운 마음에 여자의 두 손을 덥석 붙잡았다.


"니 여기 병원에 있었냐?"

"예, 오빠는 저승에서 일하셔요?"

"어쩌다 봉게 그라고 됐다... 일한 지는 얼마 안 됐시야..."

얼마 되지 않은 저승 버스 정비사 경력이 부끄러워 윤식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이게 얼마만이냐? 국민학교 졸업하고 안 봤응게... 진짜 오래됐네이"

"오빠가 광주 올라가브러서 못 봤잖어요."

그녀의 원망 섞인 투정에 윤식이 멋쩍은 듯 웃었다.





장성의 작은 마을.

윤식은 형 셋, 남동생 하나, 아들만 다섯인 집에 살았다.

어린 윤식은 형들의 등쌀에 치여 집 밖으로만 나돌다 작고 마른 소녀를 만났다.

딸이 없는 집에서 자란 윤식이 여자아이를 대하는 것은 서투른 일이었다.


"너는 이것도 못 올라오냐?"

툭 내뱉은 윤식의 말 한마디에 성순이 쏘아봤다.

남들 다 오르는 뒷산도 못 올라오는 약한 아이와 노는 것은 참 답답하기만 했다.

게다가 메뚜기도 개구리도 못 먹는 아이는 여간 귀찮고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너는 이것밖에 못 먹응께."

할 수 없이 집에서 가져온 찐 감자 한 알을 내밀던 날, 성순의 눈에 맺힌 눈물에 심장이 쿵 떨어졌다.

'나는 아무 짓도 안 했는디 왜 울고 난리냐...?'

억울했다.

그 뒤로는 슬금슬금 눈치만 봤더랬다.


도시락을 챙겨가지 못한 윤식에게 어느 날 성순이 쑥개떡을 내밀었을 때는 마음이 풀렸나 보다 생각했다.

찰지고 맛난 쑥개떡이 고마워 집에서 어무이가 만든 도토리묵을 성순의 집에 가져다주기도 하고, 아픈 성순의 책보를 집까지 들어주기도 했다.


어느 날은 성순이의 책보를 들고 도망치며 놀리는 친구들을 같이 쫓아간 적이 있었다.

"야! 안 내놓냐! 느그들 잡히믄 가만 안 둔다이!"

악을 쓰고 쫓아가도 웃으며 놀리기만 하던 아이들은 윤식이 돌부리에 걸려 대차게 넘어진 순간에서야 그 놀림을 멈췄다.


"야야, 가자! 뭔 사내 새끼가 것도 못 보고 넘어지냐?"

들고 있던 성순의 책보를 던져버리고 도망치듯 가버리는 친구들의 얼굴에 걱정과 두려움이 설핏 스쳤다.


성순은 친구들을 향해 욕을 날렸다.

"야이, 니미 헐놈들아!"

성순에게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욕이었다.

흙을 털어내던 윤식은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씩씩대는 성순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 괜찮해?'

넘어진 것은 윤식인데 돌아본 성순의 표정이 곧 울 것 같은 얼굴이다.

또 그 불편한 눈물이 나오는 것이 싫어 윤식은 아무렇지 않은 척 무릎을 털었지만 찢어진 바지와 배어 나오는 피를 감출 수는 없었다.


"아..."

윤식의 다리를 보고 미간을 잔뜩 찌푸린 성순은 손수건을 꺼내 무릎을 꿇었다.

"괜찮당게..."

"뭣이 괜찮해! 카만히 좀 있어봐봐."

"......"

"언능!"


윤식의 마음이 어째 간질거리는 것 같았다.

아마도 꽃내음 섞인 봄 바람에 성순의 머리카락이 살랑거려서, 내가 간지러웠던가보다.

꿇어앉은 성순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묶어주는 손수건을 바라보았다.

깨진 무릎은 금방 나을 텐데 손수건이 더러워지는 것이 못내 속이 상했다.


"다 됐다!"

벌떡 일어난 성순의 얼굴이 퍽 가깝다.

'웃는 얼굴이 이랬나...?'

"... 오메, 미안!"

물러선 성순이 허리를 숙여 무릎을 털었다.

서둘러 책보를 챙긴 윤식은 성순과 나란히 집으로 향했다.

그 아이와 함께 걷던 그때의 그 걸음이, 그가 낼 수 있는 가장 느린 속도의 걸음이었다.


그리도 순박하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러나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윤식이 광주로 올라왔듯 성순도, 친구들도 모두가 뿔뿔이 흩어졌다.




"근디 왜 나와있냐? 안에 있제..."

혹시나 버스가 망자를 놓고 갈까 걱정된 윤식이 물었다.

"여기 차사 선상님이 뭐가 이상하다고 해갖고요..."


"아시는 분이세요?"

때마침 버스 안에서 나온 차사가 물었다.

이 버스의 차사는 현미처럼 비교적 젊은 여자 차사였는데 키가 크고 호리호리 한 것이 통통한 현미와는 달랐다.


"예, 어릴 적에 한 동네서 컸어라."

"아..."

차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다시 갸우뚱거린다.

"이분... 성함이 명부에 없어요."

"잉? 명부에 없다고?"

차사의 명부를 함부로 볼 수 없는 윤식은 잠시 생각하다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혹시 이름이 다른 거 아니여? 우리 때는 출생신고 대신 해준다고 헌 사람이 이름을 요상하게 써브러갖고 이름 바뀌고 그랬잖어. 나도 이름이 바껴갖고 주민등록상 이름하고 어릴 때 이름이 달러요."

"아뇨. 아까 그것까지 다 확인했는데 없어요."

"그러믄 왜 없다냐..."


차사의 설명으로는 그녀가 비슷한 이름 때문에 따라온 것 같다고 했다.

이 병원에서 차사가 부른 망자의 이름은 '정형순'.

이 망자의 이름은 '정성순'

그녀는 희미한 의식의 끝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고 착각해 스스로 따라나선 것이다.


"아...! 너는 왜 니 이름도 아닌디 따라가냐...!"

그저 귀에 들려서 따라온 것을.

동그랗게 뜬 성순의 눈에 약간의 억울함이 차오른다.


고민하던 차사가 면박주는 윤식을 말렸다.

"아뇨, 아뇨! 따라온 분이 잘못이 아니라, 망자는 있는데 명부가 없는 게 이상한 거예요..."

"허긴... 죽었으믄 델러 와야 하는 것인디..."


그때 땅콩이가 고양이 특유의 울음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야아아옹!"

내려다보니 성순의 발치에서 앞발로 땅바닥을 긁고 있었다.

"땅콩아 거기는 땅바닥이여. 깡깡해갖고 긁히도 안 해야. 니 그라믄... 응?"


땅콩이가 성순의 다리를 뚫고 지나갔다.

내려다보던 윤식의 고개도, 차사의 고개도 동시에 들렸다.


"성순이 너...!"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이 이번엔 동시에 성순을 바라봤다.

"망자가 아니네요...?!"

차사는 처음 겪는 황당한 상황에 놀라 목소리가 순식간에 커졌다.


"나... 뭐 잘못된 거여?"

"그게... 아직... 돌아가신 게 아니세요..."

"나 아직 안 죽었다고?"

"네. 아마도 혼수상태이신 것 같은데..."

차사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가고 있었다.


"그래도 이상한 게요... 차사의 목소리는 죽은 자만 들을 수 있는 소리라서요."

"근디 성순이가 들었잖어."

"그러니까 이상하다고요... 혹시..."

무언가 생각난 듯하던 차사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망설였다.

"뭔디? 언능 말을 해보시요!"

기다리던 윤식이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차사를 다그치자, 그녀가 성순을 보며 어렵게 질문을 꺼냈다.


"그니까... 음... 혹시 환자분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셨나요?"

차사의 물음에 윤식의 얼굴이 찬물을 뒤집어쓴 듯 얼어붙었다.

"......"

답이 없는 성순의 참담한 표정이 답을 해주고 있었다.


"아니...! 너 왜...! "

윤식의 목구멍이 메어왔다.

답을 하는 사람은 성순인데, 윤식의 얼굴이 울 것 같은 표정이다.


"너무... 아퍼서 그랬어요. 아퍼서... 어릴 때부터 아프던 것을 이 나이 먹도록 참았으믄 많이 참은 거 아니요? 약을 묵으믄 약기운이 심해갖고 하루 종일 잠만 자제... 안묵으믄 한번씩 엠병하게 아프제... 사람 사는 것이 아니여... 이 징글징글한 몸뚱어리 버릴 방법이 이것밖에 없는디 어찌라고요..."

대답하는 성순이 죄를 지은 듯 고개를 숙였다.


"너 잇...! 허우... 야이 자식아, 너는 자식도 없냐? 애들 냅두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속상한 마음에 윤식은 그녀를 혼내기만 했다.

"... 내 몸이 아프니까 자식새끼도 안 보입디다. 어차피 다 큰 자식들 인자 지들 앞가림 다 헐 것이고..."

그녀는 긴 시간 참아온 고통에 이골이 난 듯 보였다.


"니가 그렇게 가블믄, 남은 사람은? 그거 니 자식들 버림받은 새끼들 만드는 거여. 짐짝 같은 부모라도 있어야 의지를 하든, 원망을 하든 할 거 아니냐..."

윤식은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움켜잡았다.

따뜻한 윤식의 손에서 그의 마음이 느껴져 성순의 마음이 찌르르 아파왔지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니가... 오죽하믄 그랬것냐마는... 이대로 버스는 타지마라이. 다시 가서, 뭣이라도 먹고 버텨봐. 니 올 때까지 내가 저승에서 기다릴라니까 다급하게 오지 말고 천천히 와라이. 아프믄 애들한테라도 기대고. 포기하지 말고. 몸 생각해서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아플 때는 참지 말고 약 챙겨 묵어라이. 약기운 도는 것이 아픈 것보다는 낫지 않것냐..."


윤식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왜 없겠는가?

내가 도망치듯 떠나버리면 남은 가족들이 어떻게 살지 눈에 뻔히 그려지는 데 차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남은 사람들이 안고 갈 그 시꺼먼 멍은 누가 책임져야 할 것인가...

그리고...

죽는다고 인생의 고통이 사라지는지...

뭘 믿고 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넌단 말인가?

윤식은 죽음 후의 세계가 마냥 가벼울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펑펑 우는 성순을 토닥이던 윤식이 차사에게 말했다.

"내가 바래다 줄라요. 차사 양반 먼저 가시요."

윤식은 더 이상 토해낼 눈물이 없을 만큼 울고 난 그녀를 병실에 데려다주고 돌아왔다.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한바탕 울고 났으니 답답한 그 속이 한 주먹만큼이라도 가벼워지지 않았을까?


그녀가 오늘 나를 만난 사실을 기억할지는 모르겠다.

잘 챙겨 먹으라는 말을 지켜 줄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가 한 당부를 흐릿하게나마 꿈으로라도 기억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윤식은 몰랐지만, 그가 잡은 그 손에서 전해진 온기는 그녀의 마음을 돌리는 따뜻함이었다.

또르르 눈물을 흘린 그녀가 눈을 뜬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윤식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가 두 손으로 전해준 마음만은 남아 그 손으로 밥을 챙겨 먹고, 약을 챙겨 먹고 남은 날을 조금 더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긴 시간 그가 저승 버스 정비사로 일하며 마음을 고쳐 준 많은 망자 중에, 첫 번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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