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

by 김휘성

공항 안에서의 직업은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다. 조종사, 승무원, 정비사, 공항 서비스 직원, 조업사, 관제사. 모두가 항공기를 중심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말 그대로 ‘우물 안’에 모여 사는 개구리들이다. 특히 정비사나 조업사처럼 항공기 주기장 근처, 즉 보안구역 안에서만 생활하는 직군은 외부 세계와 더 단절된 삶을 산다.

하루 대부분을 같은 장소에서, 매일 같은 사람들과, 비슷한 리듬을 따라 살아간다. 퇴근 후의 삶도 반경이 크지 않다. 다른 항공사로 옮겨도 여전히 공항이라는 틀 안에서 머무르고, 거주지도 공항 근처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이 작은 우물은 분명 단단하고 안정적이지만, 그만큼 폐쇄적이기도 하다.

가만히 돌아보면,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우물 안에 갇혀 살아간다. 신입 시절, 나는 업무의 전체 흐름이나 맥락은 잘 보지 못했다. 내가 맡은 일이 어떤 역할을 하고 큰 틀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그저 하루하루 눈앞의 지시에 반응하며 매뉴얼대로 움직였다. 마치 정해진 스크립트를 따라 반복하는 배우처럼, 내 시야는 내가 받은 역할 그 너머를 넘보지 못했다. 학생 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성적과 진학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세상을 바라봤다. 사회가 정한 틀, 주변의 기대, 주어진 루틴이 나를 감싸고 있었고, 나는 그 안에서 고민하고, 안도하며, 때로는 숨을 죽였다. 더 큰 세상을 들여다볼 여유도, 용기도 없었다.

하지만 우물은 장소나 역할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결국 ‘생각’도 하나의 우물이다. 생각의 깊이가 좁고 얕으면, 세상은 딱 그것 만큼만 보인다. 보지 못한 세계는 마치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결국 내 경험과 감정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게 된다. 생각의 우물을 넓히려면,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부딪히고, 더 많이 경험해야 한다.

중국의 사상가인 장자는 제물론에서 말하길, 그는 어느 날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꿈에서 깨어보니 자신은 다시 장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묻는다. "나는 꿈에서 나비가 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지금 이 순간, 나비가 꾸는 장자의 꿈일까?"
이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농담이 아니다. 현실이라 믿는 이 세계가 과연 진짜인지, 아니면 단지 하나의 관념, 익숙함, 틀 속에 있는 것인지 되묻게 만든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이 ‘진짜’인지는, 직접 체험하고 부딪쳐 보기 전엔 알 수 없다.

집 안에서 뉴스를 보고, 날씨 앱으로 기온을 확인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날의 체감 온도는 집을 나서 직접 걸으며 바람을 맞아보기 전엔 알 수 없다. 보고서 속 숫자가 말해주지 않는 현장의 냄새, 습기, 햇살의 무게 같은 것들은 책이나 데이터로는 알 수 없다.
그건 오직 ‘경험해 보는 것’으로만 얻어진다.

아버지가 되기 전까지 나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그저 아들로서의 시선으로만 이해했다. 내게 책임감, 양육, 가장이라는 단어들은 있었지만, 그것이 실제로 내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를 품에 안고, 밤잠을 설쳐가며 돌보고, 그 아이가 나를 “아빠”라고 부르던 순간, 나는 실감했다. 아버지의 삶은 단어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겪고 감당해 가며 몸으로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행도 패키지보다는 자유여행을 선호한다. 패키지여행은 정해진 시간표와 동선 안에서 그저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해 준다. 유명한 곳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고, 쇼핑을 하지만, 결국 그 나라는 딱 내가 기대했던 장면만 남는다. 반면 자유여행은 낯선 골목에서 길을 잃고, 언어 장벽에 부딪히며, 뜻밖의 친절을 마주친다. 그 순간, 나는 그 나라를 ‘진짜 경험해 본’ 느낌을 받는다. 패키지여행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지만, 자유여행은 감정과 경험을 남긴다. 그것이 곧 나만의 체험이 되고, 지식이 되어 또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된다.

우물 안 개구리도 하늘을 본다. 하지만 그 하늘은 늘 정해진 지름만큼만 펼쳐진다. 우리가 우물의 벽을 허물지 않는다면, 그 너머의 하늘은 영영 볼 수 없다. 공항이라는 구조 안에 머무는 삶도 나름의 의미와 안정이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멈추지 않으려는 의지, 다른 세상을 알고자 하는 호기심, 내 생각의 반경을 넓히려는 노력이 없다면, 나는 결국 내가 만든 경계 안에서만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도 공항에서 일한다. 다만 그 우물 안에서만 살지는 않으려 한다. 지금의 현실이 전부라는 믿음을 조금씩 의심하고, 나만의 시야를 넓혀가고 싶다. 랜선으로 세상을 보지 않고, 직접 그 속에 들어가 체험하며, 느끼며, 부딪치고 싶다.
우물은 우리를 보호해 줄 수는 있어도, 세상을 이해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나만의 우물을 조금씩 확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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