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by 김휘성

어릴 적 우리 집은 산골에 있는 작은 마을에 있었다. 워낙 산골이라 수도시설이 따로 없었고, 마을 저수지에서부터 물을 끌어다 내려온 파이프를 이용해 물을 썼다. 덕분에 샤워기는 구경도 할 수 없었고, 마당 앞 수돗가에 놓인 대야에서 바가지로 물을 끼얹는 것이 나에게는 유일한 샤워였다. 겨울이면 물이 얼어붙어 사용하지 못하기도 했고, 온수라고는 가마솥에 데운 펄펄 끓는 물을 바가지로 퍼다가 대야에 섞어 쓰는 정도였다.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샤워를 매일 못하는 대신 읍내 목욕탕으로 모여들었기에 목욕탕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 가족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목욕바구니를 챙겨 읍내 목욕탕으로 나들이를 갔다.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내게 목욕탕 대욕장은 얼마나 뜨거웠는지, 발가벗은 채 김이 펄펄 피어오르는 곳에 들어가 앉은 아저씨들이 마치 가마솥 속 삼계탕처럼 보였다. 아빠의 손에 강제로 이끌려 열탕에 잠시 몸을 데우면, 금세 냉탕으로 달아나 수영하듯 물놀이를 하곤 했다.

목욕인지 수영인지 물놀이를 하다 보면, 어느새 몸이 퉁퉁 불어나있었고, 이때를 놓치지 않고 아빠는 나와 형의 때를 모조리 밀어주셨다. 껍질이 벗겨질 듯 따가운 때밀이질을 당하고 나면, 내가 아빠 등을 밀어주겠다며 나서서, 작은 손으로 아빠의 넓은 등짝을 빨갛게 일어날 때까지 있는 힘껏 밀어대며 복수하 듯 장난을 치기도 했다. 목욕 후 갈증을 달래준 것은 삼각 비닐에 든 바나나우유였다. 모서리를 이빨로 뜯어내고 빨대를 꽂아 꿀꺽꿀꺽 마시면, 왜 그리도 맛있었는지 생각만 해도 그 맛이 아직도 입안에 도는 듯하다.

나의 어릴 적 목욕탕은 아빠와의 물놀이였다.

요즘 서울에서는 찜질방이 아닌 동네 목욕탕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다행히 내가 사는 주변에는 아직 동네 목욕탕이 남아 있다. 얼마 전, 아들과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고, 처제의 결혼식 전 목욕재계를 위해 오랜만에 동네 목욕탕을 찾았다. 오래된 외관과 낡은 카운터의 좁은 유리창, 그리고 내부는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다. 그 시절과 다름없이 가족들로 붐비고, 냉탕에서 뛰노는 아이들로 북적였을 그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카운터, 이발사, 세신사 모두 60대 이상 노인 분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욕탕에는 뜨거운 물이 가득했지만, 우리가 첫 손님인 양 깨끗하고 조용했다. 낡은 샤워기와 수도꼭지는 예전의 영광을 이야기해 주는 듯했다.

매일 집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는 요즘이지만, 나는 아들과 함께 목욕탕에서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어릴 적 추억을 떠올렸다. 아들에게 목욕탕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때도 밀고 물장난도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래된 건물이 하나둘 사라져 갈수록 아쉬움이 커진다. 그곳에서 쌓았던 소중한 추억들이 희미해지고, 함께 웃고 뛰놀던 순간들이 기억 저편으로 멀어진다. 하지만 그리움은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마음속 깊이 새겨진 소중한 흔적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그 순간들의 온기와 가족의 이야기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더욱 빛나게 한다.

이제는 내가 아들에게 전하는 이야기와 함께 새로운 추억이 쌓이고 있다. 지나간 시간을 되새기며 그리움을 느끼고, 오늘을 살아가는 의미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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