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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그 어떤 누구보다 내가 제일 힘들다.

by 김휘성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은 "난 진짜 힘든 부대 나왔어"라는 말을 한다.

나는 전투경찰, 흔히 말하던 전경으로 군생활을 했다. 지금은 전투경찰이라는 제도 자체가 사라져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지만, 전투경찰은 원래 간첩을 잡기 위한 목적으로 창설된 행정부 소속의 준군사 조직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간첩의 존재는 희미해졌고, 전투경찰과 의무경찰 모두 시위 진압 부대로 그 역할이 바뀌었다. 내가 복무하던 시절은 바로 그 격변기였고, 나의 군 복무는 훈련이 아닌 실제 상황의 연속이었다.

닭장차라 불리는 진압 버스를 타고 도심을 누비며 시위대를 마주할 때마다 우리의 임무는 단순한 군사적 질서 유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육군에서 내걸던 구호처럼 ‘실전과 같은 훈련’이 아닌 매일같이 실전을 겪는 일상이었다.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 땀내 가득한 진압복을 입은 채 도시락을 한 손에 들고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밥을 먹고, 격렬해진 시위 속에서 마스크 쓴 누군가가 던진 날아오는 보도블록과 휘두르는 쇠파이프를 피하고 막아가며, 우리에겐 없는 총기 대신 방패와 진압복에 의지해 싸웠다. 그럴 때면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며 아드레날린을 뿜어냈고, 이 시간들은 목숨을 건 대치 속에서 인간의 본능과 마주했던 순간들이었다.

그렇기에 전역 후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진짜 힘든 부대 나왔어." 그런데 재미있게도, 친구들도 항상 똑같은 말을 했다. 각자 나름대로 군생활이 지옥 같았고, 자신이야말로 힘들기로 유명한 가장 힘든 부대 출신이라고. 하나같이 모두가 다들 진심이었다. 자기가 겪은 고통이 가장 컸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여 준 당시에도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너희보다 더 힘들었지.'

그렇게 청춘을 지나 어느덧 40대의 문턱을 넘어서니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진실이 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자신이 처한 상황이 가장 힘들다는 사실이다. 감정의 무게는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각자의 삶 속에서 느끼는 고통은 그 자체로 본인에게 절대적이다. 나의 군생활 시절 그 삶 속에서는 벽돌이 날아드는 전투경찰의 시위 현장이 지옥 같은 고통일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세상에서는 한밤 중 아이의 열을 재며 잠 못 이루는 밤이 끝없는 고통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스토아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의 『명상록』에서 "사람들은 사물을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 사물에 대한 판단이 사람을 괴롭게 만든다"라고 했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겪은 일이 가장 고통스럽고, 나만큼 고생한 이는 없다는 생각 자체가 고통의 진정한 근원이었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몰랐고, 나의 감정에만 집중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고통을 받아들이는 자세다.

스토아 철학은 우리에게 감정을 억누르라는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감정을 직시하고, 그 감정에 휘둘리지 말라고 가르친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외치며 그 누구보다 불쌍한 존재가 되려는 마음, 그것은 때로 스스로를 고통의 굴레에 가두는 일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삶의 무게가 있다. 그 무게를 들어주는 가장 단단한 힘은 공감이다. 그리고 그 공감은 '나도 힘들다'라고 외치는 순간이 아니라, '너도 힘들었겠구나'라고 말하는 순간에 피어난다.

가만히 되돌아보면, 내가 겪은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당시에는 버티기 어려웠던 기억들도, 지나고 나면 인생의 한 페이지로 남는다. 고통은 일시적이지만, 고통을 받아들인 태도는 영원한 자산이 된다.

나는 이제 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따로 없다. 다만 각자의 삶에서 각자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뿐이다. 나의 고통이 상대에게 절대적인 것이 아니듯, 타인의 고통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고통에 우열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함께 웃어주는 일이다. 그 웃음이 진심이라면, 그 어떤 위로보다도 깊이 닿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힘든 순간을 앞에 두고도 피식 웃을 수 있다. 힘든 순간에도 웃는다는 건 단순한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하나의 방식이다. 웃음은 상황을 바꾸지 못할지라도, 내가 그 상황을 대하는 방식을 바꿔준다. 그리고 그 방식이, 고통 속에서 나와 타인 모두를 살리는 힘이 된다.

오늘도 나만 홀로 힘든 것이 아님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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