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인 의미의 단어의 뜻은 똑같지만, 각자가 경험하고 느낀 그 단어의 느낌은 각자가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중 단어 하나를 꼽자면, 엑스포는 세계 박람회(世界博覽會, Exposition Universelle)를 뜻하는 단어로 국제박람회기구에서 주관하여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공인 박람회로, 각국의 특정 지역에서 몇 개월의 기간을 두고 여러 나라가 참가하여 각국의 문물을 전시, 교류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공공 박람회를 말한다.
사전적 의미의 엑스포는 이러하지만, 각자의 기억 속 엑스포는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1993년 개최된 대전엑스포 93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국제규모의 무역박람회로 무려 1450만 명이 관람한 글로벌 행사였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과학기술과 전 세계의 새로운 문물들을 둘러볼 수 있는 거대한 박람회였다.
많은 이들이 찾은 만큼 출품한 기업들에게는 크나큰 홍보의 장이었고, 기회의 땅이었으며, 찾아온 이들에게는 졸업 앨범과 소풍 사진을 남기는 추억의 장소였다. 나 또한 당시 국민학교 1학년 소풍을 대전엑스포로 갔으니, 기억에 남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내가 살던 시골 마을 속 그 조그만 분교에서 전교생과 학부모를 태운 45인승 버스 한 대가 대전 엑스포를 방문했다. 그렇게 많은 인파 속에 들어간 것은 나로서는 난생처음이었다. 입이 떡 벌어졌고 온갖 신기한 것들로 가득한 신세계에 눈이 핑핑 돌아갔다.
학생들은 단체로 줄지어 서서 여러 전시관을 둘러보았고, 우리 형제도 엄마의 손을 꼭 붙들고 함께 따라다녔다. 얼마나 둘러보았는지 다리가 아파 모두 잠시 앉아 쉬는 틈에, 나는 아이스크림이 눈에 띄었다. 할머니께 받았던 용돈으로 그걸 사 먹겠다고 줄을 섰고, 조금 뒤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고 뒤를 돌아본 순간, 나는 갈 곳을 잃었다. 그 많은 인파 속에서 내가 앉아있던 자리 주변으로 아는 사람 누구 하나 찾을 수 없었다.
심장이 바닥까지 떨어진 나는 아이스크림이고 뭐고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주변을 울면서 엄마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엄마를 잃어버린 그때의 슬픔은 계곡 깊숙이 혼자 떨어져 버린 듯 절망적이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있었지만, 결국 나 혼자였다. 얼마나 뛰어다녔을까,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나는 정신을 차려 보았다. 주변에는 아는 사람 하나 없었고, 안내소나 미아보호소 같은 주변시설은 고작 국민학생 1학년의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집 전화번호 하나 제대로 못 외운 꼬맹이가 시골에서 대전까지 놀러 와 길을 잃고 미아가 되어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안에서 찾지 못할 거면 차라리 밖에서 기다리자는 생각으로 엑스포 행사장 밖으로 나가 주차장 버스를 찾았다. 다행히 타고 온 버스를 발견했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아 그래도 밤까지 기다리면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기나긴 낮시간 햇볕은 아스팔트를 뜨겁게 달구었고, 더 이상 더위를 참을 수 없던 나는 둘러본 길을 다시 되돌아 가 보기로 결심했다. 어디쯤 갔는지도 모르겠다. 순간 그 많던 인파 속에서 나를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눈물범벅으로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엄마를 발견했다. 나도 그 순간 목놓아 울었고, 우리 모자는 다시 상봉했다.
아이를 잃어버릴 뻔한 악몽의 기억으로, 엄마를 잃어버린 슬픈 기억으로 우리의 대전 엑스포는 그렇게 추억된다.
당시 엄마도 나를 잃어버린 것을 알아채고는 형을 동네 아주머니께 부탁한 뒤 미친 사람처럼 엑스포 사방팔방을 소리 지르며 뛰어다녔다고 한다. 나 또한 그때 둘러보았던 새로운 기술과 물건들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놀라서 쿵쾅쿵쾅 가슴 떨리던 그 순간과 그것이 엑스포였다는 사실 빼고는.
이처럼 어떤 단어는 모두에게 똑같은 특정한 하나의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사전적 의미는 그저 사람들이 이름 짓고 명명하고자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같은 말을 두고도 각자가 기억하고 느끼는 바대로 다른 의미를 새기는 이유다.
결국, 단어가 품는 감정과 의미는 각자의 경험과 기억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같은 단어라도 어떤 이에게는 기쁨과 설렘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고, 또 다른 이에게는 아픔이나 슬픔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단어는 단순한 문자나 발음이 아니라, 개인의 삶 속에 깊이 새겨진 기억과 감정이 뒤섞여 만들어진 하나의 감성적 풍경이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를 넘어, 우리 각자의 내면세계를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마주할 때마다 떠오르는 감정과 기억은 다르기에, 그 단어가 가진 본래의 뜻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복합적인 의미를 품게 된다. 그래서 같은 단어라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온도와 색깔이 다르고, 그 차이가 바로 우리의 삶과 경험이 만드는 고유한 서사다.
이렇듯 단어는 우리 삶의 조각들처럼,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것은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하며, 또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단어의 의미는 결코 하나로 정의될 수 없으며, 그 다양성과 깊이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소통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