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人間). 말 그대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비로소 인간이 된다는 말이다. 사회라는 관계망 속에서 인간은 인간다워진다. 홀로 외딴 행성에 떨어진 사람이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그는 생존의 본능만으로 움직이는, 유대감 없이 살아가는 하나의 동물로 남을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의 특징을 ‘거짓을 믿는 능력’에서 찾는다. 동물은 실존하지 않는 개념. 예컨대 영혼이나 신 같은 것에 대해 타자와 공유하거나 소통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껍질 속의 보이지 않는 영혼’을 상상하고,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정하며, 그 상상을 사회적 유대로 연결시켜 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영혼에 대한 숭배,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상상력이 만든 가장 강력한 유대 도구였고, 그로 인해 인간은 협력할 수 있었으며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할 수 있었다.
사회 속 인간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만들어간다. 교육을 통해 축적된 지혜를 이어받고, 자신보다 더 나은 세상을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우리는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절대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동물로의 퇴행이다.
삶이 고단할지라도, 우리는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 우리 앞선 조상들이 원시 유인원 시절부터 사회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다운 삶은 사회 안에서만 가능하다. 나 혼자 잘나서, 똑똑해서 이룬 역사는 없다. 노예는 노예대로, 머슴은 머슴대로 사회를 구성해 온 주체였다. 계급이라는 구조 안에서도 모두는 인간이었고, 그 사회를 함께 일군 존재들이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누구나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누군가의 인정은 자존감을 높이고 삶에 행복을 더하지만, 반대로 비난과 냉소는 쉽게 마음을 다치게 한다. 문제는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이는 열심히 일하는 당신을 보며 “참 고달프게 산다”라고 말할 수 있고, 또 다른 이는 “저렇게 살고 싶다”며 존경의 눈빛을 보낼 수 있다. 평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므로 타인의 판단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진정 행복한가?’ 내 삶의 기준은 외부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정해야 한다.
요즘은 메시지 알림 하나에도 감정이 크게 요동친다. 연인 사이에서는 몇 시간 연락이 닿지 않으면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카톡 메시지의 ‘1’이 사라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불안을 느끼고, 읽고 답하지 않으면 ‘씹혔다’는 감정적 해석을 덧씌운다.
문제는 바로 그 ‘해석’에 있다. 상대가 아직 보지 않았을 수도 있고, 바빠서 답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곧장 그것을 '거절'이나 '냉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는 순간, 우리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불안의 포로가 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철학적 사고다.
고대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이다.”
(It’s not things themselves that disturb people, but their judgments about those things.)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메시지를 받지 못한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에 대해 우리가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해석이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겪는 갈등과 상처, 오해도 마찬가지다. 그 대부분은 사건 자체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판단’과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인간관계에서 쉽게 상처받고, 오해하고, 멀어지기보다는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혹시 지금 나를 괴롭게 만드는 건 사건이 아니라 내 안의 판단은 아닐까?
혹시 내가 해석한 방식과 상대의 진짜 의도 사이에 간극이 있었던 건 아닐까?
사람은 사람 사이에서 인간이 된다. 그리고 진정한 인간다움은 타인을 오해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태도, 쉽게 판단하지 않으려는 성찰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각자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때로는 그 렌즈를 벗어두고 바라봐야 진실이 보인다. 상대의 말과 행동 너머에 있는 맥락과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어렵지만, 관계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에픽테토스의 말처럼, 외부의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다. 세상은 언제나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그 흐름 앞에서 어떤 생각을 선택할지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판단의 틈 사이에서 오해는 자라지만, 그 틈에 이해와 여백을 심는다면 관계는 다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