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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by 김휘성

교대근무를 하는 나로서는 매일 지킬 수는 없지만, 야근으로 밤을 꼬박 새우는 날이 아닐 때는 항시 일어나는 기상 시간이다. 아침에 출근하는 날이면 5시 넘어 집을 나서기 전 30분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결심하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야근 출근을 하는 날이면 마음 놓고 4시에 일어나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도 읽고, 글도 쓰며, 마음을 가다듬고, 나를 돌이켜보는 시간. 누가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는 이 시간은 내 삶의 방향타가 되었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잠이 많지 않았다.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터라 새벽닭이 항상 아침을 알렸고, 부지런한 농사꾼의 아들로 아침이슬 속 상쾌한 풀 냄새는 매일 나를 일찌감치 단잠에서 깨워 주었다. 새벽 공기를 맡으며. 한번 깨어나면 일어나기 싫다며 뒤척이지도 않고 벌떡 일어나 하루하루를 선물처럼 맞이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낮잠 한번 곤히 자지도 않고 하루 종일 뽈뽈거리며, 엄마 아빠를 귀찮게 했다.

그 습관이 몸에 베인 건지 지금도 한번 깨면 쉽사리 자리에 다시 눕지 않는다. 새벽부터 분주히 내 일과를 하고 있노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부스럭부스럭, 날이 밝지도 않은 컴컴한 어둠 속에서 아들이 일어나 부스스한 머리로 나에게 다가와 안겨준다. 남은 숙제를 마저 한다고 일어나지만, 나를 닮아 성실하게 사는 모습이 왠지 짠하고 안쓰러워 보일 때도 있다.

졸음을 눈에 달고 나와서 엉덩이 토닥토닥해주면, 내 무릎 팍에 베고 누워 5분 남짓, 잠깐의 단잠을 다시 잔다. 머릿결을 쓰다듬고 볼을 어루만지며, 아들의 체온을 함께 나눌 때, 나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항상 떠오른다. 어수룩한 저녁 시간, 더운 여름날 할머니 무릎은 항시 내 베개였다. 툇마루에 앉아 계신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우면, 머리를 쓰다듬고, 볼을 만지작만지작, 파리모기 쫓아내는 연신 부채질에 여름밤은 더운 줄도 모르고 지냈다. 이젠 그 모습이 나에게서 보인다.

이상하게도 나의 할머니 기억은 툇마루 여름밤의 부채질로 기억된다. 항시 마음이 쓰인 손주 놈을 향한 마음 탓이었는지 지금도 "할머니"란 단어만 떠올려도 나는 눈물이 난다. 나도 이제 자식을 얻고 보니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지만, 내가 받은 사랑의 크기만큼 내 자식에게 주지 못하는 것 같아 항상 애달프다.

하지만 종종 핸드폰을 사용하다 날아오는 이름 모를 발신자의 메시지와 광고인지 쿠폰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각종 알림 때문에 사사건건 전화를 걸어오는 부모님에게 "이것도 몰라? 몇 번을 말해?” 내가 받은 사랑의 크기보다 더 못한 매정한 말로 매번 부모님을 타이른다. 애정 어린 한마디 말과 신경 써주는 마음이면 족한 것을, 그게 뭐라고…

나이가 들어 내가 제대로 한 사람 몫을 하는 성인이 되자, 나는 내가 잘난 탓에 이렇게 먹고사는 줄 알았다. 내가 공부해 대학 가고, 내가 시험 쳐 직장에 들어가고, 내가 노력해 승진을 하고. 그저 이기적인 놈으로 살아왔다. 집에서 항상 뒷바라지하던, 파리 모기에 잠 못 이룰까 걱정하는 부모의 모습은, 잠들어있던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었다는 이유로 마음속 뒤편에 꽁꽁 숨어, 일부러 꺼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곳에 두고는, 그렇게 있었는지도 모르게 지내왔다.

이제 자식을 낳고 키우며 살다 보니, 그 시간 속 나의 모습 뒤에 항상 그분들이 나를 떠받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모두가 받쳐주지 않았으면 올라서지 못했을 수많은 계단들을 그저 나는 나 자신의 근력으로만 올라선 줄 알았다. 새벽마다 일어나 책을 읽고 사색하다 보니, 나 혼자 잘나서 잘 된 일은 하나도 없었다. 내 행동의 바탕에 우리 가족 모두의 염원이 있었고,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았지만 수많은 격려와 응원 속에서 나는 성장했다.

여기서 스토아 철학의 중심 개념 중 하나인 "감사와 내면의 평정"을 떠올려 본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말했다. "우리는 아침에 깨어날 때 자신에게 말해야 한다. 나는 오늘도 외면의 혼란, 사람들의 무례함, 고통, 탐욕을 만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일이며,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나의 태도이다." 매일 새벽,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 즉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외부 세계는 매일이 혼란스럽고, 출근길은 막히며, 업무는 지치지만, 그 고요한 바로 이 새벽 시간, 나를 이루는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자 다짐하며, 내면의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

새벽 4시. 이는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인 것이다.

로마의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또 이렇게 말했다. "너에게 주어진 것은 네 몫이다. 그것을 온전히 누려라." 나는 이제 그 말을 곱씹는다. 부모에게 받은 사랑, 아들에게 주는 사랑, 그리고 내게 주어진 시간. 그것들은 내 몫이며, 나는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 동시에 그것을 다시 되돌려주는 책임이 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새벽 4 시, 누구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한다.

그것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다. 그것은 내 인생에 대한 태도다. 세상이 아직 잠든 시간, 나는 깨어 있고, 그 조용한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진짜 내 삶의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는 어릴 적 툇마루에서 들었던 부채질 소리이기도 하고, 내 무릎 위에서 다시 잠이 드는 아들의 숨결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껏 나를 떠받쳐 온, 모든 이름 없는 손길들의 메아리이기도 하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의 새벽이 되어주고 싶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고, 말없이 응원하며, 그 사람의 하루가 조금 더 단단해지기를 바라는 그런 존재. 그것이 내가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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