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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십니까, 그 한마디의 진심

by 김휘성

“괜찮으십니까?”

내가 복무하던 전경대에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하나 있었다.

“죄송합니다.”

일반적으로 ‘죄송합니다’는 상대에 대한 정중한 사과다. 사회에서는 사과의 의미를 가진 예의를 갖춘 말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 부대 내에서는 달랐다. 선임들은 후임들의 기강을 잡기 위해 ‘죄송합니다’를 금기어처럼 여겼다. 죄송한 일을 애초에 만들지 말라는 일종의 원칙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죄송하다는 말 대신 “괜찮으십니까?”를 사용했다.

죄송하고 미안한 일은 하지 말아야 했지만, 세상은 늘 변수로 가득했다.

하루는 소대 간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축구에 특별한 재능이 없었기에 골키퍼를 자처했다. 상대 소대에는 지독한 악마로 유명한 수경(군대에서의 병장계급)이 있었다. 펄펄 날아다니는 그의 발재간 앞에서 나는 말 그대로 온몸을 던져 공을 막아내야만 했다.

경기가 달아오른 어느 순간, 코너킥 상황이 벌어졌고 나는 모든 신경을 집중해 날아오른 공을 걷어내기 위해 점프했다. 높이 뛰어 공을 펀치로 쳐냈지만, 동시에 헤딩을 시도하던 그 선임과 내 팔꿈치가 부딪히며, 그대로 그의 안면을 가격했다. 바닥에 발이 닿자마자 그는 그대로 쓰러졌고, 얼굴을 부여잡고 신음하며 바닥을 뒹구는 선임의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줄줄 흘렀다.

부대 내의 모두가 당황해 얼음이 된 순간, 나 또한 어찌할 바를 몰라 입을 꾹 다물었다. 아니, 아니었다. 본능처럼 튀어나온 말은 “괜찮으십니까?”였다.

하지만 누가 봐도 괜찮을 리 없었다. 눈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 앞에서 "괜찮으십니까"는 한없이 어색하고 공허한 말처럼 느껴졌다.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할 수 없었다. 그건 허락되지 않은 언어였다. 나조차도 그 상황에서 오직 “괜찮으십니까”만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 급히 엠뷸런스를 타고 선임은 병원으로 실려갔고, 그 사고의 주인공 중 하나였던 나는 부대에 남아 모든 중대원들의 질타와 꼬일 대로 꼬여버린 앞으로 남은 내 군생활을 비관하는 동정 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불안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병원에서 돌아온 그는 한쪽 눈을 붕대로 칭칭 감고 나타났다. 그 모습이 마치 애꾸눈이 된 것처럼 보였지만 다행히 눈이나 시력에는 이상이 없었고, 찢어진 눈꺼풀을 봉합했다고 했다. 복귀한 그에게 다시 다가간 나의 첫마디도 여전히 “괜찮으십니까?”였다. 하나도 괜찮지 않았을 그가 내게 내뱉은 첫마디는 짧은 욕설 한마디였다. 하지만 그 말속에는 악의가 없었다. 우리 둘 다 그저 축구를 너무 열심히 했을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죄송합니다"는 말은 내 잘못에 대한 용서를 상대에게 구하는 말이다. 당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의미보다 결국 그 말의 중심은 ‘나’에게 있는 것이다.

반면, "괜찮으십니까"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당신’을 중심에 둔 말이다. 내 잘못을 변명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당신의 상태를 걱정하는 말이다.


내가 던진 그 “괜찮으십니까”라는 말속에 진심이 전해졌던 것일까. 그는 이후 나를 다르게 대했고, 나를 인간적으로 인정해 줬다.

몇 달 뒤 무사히 전역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를 걱정하던 내 마음도 그제야 조금은 가벼워졌고, 나 또한 무사히 군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지금도 누군가와 부딪히거나, 예상치 못한 사고의 순간이 오면 나는 가장 먼저 묻는다.

“괜찮으십니까?”

그 말은 단지 위기의 순간을 무마하는 말이 아니다. 타인을 중심에 두고, 그 안위를 가장 먼저 걱정하는 말이다. 그날 그 부대에서, 나는 말 한마디가 가질 수 있는 무게와 방향성을 배웠다.

‘내’가 아니라 ‘당신’을 중심에 두는 언어.

진심은, 그렇게 말속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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