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서 딸려 나온 웃픈 지렁이

내 인생 두 번째 의안 도전기

by 윙크의사

오랜만에 브런치에 접속했다. 마침내 책을 출간하고, 글 대신 현실의 삶에 충실하며 살아냈다. 어쩌면 나는 삶이 가장 고통스럽던 시절을, 글을 쓴 덕분에 넘어섰는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다시 글을 쓰게 된다면, 아마 또다시 많이 고통스러운 시점이리라. 그리고 지금, 나는 아주 오랜만에 타자를 적어 내려가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책 출간을 비롯하여, 수차례의 전신마취 수술과, 장애청년드림팀 해외 연수, 인간극장 방송과 세바시 강연,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고 또 그만둔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있었다. 2024년은 나에게 온통 찬란한 폭죽이 터지던 한 해였다. 한 사람의 인생에 어찌 이리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날 수 있는지, 지금 돌이켜봐도 믿기지가 않지만 말이다.


어처구니없게도, 나를 다시 노트북 타자기 앞에 데려다 놓은 것은, 눈에서 지렁이처럼 빠져나와 버린 실리콘 튜브였다. 야심 차게 두 번째 의안을 맞추러 간 날이었다. '이제 더 이상은 수술하지 말자며' 늘 따뜻하게 날 걱정해 주신 성형안과 은사님의 추천으로 찾아간 곳이었다. 집에서도 가까웠고, 의안사님 본인이 어릴 때 선천적 질환으로 안구적출을 하고 의안을 끼고 계신 분이라는 것이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의안을 맞추는 것은 여전히 무섭고 아픈 일이라, 이런 사소한 것들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두 번째 의안'을 맞추기로 한 것은, 하나뿐인 여동생의 6월 결혼식을 앞두고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첫 번째 의안은 재수술이 결정된 2023년 12월부터 끼지 못했고, 반복된 수술로 안구 구조가 달라져 이제는 힘을 꽉꽉 주어도 들어가지 않는 상태였다. 사실은 의안을 맞추는 과정이 상당히 아프기도 하고, 딱딱한 의안에 덮어씌워져 벌게지는 눈이 안타까워서, 쉽게 용기를 내지 못했다. 더군다나 첫 번째 의안을 끼면서 안구 주변 염증이 악화되어 예상치 못한 수술을 세 번이나 더 받아야 했던 과거의 경험이 나를 두렵게 했다.


의안사님은 내 이름만 보고도 누군지 알아챘다며, 낙마사고로 다친 사연까지 기억하고 계셨다. 첫 번째 의안을 맞춘 곳보다는 다소 자유로운 분위기였고, 서로 농담을 하며 뒤로 바짝 뉘어지는 의자에 앉았다. 엄마는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밖에 나갔고, 한편으론 이렇게 긴장되는 순간에 엄마가 옆에 있어주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내 눈 안으로 안구 주변 구조의 본을 뜨는 용액이 주입되었다. '아직까진 안 아프고 괜찮네..'라고 생각하던 찰나, 의안사님이 "어, 이거 뭐지?" 하며 불안한 음성을 뱉으신다.


의안사님 : "실리콘 튜브가 있었어요?"


3개월 전 안와 주변의 감염된 플레이트를 빼내며 눈물길 재건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재건한 눈물길이 다시 막히지 않도록 유지하기 위해 넣어둔 실리콘 튜브였다. 1달 뒤쯤 외래에 방문해서 튜브를 빼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고, 그전에 의안을 시도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담당 교수님께 들은 터였다.


의안사님 : "이거 빠져나왔는데, 이거 잘라야 할 거 같은데"

나 : "헉, 그럼 안되는데..."


의안사님이 무언가를 잘게 뜯어내는 소리가 들린다. 핀셋이 날카롭게 부딪히는 소리가 가슴을 찢는 것 같았다. 수초 수분의 시간이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작업을 끝내신 의안사님은 못내 미안한 눈치로 거울을 건네주셨다. 거울 속 비친 왼쪽 눈에는 기다랗고 투명한 실리콘 튜브가 2cm는 넘게 길게 빠져나와 있었다. 본을 뜨기 위해 주입한 액체에 들러붙어 빠진 것이다. 어차피 보이지 않는 눈이었지만, 실리콘 튜브가 눈앞에 둥그렇게 늘어져 있는 모습이 꽤나 흉측했다. 이번 주에 예정되어 있는 중요한 약속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의안.jpeg 왼쪽 눈에서 길게 빠져나온 실리콘 튜브


악몽 같은 기억이 떠올랐다. 2023년 7월 오른쪽 눈 눈물길 재건 수술도 받았는데 (사고 당시 실명하지 않은 오른쪽 안구 주변 뼈도 부러져 눈물길이 막힌 상태였다), 마땅히 잘 유지되어야 할 실리콘 튜브가 반복적으로 눈에서 튀어나와, 수술방과 외래를 수차례나 들락날락했던 악몽이었다. 눈 바깥으로 삐죽 튀어나온 실리콘 튜브는 핀셋으로 조심히 집어넣으면 또다시 지렁이처럼 튀어나오는 것을 반복했다. 특히 보이는 쪽 눈이라 더 겁이 났던 기억이 나는데, 똑같은 일이 지금 왼쪽 눈에도 벌어진 것이다.



IMG_9628.jpeg 2023년 7월 오른쪽 눈에서 빠져나온 실리콘 튜브. 다시 눈 안으로 집어넣으려 수도 없이 외래와 수술방을 들락거리는 시트콤 같은 상황이 벌어졌었다.


의안사님 : "실리콘 튜브 넣으신 분들은 많은데, 이렇게 빠져나온 건 처음이네요"


어떻게 사람 인생에 이렇게 비슷하게 황당하고 웃긴(?)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날 수 있을까. 사실 왼쪽 다친 눈은 눈물길 재건 수술을 벌써 세 번째나 받은 터였다. 이제야 드디어 증상이 좋아지고, 안정되나 싶었는데. 역시 사람 인생은 예측대로 흘러가지가 않는다. 눈물길이 다시 막히게 되면, 또다시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두려운 마음이 벌컥 들었다.


나 : "하하.."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당황하면 웃음이 나온다 그랬나. 급히 담당 교수님께 연락드리고 사진을 보여드리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하신다. 그래도 병원 진료를 보러 갈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생각이 들었다. 두렵고 무서워 엄마 손을 꼭 잡고 나서면서도, 나는 여전히 자꾸 웃음이 나왔다. 갑작스러운 사고와 실명, 수많은 수술과 좌절을 통과하며 얻은 것은 '웃음' 뿐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앞이 보이지 않는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