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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Sep 16. 2020

결에 대하여

열번째 이야기

얼마 전, 김포에 새로 오픈한 진정성 서점에 다녀왔다. 진정성은 연희동과 여의도에서 몇 번 가본 적이 있어서 익숙한 카페였다. 사업을 확장하고 점점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갖추어 가고 있는 시점에서 공간에도 투자를 한다고 하여 궁금했다. 다실에서 차를 받으면서 직원 분과 이야기를 좀 나누던 중 잊고 지내던, 정겨운 말을 들었다.



“사실 다른 곳의 진정성을 몇 번 가봤어요.”



“네. 원래 진정성이 밀크티로 유명해졌는데, 대표님이 세계 이곳저곳 다니시면서 차에 대해 연구하셔서요. 그러던 중 차 자체와 쉼에 대한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그래서 서점은 다른 진정성과는 결이 다른 곳이죠”



. 정다운 말이다. 듣기만 해도 뭔가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말이다. 눈으로 보이기도 하면서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나무에도 결이 있고, 살에도 결이 있고, 사람에게도 결이 있다. 결은 이를 지니는 것의 지나온 시간을 말해준다. 나무가, 사람이 어떠한 고유의 성질을 갖고, 어떠한 시간을 지내왔는지.



모래사장에 있으면 파도가 부서져 흰색 파도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흰 물결은 모래에 잠깐 흔적을 남긴다. 무겁고 가볍기에 따라 파도에 쓸린 모래와 자갈이 어떠한 형태를 만든다. 결이다. 무거운 것은 멀리 가지 못하고, 가벼운 것은 멀리 간다. 맨발로 바닷가를 걸으면서 파도와 모래가 만들어내는 결을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하다. 금새 만들어지고, 금새 지워진다. 사실 지워지는게 아니라, 이전의 결이 새로운 파도를 만나면서 또 다른 결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아파트 지붕의 파라펫에서도 시간의 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결은 지나온 것을 머금고 있다. 이미 갖고 있는 것과 앞으로 다가올 환경이 새로운 결을 새긴다. 지나온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흔적으로서, 내일을 위한 토대로서, 결은 그렇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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