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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Sep 16. 2020

치우쳐진 관계에 관하여

열일곱번째 이야기

우리 관계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사실을 내가 매일 자각하게 되는 것은
네가 처음 걷기 연습을 하면서부터야. 너는 쉬지 않고 어딘가로 달려나가겠지.
네가 문지방에 부딪치거나 무릎이 까질 때마다 나는 너의 아픔을 내 것처럼
느끼게 돼. 마치 말을 안 듣고 멋대로 행동하는 팔이나 다리가 하나 더 생긴 듯한
느낌이지. 내 몸의 연장이니까 지각 신경이 느끼는 아픔은 고스란히 나한테
전달되지만, 운동신경은 전혀 내 명령에 따르지 않는 꼴이야.
정말 불공평해.
나의 본을 떠 빚은 움직이는 부두 인형을 낳은 기분이랄까.
계약서에 서명할 땐 이런 조항을 읽은 기억이 없어.
이것도 계약의 일부였단 말이야?


                                                                                                        「네 인생의 이야기」 중에서, Ted Chiang





관계는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의 개체 사이에서 발생한다. 관계는 상호적이다. 다만 살아 있는 것 사이에서의 관계는 때로 편향적으로 느껴진다. 아와 비아, 연인, 친구, 동료, 그리고 부모와 자식. 하나의 저울을 사용하지만, 양끝에 올리는 추의 무게가 다를 뿐이었다. 갖고 있는 추의 총량은 정해져 있지만, 상대보다 더 많은 추를 올린 쪽은 불공평하다고 느끼기 쉽다.



관계가 시작되는 순간, 저울질 또한 시작된다. A는 한 움큼을 올리고, B는 또 다른 한 움큼을 올리고. 상대가 얼마 만큼을 저울에 올렸는지 모른 채 일단 무게를 단다. 그 둘은 서로가 올려놓은 무게가 같아지기를 바라는걸까. 사실 상대의 무게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관계의 무게는 아슬아슬한 평형 상태를 이룬다. 여기서 평형은 둘이 같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평형 상태 : 계의 상태가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고 물질이나 에너지 등의 흐름도 없는 상태


모든 관계란 다 그렇지만 특히 살아 있는 것 사이의 관계는 더욱 어렵다.



사실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지만, 정과 역으로 변하는 것의 총량이 영인 상태이다. 안정한 상태인가. 그렇다. 하지만 다시금 살아 있는 것 사이의 관계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양쪽에 걸린 무게가 같아지는게 관계 초기에 바라던 종점이었을까. 예상과는 다를지 몰라도, 치우쳐진 관계도 평형 상태가 될 수 있다. 관계가 무섭다면 평형 상태에 대한 환상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불편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의도치 않은 평형이 마음에 들지 않다면, 무게가 같아지기를 원한다면 덜어내거나 더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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