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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Sep 25. 2020

빛과 공기, 잃고 싶지 않은 기본권

스물세번째 이야기


언제까지 이 얘기를 할 지 참 아련하다. 어느 순간부터 이 이야기를 잘 안 한 건 사실이면서도 지금까지도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 또한 사실이기에. Dead Pool 2가 관객에게 스스로가 가족 영화임을 관철시키는 것처럼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도 철저히 건축 이야기다. 믿기지 않겠지만 말이다. 




‘대입’. 대학 입학의 의미를 넘어 대규모의 시장이며 정치계의 핫 이슈다. 대한민국 교육의 메카라 불리는 대치동을 보면 무수히 많은 학원이 있지만, 그 정점에는 항상 ‘대입’이 있다. 가을 수시 모집부터 2월 정시 합격자 발표까지 각 대학이 제시하는 합격자 커트라인에 아슬아슬하게 발이라도 걸쳐보고자 ‘현역’, ‘재수생’, ‘n수생’이라는 이름 없는 군상들이 치열하게 경쟁한다. 일본의 아키하바라가 ‘덕질’이라는 행위가 만든 도시라면, 강남, 분당, 일산, 목동 등은 ‘입시’가 만든 도시이기도 하다. 위의 도시를 가면 학원가를 중심으로 도시 조직이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치 그 땅은 애초부터 학원이 들어설 것이라는 도시 계획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흔한 한국 학생의 길을 걸어왔다. 많이들 다녔다던 영어 유치원은 아니지만 미술 유치원을 다니다 말았다. 단풍을 파란색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유치원 선생님에게 혼난 이후로 일반 유치원에 다녔지만. 초등학교 때는 부모님의 선택 하에 방과 후 학교를 애용했다. 고학년이 되고 이제는 공부 좀 해봐야하지 않냐는 명목 하에 영어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특목고 열풍이 불었던 시기라 중학교 때는 신도시에 있는 특목고 전문 학원을 다녔다. 방학 때가 되면 ‘텐텐’이라는 시간표에 따라 생활했다. 특목고에 가서 기숙사 생활을 했고 다음 코스로는 교대역 인근 종합 재수 학원에 다녔다. 다년간의 수험 생활을 끝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특목고 전문 학원, 재수 학원, 그리고 대치동의 학원은 공통점이 있다. 프랜차이즈이며 모두 밖이 잘 보이지 않는다. 60명에서 300명까지 대형 강의실에 닭장 마냥 학생들을 앉혀 놓고 강단 위에는 인강이나 매스컴으로만 보던 스타 강사가 강의를 한다. 사람이 많기에 겨울에도 에어컨은 필수다. 창은 보통 없으며 있어도 테이프나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다. 아마 백화점에 창문이 없는 이유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프랜차이즈이기에 내가 다녔던 학원 외에도 다른 지역에 있는 학원도 인테리어나 공간 구성은 대개 비슷하다. 재수 학원의 경우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자연 채광과 환기 없이 형광등 아래에서 책만 본다. 저녁 시간이 되면 교대역 인근은 퇴근한 직장인과 재수생으로 가득하다. 둘 모두 해가 뜨기 전 집에서 나와 해가 지고서야 집에 가는 것이다. 


빛을 머금은 구름처럼 빛을 품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대학에 가고 나서 제일 좋았던 것은 3월 오후 3시에 밖에 있는 것이었다. 3월 오후에 내리는 햇살과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의 소중함을 그때서야 알았다. 그 전 몇 년간은 같은 시기에 나는 에어컨과 형광등 아래에서 생활했기에 그날의 분위기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빛과 공기가 그렇게 삶의 질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인 줄은 몰랐다. 미드에서 독방에 갇힌 사람이 협상 조건으로 내건 것은 창문 있는 독방이었다. 비슷한 일상을 오래 할수록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더욱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시국인 요즘도 다른 이유로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일상 속에서 당연시했던 것들이 시공간적 제약에 의해 갈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빛과 공기. 
다년간의 입시 생활을 통해 깨달은,
다시는 빼앗기고 싶지 않은 내 삶의 기본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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