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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Dec 20. 2020

어른이 된다는 것

마흔네번째 이야기


스물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술이나 담배를 살 수 있으면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 나이대에 하지 못하는 것을 하면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었으리라. 막상 편의점에서 술을 사도 그 누구도 ‘민증 검사’를 하지 않으니 일탈이라고 할 것이 없어진 게 내심 서운했다. 나라가 정한 법적 성인 연령은 사실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과연 내가 진짜 어른이 되었을까 하는 의구심만 남을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내 부모가 부모가 된 나이가 되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난 박수를 쳐주었다. 대단하다고. 나는 절대 이 나이에 부모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기억하는 그 희생만 해도 엄청난데,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아이를 가진다는 것만으로 진짜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 나름의 무게감이 있을 것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도 못하는 갓난 포유류에 대한 책임감. 본인 삶의 일부에 몸 밖에 다른 생명체가 자리잡는다는 것. 스스로 꽤 책임감이 있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나 말고 누군가를 위해 내 전부를 내어줄 수 있다는 그 간절함을 가져본 적은 없다. 



나는 물었다. 어떻게 그 나이에 부모가 될 수 있었냐고. 분명 하고 싶은 것이 많았을텐데, 그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냐고. 그러자 부모가 되어서 그럴 수 있었다는 대답을 들었다.


 부모가 되어서


나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마음 하나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본인도 모르게 달린 ‘부모’라는 꼬리표가 그 의미를 만들었고, ‘어른’이 되게 했다. 나 또한 그런 상황이었으면 좀 더 일찍 어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옛날에는 더 이른 나이에 부모가 되었던 것도 있겠지만 어떻게 그 나이에 그 무게감을 지닐 수 있었을까. 상황이 사람을 만든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그 이른 나이에 그 무게감을 지닐 수 있었을까.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1인분. 1인분만 하자. 사람이 사람으로서 기능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1인분이다. 밥 먹는 양으로는 시가로 1인분이 넘는데 왜 난 사람으로서는 1인분의 기능을 하지 못할까. 그래도 0.7인분 정도는 한다고 생각하며 위안 삼고 있지만 사실 1인분도 감당하지 못하는 삶은 매한가지다. 내 기준 ‘어른’은 1인분 혹은 그 이상을 하는 사람이다. 온전한 개체로서 존재하는 그 순간이 진정한 어른이 되는 순간이다. 경제적 자립은 물론 스스로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어른아이’, ‘애어른’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아이’와 ‘어른’이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만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자우림의 노래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듣게 된 지도 꽤 되어간다. 스물하나도 지났고, 스물다섯도 지났다. 뭔가 큰 벽을 하나씩 깨고 나온 느낌이지만 매번 더 큰 벽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직도 멀고 험난해 보일 뿐이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과 아직 아이로 남아있고 싶은 마음이 상충한다. 그래도 어른이 되어야 할 것만 같다. 어느 순간은. 



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

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 그런 듯 해.

그때는 아직 꽃이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

우~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스물다섯 스물하나」, 자우림


https://www.youtube.com/watch?v=4VxSjjtORb4

자우림, 스물하나 스물다섯 뮤직비디오, Youtube


다시 한 번, 내 나이에 부모가 될 수 있었던 부모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그들에게도 영원할 줄만 알았던 그 시절이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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