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번째 이야기
많은 이들의 인생 드라마 「나의아저씨」에는 징글맞은 3형제가 나온다. 박상훈, 박동훈, 박기훈. 첫째인 상훈은 퇴직한 백수다. 조기 축구를 좋아하고, 동네 친구가 많고, 매일같이 가는 술집이 있는, 그런 능글맞은 백수다. 막내 기훈은 실패한 영화 감독이다. 시나리오를 써보고자 하지만 써지지 않고, 이미 망해버린 전작 때문에 업계에서도 그리 평판이 좋지 않다. 또 자신의 시나리오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짓밟기도 했다. 이 둘은 생활력 강한 엄마와 같이 산다. 반면, 둘째 동훈은 어엿한 중소기업의 구조기술사다. 소원한 부부 관계 때문에 삶이 그리 재밌지는 않지만 변호사 부인에 집과 자식까지 있어 남들이 보기엔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극명한 대조 때문에 삼형제의 엄마는 첫째와 막내만 보면 매번 타박하고, 둘째는 애지중지한다. 보기엔 이래도 사실은 셋 다 사랑한다. 자식이니까.
드라마 초기의 상황만 보자면 삼형제 중에 현재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은 동훈이 유일하다. 사실상 백수인 상훈과 기훈은 집에서 티비를 보다가 과일만 먹어도 식충이라는 소리를 듣기 쉬운 존재다. 이른 나이에 퇴직한 맏형 상훈은 동훈만 보면 오래 버티라고 이야기한다. 삼형제 중에 일하는 사람은 동훈 하나라고. 그러니까 오래 일해서 엄마 호강하게 해달라고 말이다. 능글맞은 소리를 하다가 엄마한테 ‘고학력 빙신들’이라고 혼나면 또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집에는 고학력자가 셋인데 지금은 하나만 버젓이 일한다고. 공부가 밥 먹여주는 건 20년이 끝이라고 말이다.
우리 역사를 보면 보통 문인과 무인이 관료를 구성했다. 무인이 문인에 대해 우위를 점한 것은 고려시대 무인 통치 기간과 건국 즈음의 혼란스러운 시대를 제외하고는 없다. 또 의술이나 통역을 맡던 사람들은 중인이었다. 기구를 만들거나 과학을 연구하는 기술직도 상류층은 아니었다. 그러한 역사가 적어도 1000년은 이어져왔기 때문에 우리 문화는 책을 보는 사람들을 최고로 쳤다. 우리나라의 산업이 급성장하던 시기에도 신분 상승의 가장 좋은 방법은 공부였다. 문과라면 행시, 사시, 외시 합격만 하면 개천에서 용 났다라며 동네에 현수막을 걸고 잔치를 했다. 조선 시대에 그리 좋지 않은 직업인 의사와 엔지니어는 오늘날 꽤 돈을 많이 버는 축에 속한다. 결국에는 공부였다.
공부가 밥 먹여주냐. 이는 예로부터 내려오던 공부에 대한 환상을 비판하는 말이다. 오늘날은 개인 방송을 하는 사람들의 전성 시대다. 방송국 전파를 타던 연예인들도 개인 방송으로 넘어오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트렌디한 식당을 차려 요식업계의 강자가 된 사람도 많다. 배달을 해서 웬만한 중소 기업 직원의 월급을 받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최근 강세인 업종을 봤을 때, 관습적으로 생각하던 공부와 관련된 직종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공부에 대한 관념을 바꿔야 한다. 방송의 흐름이 지상파에서 플랫폼 채널로 옮겨가는 것을 읽는 능력, 맛있는 레시피에 좋은 공간을 곁들이는 능력, 코로나로 인해 배달 주문이 폭주하는 시대의 흐름을 타는 능력도 공부라면 공부다. 소득 수준으로 삶을 평가할 수는 없다. 학력으로도 평가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기왕이면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옷도 입고, 좋은 곳에 살기 위해서는 결국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다.
「나의아저씨」의 백수 상훈과 기훈은 친구가 하던 청소방을 인수해 생업을 이어간다. 그들이 시대의 흐름을 읽었다면 청소방을 할 게 아니라 청소방 플랫폼을 개발했을텐데… 어찌됐든 백수는 벗어났으니 다행이다. 우리 부모도 한평생 해온 직업을 내려놓을 시기를 앞두고 노후를 준비한다. 100년을 산다는데 60대가 은퇴 연령이라는 건 너무 짧다. ‘평생 직장’은 사라진지 오래고, 공부가 밥 먹여줄 수 있는 유통기한이 20년인 이 시점. 우리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