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memike Feb 23. 2021

90분을 위해 사는 사람들

쉰여덟번째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죽어도 선덜랜드」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죽어도 선덜랜드」의 내용을 다룹니다.


선덜랜드 AFC를 응원하는 선덜랜드 팬들


영국의 축구팀 선덜랜드 AFC는 16-17 시즌을 끝으로 영국 1부 축구 리그인 EPL(English Premier League)에서 2부 리그 Championship으로 강등되었다. Netflix Original 다큐멘터리 「죽어도 선덜랜드」는 EPL에서 강등된 17-18 시즌부터 시작된다. 



놀이의 규칙

스포츠는 놀이다. 자고로 놀이는 규칙으로 정의된다. 축구는 주심과 부심의 지휘 아래 전반 45분, 하프 타임 15분, 후반 45분, 그리고 경우에 따라 연장전 30분과 승부차기로 진행된다. 하프 라인(중앙선)의 센터 서클에는 하얀 점이 있다. 공이 놓이는 자리다. 양팀의 주장이 보는 앞에서 심판은 동전 던지기로 공격권을 정하고, 심판의 휘슬이 울리면 선공권을 가진 팀이 경기를 시작한다. 한 팀당 11명의 선수가 골키퍼,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 중 하나씩 포지션을 맡고, 나머지 교체 선수와 코칭 스태프들은 벤치에 앉는다. 팬들은 경기 진행에 방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응원가를 부르거나 소리를 치고, 머플러나 깃발 등을 이용해서 본인의 팀을 응원하고 상대 팀을 비난한다. 경기가 진행되면서 허용 가능한 태클, 반칙, 오프사이드, 스로인, 코너킥과 프리킥이 나오기도 한다. 경기의 목적은 단 하나다. 상대편보다 골을 더 많이 넣는 것. 혹자는 그런 말을 하기도 한다. 왜 22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공 하나 갖고 그렇게 싸우는지. 사이 좋게 공 하나씩 주고 놀라고 하면 되는 건 아니냐고. 그리고 수많은 관중들은 그 난투극을 목이 터져라 응원하느냐고 말이다. 그들이 공 하나를 위해 숨이 터지도록 뛰고 응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덜랜드의 역사

선덜랜드는 잉글랜드의 항구 도시다. 19세기부터 지역 주민들 대다수가 조선 사업과 광업에 종사했다. 꽤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많은 축에 속하는 도시다. 주중에는 조선소의 뜨거운 열기와 먼지로 가득한 광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축구를 보는 것이 선덜랜드 주민들의 일상이다. 그들이 고된 노동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주말의 선덜랜드 경기다. 대낮부터 펍(pub)에 모여 단체로 축구를 보기도 하고, 집에서 라디오로 중계를 듣기도, 시즌권을 끊어 경기장에 직접 가기도 한다. 선덜랜드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으면 남녀노소 불구하고 선덜랜드 AFC를 응원하는 것이 당연지사인 곳이다. 오죽하면 교회의 주말 예배에서도 오후에 있을 경기에 대한 기도를 하는데도 신도들이 당연히 기도를 할까. 이러한 지역 구단의 홈경기장의 이름 ‘Stadium of Light’는 구단이 지역 주민들의 피땀으로 일궈낸 것임을 자처하며 광부들이 어두운 광을 비추는 데 썼던 Davy Lamp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죽어도 선덜랜드」의 오프닝 장면에서도 경기장의 모습과 등대 혹은 램프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구단도, 도시도 서로를 향한 마음이 애틋하다. 


광부들이 사용했던 Davy Lamp(좌), 선덜랜드 AFC 홈경기장 Stadium of LIght(우)



90분을 위해 사는 사람들

「죽어도 선덜랜드」는 팬들이 보지 못하는 경기장 밖의 이야기를 그린다. 축구는 90분이면 끝난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티비 화면에 보이는 그 90분이 전부이겠지만 짧은 시간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다. 선수들은 끝까지 뛸 수 있을 지도 모르는 그 90분을 위해 주중 내내 훈련을 하고, 팬들은 고된 일주일의 주말을 반납하고서도 대여섯시간 거리의 원정 경기까지 따라가기도 한다. 선수와 팬이 다가 아니다.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 라커룸의 비품을 준비해주는 스태프, 훈련장과 경기장의 잔디를 관리해주는 직원, 구단의 행정을 도맡아 처리하는 직원, 티켓 부스의 판매원, 구단 전담 요리사, 팀 닥터와 물리치료사 등 많은 구단 관계자들이 있다. 또 선수들의 계약과 개인 관리를 위한 에이전시와 그들의 경기 승패에 조마조마하는 가족들도 있다. 구단의 리그 순위 경쟁에서 선수 개인의 기량도 중요하겠지만 안 보이는 곳에서 각자의 몫을 짊어지는 구단 관계자의 역할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경기장에서의 90분은 그 모든 이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덜랜드의 모든 관계자들은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 골, 그리고 경기의 승패에 기쁨과 슬픔, 환희와 절망, 모든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팬과 안티는 한끝 차이

2부 리그로 강등된 선덜랜드는 감독을 바꾸며 바로 다음 시즌 EPL로의 재승격을 노린다. 하지만 구단의 CEO 마틴 베인의 말대로 현대 축구에서 돈의 논리는 빠질 수 없는 법. 1부 리그의 막대한 중계권 수익과 티켓 파워를 잃은 선덜랜드는 기존의 좋은 선수들을 계약으로 붙잡을 수가 없다. 자연스레 팀의 단합력과 경기력은 와해되고, 팀의 성적도 중하위권이 된다. 상황이 악화되자 팀의 최고 득점자였던 공격수마저 2부 리그의 다른 팀으로 이적한다. “We are Sunderland! We are Sunderland” 응원 구호를 외치던 관중들은 급기야 팀의 선수들에게 야유를 보내기도 한다. 구단 CEO는 감독을 해임시키고 웨일즈 국가대표팀을 EURO 2016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이끌었던 크리스 콜먼 감독을 선임한다. 경기력에 실망했던 팬들은 위기에 빠진 팀에 훌륭한 감독이 왔다며 다시금 목청껏 팀을 응원한다. 부상으로 인해 오랫동안 뛰지 못했던 팀의 에이스 조니 허니맨도 돌아와 복귀골을 넣기도 하며 팀의 분위기는 다시 고조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팀은 다시 패배의 수렁에 빠진다. 다큐멘터리의 오디오는 몇 개의 에피소드 동안 야유로 가득 찬다. 팬과 안티팬은 정말 한끝 차이다. 팀을 사랑하기에 부진한 팀이 안타깝고, 미워서 야유를 보내는 팬들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질까. 그렇게 선덜랜드는 시즌 내내 2부 리그에서도 강등권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모두의 마음

종전에 말했듯이 「죽어도 선덜랜드」는 경기장에서 볼 수 없는 이야기를 다룬다. 부상 당한 선수는 경기장에서 볼 수 없으며, 몇 경기 동안 골이 없는 스트라이커의 마음은 경기장에서 헤아릴 수 없다. 팀의 중원을 담당하던 조니 허니맨은 경기 중 몸싸움으로 어깨 부상을 당한다. 그는 이전에도 부상으로 인해 시즌을 온전히 마치지 못한 경험이 있다. 이는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재활에 집중해야 하면서도 다시 부상으로 인해 뛰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과 부진한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그를 웃지 못하게 한다. 한편 시즌 도중 공석이었던 스트라이커 자리를 채우게 된 스트라이커 플레쳐는 몇 경기 동안 골을 넣지 못한다. 훈련 때마다 코치는 골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세와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골은 그 이후에 따라오는 것이니 걱정 말고 폼에 집중하자고 말이다. 수만명의 관중 속에서 경기력 하나로 평가 받는 선수의 입장에서 심리적 요인이 매우 중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구단 측에서는 멘탈리티에 대한 교육과 함께 필요에 따라 각 선수별로 심리 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 결국에는 그런 압박감을 이겨내는 것이 선수의 자질이고, 팀의 경기력과 순위에도 직결된다. 



팀이 시즌 막바지까지 강등권에 있자 팬들의 걱정은 점점 실체화된다. 구단 식당에서 일하는 요리사는 2부 리그로 강등되면서 85명의 직원이 구조 조정되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이번에 다시 강등된다면 필히 또 한 번 구단이 개편될 것임을 직감한다. 라커룸을 정비해주는 스태프도 다들 가정이 있고 갚아야 할 대출금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구단 직원이면서도 매 경기마다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던 선수들을 응원하는 팬이다. 한편 팀의 결과에 따라 본인의 일자리가 어찌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이기도 하다. 잔여 경기와 무관하게 강등이 확정되자 구단의 주축 스태프들 몇 명은 먼저 이직하기도 한다. 결과야 어찌됐든 구단에 대한 애착이 생겼을 사람들인데 경제적 이유로 팀을 떠나야 하는 상황은 아이러니다. 



강등이 확정되자 팬들은 경기장에서, 펍에서, 각자의 집에서 눈물을 흘린다. 부모 세대 때부터 응원해온 본인의 팀이 두 번이나 강등되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선덜랜드 축구 팀의 로고를 타투로 몸에 새기고, 죽어서 묻힐 관에 팀의 상징인 빨간색과 흰색 줄무늬를 넣기도 하는 지역 팬들의 마음은 늘 팀과 함께 한다. 선덜랜드 AFC는 강등되었지만 펍에 있던 한 팬은 말한다.


사람들이 뭉칠 수 있는 게 있는 한 계속 응원할 거에요.


그 팬의 말대로 팬들에게 선덜랜드 AFC는 뭉치기 위한 구심점이다. 지역 교사들의 축구 모임으로 시작한 시민 구단은 커뮤니티의 장이 되었다. 단순히 선덜랜드 AFC를 축구를 하는 팀만으로 이해할 수 없다. 삶의 희로애락을 달래주는 안식처이자 삶 그 자체이고, 지역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며,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신념에 가깝다. 어두운 탄광 속에서도 생을 이어 가기 위해 램프를 비추며 나아갔던 선덜랜드의 옛 선조와 현재의 그들의 모습이 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덜랜드의 선수들은 순전히 독립된 개인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 그들은 팬과 선덜랜드 지역을 대표하는 대리인이다. 챔피언십에서의 마지막 경기, 선덜랜드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뛴다. 그들 뒤에는 빨간색과 흰색을 온몸에 휘감은 선덜랜드의 팬들이 있기 때문이다. 시즌 내내 힘들었지만 이번 경기만큼은 질 수 없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그들은 승리한다. 팬들은 외친다. 


죽어도 선덜랜드라고. 


선덜랜드 AFC의 팀 로고, 그들의 모습을 다시 EPL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다른 동물의 근육을 이용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