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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Feb 25. 2021

땅이 말하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쉰아홉번째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더 디그」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디그」의 내용을 다룹니다.



터(명사)

- 집이나 건물을 지었거나 지을 자리

- 활동의 토대나 일이 이루어지는 밑바탕 



인간은 이제껏 땅 위에 살았다. 

삶은 어떠한 형태로도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 시간의 지속성은 다를 지 언정. 직장을 떠나면서 전임자가 미처 챙기지 못한 메모 한 장, 기숙사 침대에 누군가가 그려 놓은 낙서, 배송지를 바꾸지 못하고 이사 간 전 주인의 택배. 그 흔적은 그 사람을 알게 하게끔 만든다. 건축물의 경우 더 오랜 기간 지속되기도 한다. 짧게는 2, 30년의 앳된 건물, 길게는 몇 천년 전의 고궁. 개중에서 인간의 흔적을 가장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건 땅이다. 인간은 이제껏 땅 위에 살았다. 그래서 먹었던 음식의 잔해, 사용했던 그릇, 살았던 집이 땅에 화석으로, 유물로, 기록으로 남는다. NETFLIX ORIGINAL 영화 「더 디그」는 미망인 프리티 부인이 발굴자(excavator) 브라운을 고용하여 누군가의 터였을 둔덕을 파헤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땅이 말하는 과거 

발굴자(excavator)는 ‘발굴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뜻한다. 이는 고고학자와는 다르다. 영화 중간에도 박물관에서 고용한 고고학자가 등장하는데, 땅과 발굴된 것에 대한 그의 태도와 발굴자 브라운의 태도는 상반된다. 고고학자에게는 땅이 중요하지 않다. 오직 발견된 유물의 역사와 보존 상태만이 중요하다. 반면 브라운에게는 유물은 물론, 이를 발견하는 과정과 땅도 중요하다. 유물의 상태를 최대한 덜 훼손하기 위해 발굴 방식과 날씨까지 고려를 한다. 땅의 원형을 최대한 덜 해치기 위해서는 그냥 아무데나 삽을 꽂을 것이 아니라, 땅의 하중을 계산해서 발굴 시작점을 제대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비가 오면 풍화에 약해졌을 유물과 비에 무거워질 수 있는 땅을 지키기 위해 방수포를 쳐야 한다. 브라운은 땅이 과거에 대해 말한다고 이야기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도, 미래도 없다. 그래서 땅은 소중하다. 발굴 작업이 끝나고도 브라운은 복원 작업을 통해 원래의 땅의 모습으로 되돌린다. 유물 뿐만 아니라 세월의 흔적을 담았을 땅을 감사히 여기는 마음은 마땅히 배울 만하다. 


"말을 하죠? 과거가요", 바질 브라운의 대사 중에서


사진이 말하는 것

프리티 부인의 친척 로리는 입대를 앞두고 발굴 작업에 참여한다. 그는 발굴 과정을 사진을 찍어 기록을 남긴다. 한편 고고학 유망주를 꿈꾸는 페기는 남편을 따라 작업에 참여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현장에서 소외 당한다. 로리는 그럼에도 꿋꿋이 열심히 하는 페기를 눈여겨본다. 작업이 끝날 즈음 로리는 작업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인화해두고 입대를 위해 먼저 떠난다. 인화된 사진 속에는 항상 페기가 등장한다. 이를 본 프리티 부인과 페기는 로리의 진심을 깨닫는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순간을 프레임 속에 붙잡는 행위다. 좋은 사진은 필히 그때의 상황, 분위기, 감정을 담는다. 정지된 사진 속,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페기는 그렇게 살게 되는 것이다. 이는 땅을 통해 누군가, 그 당시를, 과거와 현재를 기억하고자 하는 영화의 맥락과 흐름을 같이 한다. 



영상미와 음악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씬(scene)이 있다. 대략 4:1 비율로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위의 등장인물을 담는 장면이 그렇다. 땅을 주제로 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늘이 많이 담기기도 한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작아진 땅의 비중 때문에 관객은 땅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는 이내 등장하는 드론샷, 혹은 하늘에서 찍은 땅의 장면으로 전환되며 땅의 웅장함, 모태성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하늘이 있기에 발을 딛고 살 수 있는 땅의 존재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오디오를 꽉 채우는 바람 소리와 음악이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뗄 수 없는 관계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준다. 



땅에 묻힐 프리티 부인과 땅을 파는 브라운 

프리티 부인은 자주 런던으로 향한다. 병 때문이지만 남들에게 내색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둔덕을 파헤치는 정확한 의도를 아무도에게 이야기하진 않지만 죽음을 앞두고 옛날부터 하지 못했던 발굴 작업을 끝내고 싶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언젠가는 죽어 땅에 묻힐 프리티 부인과 땅을 파내는 브라운의 대비는 묘하다. 땅은 누군가에게는 사(死)를, 누군가에게는 생(生)을 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라운의 땅에 대한 태도에서 알 수 있듯이 땅은 누군가에게 과거이고, 현재와 미래 세대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이기에 생과 사는 그리 다르지 않다. 결국에 땅은 인간의 삶을 고스란히 받아주는 존재인 것이다. 


땅에 대해 각자가 갖고 있는 감정이 다 다를 것이다.


영화의 제목은 ‘발굴’이라는 작업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영화 자체는 땅과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인간의 삶과 그 흔적, 생과 죽음, 그리고 회귀에 대해서 말이다. 많은 신화에서 땅은 엄마(母)로 표현된다. 생명체로 하여금 먹을 수 있는 곡식과 양분을 제공하며, 언젠가는 돌아가 안길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밟고 있는 땅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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