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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Mar 14. 2021

나는 애매한 사람입니다

예순세번째 이야기


어쩌다 보니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살아갑니다.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고민하며 살아갑니다. 흔히들 하는 성격유형검사도 해봤지만 스스로를 어떠한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생각했습니다. 이분법을 만들어진 경우의 수 속에서 어떤 경향성을 띄는 사람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걸 정체성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웠습니다. 특정 경향성이 짙은 사람이 아니라 생각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애매한 사람입니다. 변덕이 심한 사람이면서 줏대는 확실한 편입니다. 냉소적이지만 감성적이기도 합니다. 현실적이지만 꿈 꾸는 것을 좋아합니다. 외향적인 편이지만 나서기를 싫어합니다. 시끄러운 곳은 피하지만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합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지만 진실 또한 말하지 않습니다. 세밀함을 좋아하지만 항상 전체적인 형상을 상상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우선시하지만 보이는 것 또한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많은 부분에 있어 확고하지만 언제나 가능성을 열어 두고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스스로 보기에 이중적인 모습을 많이 갖고 있는 편입니다. 나를 표현할 많은 가면들이 있지만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이전에 모 교수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건축가는 배우 같은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배우는 극에 따라 여러 사람이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번과 다음번의 극에서 직업적으로, 성격적으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성별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 교수님이 말하고자 한 바는 건축가 또한 여러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을 지으려면 환자, 의료진, 운영진, 시설관리자의 입장 모두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학교를 지을 때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 영양사 등 교육에 관련된, 그곳을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되어봐야 합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스스로에게 어떠한 프레임을 씌워서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어떠한 사람이 될 수도 있게 말입니다. 



윤혜정 에디터와 배우 틸다 스윈턴의 인터뷰를 보며 천의 얼굴을 갖고 사는 배우의 삶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촬영 현장의 모습을 담는 사진 작업을 하기도 하는데, 본인이 담는 사진에 ‘개인도 아니고 캐릭터도 아닌, 중간 상태’의 배우의 모습이 그려진다고도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스스로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본인도, 작중의 어떠한 역할도 아닌 정체성을 지니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직접 찍은 사진에서 나 자신의 모습이 드러난다면, 그것 또한 행운입니다.


언젠가는 누군가 물어봤을 때 스스로 어떠한 사람임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딱 잘라서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하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제가 애매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모호함. 지금까지의 나를 이루는 대부분의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중간 지대에서 균형감을 지키며 사는 것이 좋습니다. 찍는 사진이나 그리는 그림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도 있다는데, 이런 모호함을 이야기하면서도 제 사진은 정면성이 강하고 명확한 편입니다. 이 마저도 애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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