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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May 09. 2021

글, 그림, 그리고 사진

예순아홉번째 이야기


사진기는 외양을 전달하는 상자다. 사진기의 작동 원리는 처음 발명된 이래 바뀌지 않았다. 피사체에서 나온 빛이 구멍을 통과하여 사진 건판 혹은 필름에 떨어진다. 사진 건판 혹은 필름에 발라 놓은 화학약품 덕분에 그 빛의 흔적은 보존된다. 

「사진의 이해」, 존 버거 



글, 그림, 그리고 사진은 서로 닮았다. 셋은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매개체로서 어떠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공통적이다. 형상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인간이 만들어낸 언어로 재창조하여 표현하고, 담고, 재현하여 그 결과물로 특정 형상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유사하다. 각각을 쓰고, 그리고, 찍는 사람을 모두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각각이 만들어진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기록물로 기능하기도 한다. 모든 문화와 마찬가지로 특정 양식이나 스타일, 혹은 유행을 따른다는 점 또한 비슷하다. 



많은 부분 닮았지만 셋은 엄연히 다르다. 글은 그 작업의 결과물로서 드러난 형상보다는 내용이 그림과 사진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그림과 사진에 있어서 내용이 눈에 보이는 외양보다 덜 중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제니 홀저처럼 텍스트가 담은 내용과 그 내용이 전달되는 외적 방법 모두 중요시하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가도 있기에 글의 형상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메시지의 전달에 있어서 외양이 차지하는 비중이 글보다는 그림과 사진이 비교적 크다는 것이다. 



작업 과정에 있어서 사진은 글과 그림의 대척점에 위치한다. 사진은 실재하는 것의 시간을 정지시켜 프레임 외의 것은 도려내는 과정을 거친다. 사진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필름 위에 담아낼 수 없다. 반면, 글과 그림은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상상이 충분히 담길 수 있다. 가능성의 측면에서 사진은 유에서 유를 창조할 뿐이지만 글과 그림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 작가에게는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있는 것을 프레임 안에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글에서는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우주의 저 건너편을 그릴 수 있다. 다만 그 형상은 온전히 작가와 독자의 몫이다. 그림은 글처럼 작가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세계를 그릴 수 있지만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게끔 한다.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늘 스스로 그리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다만 실제로 펜이나 붓을 들고 그리는 시간은 꽤나 적다. 추상적이기보다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기를 바라기에 붓보다는 카메라를 먼저 잡는 편이다. 상상이 필요할 경우에도 역시 그림보다 글을 먼저 찾는다. 그림의 장점이 상상력과 표현력에 있다면 나는 이를 잘 살리지 못하고 살고 있다. 익숙하지 않다고 느껴 그림을 내심 멀리하고 있는 듯하다. 글, 그림, 그리고 사진은 생각이나 사물, 현상을 종이 위에 고착하여 그것이 눈에 드러나게 한다는 점에 있어서 유사하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따라, 목적에 따라 그에 맞는 미디어를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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