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번째 이야기
기능
하는 구실이나 작용을 함. 또는 그런 것.
모든 것은 기능을 한다. 약은 병을 낫게 하고, 풀은 서로 다른 것을 접착하고, 이어폰은 소리를 혼자 들을 수 있게 한다. 때로는 무용함 마저도 하나의 기능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느 드라마의 등장인물이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한다고 했던 것처럼 무용한 것도 좋아할 수만 있다면 그 기능을 나름 하는 것이다.
흔히 건축의 3요소라 하면 구조, 기능, 미를 이야기한다. 얕은 경험에 의하면 가구에도 구조, 기능, 미 이 세가지는 건축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의자를 생각해보자. 무엇보다 의자는 사람이 걸터앉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기능에 해당한다. 그 기능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의자가 쓰러지지 않고 사람의 무게를 버틸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구조다. 그리고 보기만 해도 앉아보고 싶은 그런 의자가 있지 않은가. 미다. 지나치게 세 요소를 단순화하여 의자에 적용했고, 근현대에 들어 사람이 앉지 못하는 의자도 생겼고, 토마스 헤더윅의 spun chair는 앉아서 묘한 균형을 이루며 팽이처럼 빙글빙글 도는 의자도 있다. 그리고 괴상망측하게 생긴 의자도 허다하다. 디자이너들의 의자의 본질에 대한 생각과 위트가 이러한 예외를 만든 것이다.
가구는 사람의 행위를 결정 짓기도 한다. 앉기로 결심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사람이 쭈그려 앉을지, 걸터앉을지, 혹은 발을 땅에서 떼고 앉을지는 의자의 높이가 결정한다. 자주 가던 카페에는 같이 간 일행들이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서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테이블 하나를 두고 양쪽에 의자가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사람들이 음악 감상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대다수의 테이블을 치우고 깊숙하게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모두 한 방향으로만 배열했다. 같은 공간에 가구의 형태와 배치만 바뀌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이전처럼 대화하기 보다는 혼자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옆에 앉은 사람과 조용히 이야기를 했다.
집에도 수명이 있다. 때문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오래된 것은 가끔 갈아줘야 하는 경우도 있으며, 취향에 따라 개보수를 하기도 한다. 인테리어 공사도 만만치 않기에 집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는 가구만 교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내가 이전에 쓰던 가구는 불편했을 수는 있지만 오래 써서 익숙해졌고, 지금의 취향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들이 다수였다. 이번에는 침대를 새로 들이며 하나의 기준을 세우고 골랐다. 같이 사는 세대주께서는 아직도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돌침대나 근래에 나온 인클라인 기능이 추가된 침대를 권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기능을 추가하면서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미적으로도 과한 경우가 너무 자주 봤다. 그래서 오래 쓰고 쉽게 질리지 않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기능만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최소의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나라도 제대로 하면 된다.
이럴 때 쓰는 말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