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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May 25. 2021

움벨트(umwelt)

일흔한번째 이야기


움벨트(umwelt)

객관적인 현실이 아니라 하나의 생물체가 주관적으로 인지하는 세계, 

그 개체가 살아온 또한 지각하는 환경을 일컫는 말이다. 

「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 X 김원영



사람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생의 중심을 그 사람으로 볼 때, 중심이 생기면 늘 그 주변이 생긴다. 중심과 주변은 이분법상 서로 대척점에 있지만, 둘 중 어느 하나 없이 혼자 존재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생을 이야기할 때 그를 둘러싼 주변, 또는 환경을 뺄 수 없으며, 주변의 영향 속에 서 있는 그의 중심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누군가의 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게 영향을 준 객관적 현실과 그 사람이 그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지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분법은 용이하지만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중심과 주변만 해도 그렇다. 서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특정 지점을 중심으로 봐야하는 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주변으로 봐야하는 지 불분명하다. 



누군가는 내게 그랬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규명하고자 살아가지 않느냐고. 자아 정체성이 강한 사람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꽤 많은 시간 스스로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살았다. 그래서 설명 없이도 작업만 봐도 어떤 사람이 했겠구나 느껴지는 아티스트 혹은 프로페셔널을 동경했다. 나는 스스로의 중심 속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기 보다는 내 주변의 것을 흡수하여 각색하고 재생산하는 것을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인식해왔다.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가 크게 분리되지 않은 삶이었다. 중요한 것은 중심으로서 내가 주변과 만나 맺는 관계라며 주변 또한 나의 일부임을 위안 삼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에는 중심과 주변에도 위계가 생겨야 함을 직감하고 있다. 



중심으로서 주변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아무도 모르게 위계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위계가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인간 관계에서는 중심이 언제까지나 중심으로만 존재할 수는 없다. 각자의 주관적 세계에서 주변으로 인지된 무언가는 누군가의 중심일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회는 한사람한사람이 중심으로 존재하는 다중심 관계망이다. 


늘 명확하지 않은 이분법 속에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개인의 명확한 중심이 존재한다는 것은 과할 정도로 잡다한 주변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된다. 직업적인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반면 주변을 해하면서 과한 중심성을 내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각자의 중심과 주변이 어떤 것인지 헤아릴 수 있으며, 주변으로 생각한 것이 어느 순간 중심이 될 수 있음을, 혹은 이미 중심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타인의 삶이 각자 너무나 고유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쉽게 잊는다. 어떤 주관적 세계는 그 세계를 직접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조차도 전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차피 우리는 서로의 삶을 상상하는 일에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으니 모든 것이 무의미한 걸까? 나는 그 질문에 답을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타인의 삶을 애써 상상하는 일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사이보그가 되다」 중, 김초엽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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