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두번째 이야기
스케일(Scale)은 흔히 무언가의 규모와 범위를 이야기할 때 쓰는 말이다. 건축이나 지리학에서는 축척을 의미하며, 실제 대상과 그 대상의 크기를 줄이거나 키운 정도를 표기할 때 쓴다.
건축은 정교한 기계를 만드는 것과 같다. 사람의 영혼까지 어루만져주는 거창한 이야기까지 가지 않아도, 적어도 건축물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정교함과 세밀함이 필요하다. 집에서 가장 소홀히 여길 수 있는 화장실은 어쩌면 집에서 가장 복잡한 곳일 수도 있다. 거실이나 방에는 보통 전기만 제대로 공급되어도 되지만 화장실은 전기는 물론, 물의 순환이 원활해야 하고, 환기도 잘 되어야 한다. 겉으로는 매끈한 면일 수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설비들이 벽 뒤에 숨어 있다. 건물은 비가 오면 물이 새지 않아야 하고, 지진이 나도 무너지지 않고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건축가에게 책임감이 부여되는 것은 안정성에 대한 고민 때문이기도 하다.
건축물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짓기 전에 그 규모를 줄여 모형을 만들어서 미리 여러가지를 검토한다. 쉽게 말하자면 시뮬레이션이다. 검토 사항은 설계안의 적합성, 땅과 건축물의 관계, 구조, 심미성 등으로 복합적이다. 이때 스케일(scale)의 의미가 부각된다. 모형 혹은 도면의 크기와 실제 건물의 크기를 비율로 나타내 1:1, 1:10, 1:100, 1:200, 1:1000 등 다양한 스케일을 사용한다. 한 건물을 지을 때도 다양한 스케일을 이용해 건축물의 가능성을 검토한다. 보통 스케일을 통한 검토는 1:1000에서 시작해서 1:10처럼 뒤에 오는 숫자가 작아지는 순서로 진행한다. 이는 만드는 모형의 경우 그 크기가 실제로 점점 커지는 것이다. 여러 스케일을 이용하는 이유는 각각의 스케일에서 인지되는 것들이 다르기 때문이고, 작은 것부터 큰 것으로 보는 이유는 정밀하게 확인하기 위함이다.
학부에서 모형을 만들 때 다른 학생들보다 큰 모형을 만드는 스튜디오를 들은 적이 있다. 무언가 크게 만드는 것이 아무 생각 없이 좋아보였지만 막상 만들 당시에는 남들보다 두세배로 힘들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깨달은 점은 많은 부분 설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 뿐이었다. 스케일이 커지면서 그 전의 스케일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결정하고 디자인해야 했다. 크기가 커질수록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부족한 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모형을 작게 만들어 주변 건물이나 대지와 함께 보면 그 형상과 주변과의 조화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조금 더 크게 만들어 건물의 내부를 들여볼 수 있는 정도에서는 건물의 공간구성을 이해할 수 있다. 더 크게 만들면 공간감을 느낄 수도 있다. 또 건물의 일부를 1:1 크기로 만들어 시공 전에 발생 가능한 문제점을 확인하기도 한다.
스케일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 스케일은 관점을 달리 할 때 쓴다. 어떤 경우에는 줌아웃을 해서 숲을 봐야 하고, 반대로 줌인을 해서 나무와 나무의 내부 사정까지 봐야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관점에서 어떤 것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