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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May 04. 2021

여유에 관하여

예순여덟번째 이야기


인간의 행위 중에서 건축은 그 규모의 측면에서 꽤 큰 행위에 속한다. 건축은 사람보다 더 큰 크기의 무언가를 짓는 것이고,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이 투입되는 것이기에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규모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혹은 1:1 축척으로) 건축물을 짓기 전 건축가들은 실제보다 더 작은 크기로 모델을 만들어 실제의 모습을 상상한다. 또한 시공의 완성도나 구축의 문제 해결을 위해 실제 건축물의 전체 중 일부를 목업(mock up)으로 만들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이 시지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크기의 모델로 건축물의 형태와 크기에 대해 가늠해보고, 목업으로 실험을 해봐도 실제 건물을 지을 때는 예상치 못한 구축상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건축 모델을 만들 경우 항상 그 시작은 건축물이 올려질 대지(site) 모델이다. 경우에 따라 대지를 새로 조성하기 때문에 변동 가능성이 있는 대지 부분은 도려내어 탈부착이 가능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이때 흔히 탈부착할 영역을 정확하게 선으로 그려서 대지 모델을 만들면 되겠다는 착각을 한다.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들기 때문에 오차가 생기기 마련이다. 수치상으로 정확할 수는 있지만 모델을 만들며 모형 재료와 인간의 부정확함 때문에 예상했던 것처럼 탈부착이 쉽지 않을 수 있다. 1mm도 안 되는 오차는 누적되어 꽤나 큰 부정확함을 만들어낸다. 정확한 모델은 오히려 꽉 끼어서 들어가지 않거나 빠지지 않는다. 때문에 떼어낼 수 있는 대지 영역 모델은 분리와 결합이 쉽도록 여유를 두고 더 작게 만들어야 한다.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무실에서 상세 도면을 그려가면서 만전을 기함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시공을 하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기 십상이다. 의식하지 못한 어디인가에서의 오차가 쌓여 눈에 잘 보이는 곳에서 큰 결함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그 자리에서 새로 실측을 하고 도면이 아닌 실측을 기준으로 틀을 맞추기도 한다. 수직과 수평을 맞추는 것도 비슷하다. 정확한 수직과 수평은 불가능하다. 어느 정도 오차 범위 내의 차이는 정확함으로 간주한다. 


예측하지 못한 오차를 현장에서 맞추어 나가는 것도 여유가 필요하다.


인간의 행위는 모든 것이 불완전하며, 부정확하다. 딱 들어맞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심지어 정확한 계산을 기반으로 한 행위는 오히려 부정확한 것으로 가득한 현실에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때문에 어느 정도의 여유가 필요하다. 정확한 수치가 중요한 일을 할 때 숫자에 민감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부정확함에 대한 고민 때문에 하나의 수치라도 확인하는 행위는 성실함의 증거다. 하지만 정확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완벽해질 수는 없다.  


때로는 여유를 두는 것이 정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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