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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Apr 22. 2021

공과 사에 관하여

예순일곱번째 이야기


건축은 사람이 사용할 공간을 물리적으로 구축한다. 한 사람만을 위한 건축물이 존재할 수는 있으나, 대다수의 경우 건축은 사회적이다. 사유지에 지어진, 굉장히 사적인 건축물이라고 하더라도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은 다수이다. 주변에 울타리가 쳐져 있어 건축주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 또한 그 건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공간은 공공성을 지니게 된다. 때문에 모든 건축에는 ‘공(公)’과 ‘사(私)’의 개념이 들어간다. 



언제나 그렇듯이 서로 반대되는 두 개념은 모호하다. 그 어떤 공간을 두고서도 이 공간은 철저히 공적이거나 사적이라고 할 수 없다. 공간에 선을 그어 두고 이곳은 사적인 공간이고, 반대편은 공적인 공간이니 “이곳에 있는 나를 건드리지 말아주세요.”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경계의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두 개념은 물리적으로 실재하기에 각각에 대한 정의를 필요로 한다. 정의할 수 없더라도 실재함을 인정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언은 역설적이다. 주어는 객체, 혹은 개인을 이야기하면서도 술어 부분에서는 ‘개인=사회’라는 이상한 등식을 성립시킨다. 이는 사람이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끼친다. 외딴 섬에 있지 않는 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공간을 공유하면서 살아간다. 어떠한 이유로든 단체 생활을 하지만 그로 인한 피로감 때문인지 사적인 공간을 갈망한다. 



학교, 회사, 군대를 보면 알 수 있다. 수업 중에는 한 반에 모여 있지만 자습 시간이나 쉬는 시간만 되면 꼭 혼자만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가는 친구들이 있다. 옆 친구가 내는 소리가 거슬리거나 혼자 있으면 집중이 잘 된다는 이유로 반 구석에 처박혀 공부하던 친구 하나쯤은 다들 기억할 것이다. 회사에는 팬트리나 폰부스 등이 그러한 공간적 역할을 대신한다. 군대에서는 관리의 명목 하에 사적인 공간이 부재하지만 ‘동기 생활관’ 제도가 이를 보완하는듯 싶다. 


공간은 경우에 따라 때로는 공적으로, 때로는 사적으로 작동되어야 한다.


현대 사회는 어찌 보면 공적인 공간으로 넘쳐난다. 개인이 철저히 개인으로 남을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 유현준 건축가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익명성’을 제시한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간에서 ‘남들은 날 몰라’라는 마인드만 있으면 개인은 자유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설계 도판에 등장하는 ‘열린 공간’은 외부 공간이라든지 커튼월의 투명성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좋은 공적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간의 규모, 물성, 형태는 물론 프로그램과 사람의 행동 양식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좋은 공적 공간이 많아진다고 해서 사적 공간의 필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공공의 기능을 다하면서도 때에 따라 사적인 공간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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