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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Jun 21. 2021

마음의 정량화

일흔네번째 이야기

사람은 사회화를 거치며 ‘수’의 개념을 익힌다. 사과 한 개. 일 더하기 일은 이. 더 나아가서는 미적분과 벡터 같은 것도 배운다. ‘수’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또 이는 꽤나 효율적인 의사소통 방법이다. 의사소통을 위해 서로의 언어를 배우지 않고도 숫자와 연산 기호만으로 대화를 나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는 지구에서 가장 범용적인 언어라고 봐도 무방하다. 



10년간 진행된 마블의 인피니티 사가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와그의 딸 모건 스타크가 말한 “I love you 3000”이다. 토니 스타크가 딸을 침대에 재우며 우주만큼 사랑한다고 하자, 모건 스타크는 “3000만큼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에 토니는 자신의 아내 페퍼에게 “당신은 6에서 900 정도밖에 안 될걸?’이라고 한다. 3000이라는 숫자에 원 단위를 붙이면 요즘 마트에서 아이스크림 몇 개를 살 정도의 얼마 안 되는 숫자다. 하지만 꼬마 모건에게는 3000은 자신의 전부였을 것이다. 



얼마 전 유퀴즈에도 ‘인생 10년 차 어린이’가 나와서 신이 원하는 대로 돈을 주겠다고 하면 얼마를 받겠냐는 질문에 9000만원이라고 대답했다. 더 많은 돈을 받을 수도 있는데 왜 굳이 9000만원이냐는 질문에 10년 차 어린이는 그 다음 단위를 몰라서 그랬다고 대답했다. 아마 그 어린이에게도 그 숫자는 본인이 아는 최대의 숫자였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수는 세계를 이해하는 척도다. 우리가 처음으로 많다고 느끼는 숫자는 10이다. 손가락의 수를 넘어가는 순간 아이는 헷갈리기 시작한다. 본인의 세계는 그 정도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지겨운 설득 끝에 아이는 10보다 큰 수가 있음을 알게 된다. 1, 10, 100, 1000. 여기에 단위가 붙고, 제곱과 로그 같은 여러 기호가 붙으면서 아이의 세계는 점점 확장된다. 실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느껴보지 못한 숫자를 개념적으로만 이해하기도 한다. 그렇게 어른이 되고, 점점 숫자에 무감각해진다. 


어른이 되면서 작다고 느껴졌던 수가 커 보이고, 크다고 느꼈던 수가 작게 느껴진다.


문학적 감성이 있는 친구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때 “하늘만큼, 땅만큼”이라고 표현한다. 이과적 감수성이 더 뛰어난 모건 스타크는 같은 이유로 3000이라는 숫자를 말했다. 토니의 마지막 대사였던 “I love you 3000”가 많은 마블 팬들의 가슴 속에 여운을 주는 이유도 그 말을 할 때 토니의 마음이 어떠했을 지 깊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숫자로 정량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너무 정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마음의 총량을 나눈다면 누군가에게는 비교적 적게, 다른 이에게는 많게 갈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쉬운 생각이지만 이 또한 생각보다 어려울 듯하다. 아는 수의 단위가 커질수록 수에 둔감해지는 어른에게 아이들의 생각은 오히려 현명해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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