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다섯번째 이야기
지구에서 땅의 수평 방향으로 공을 던지면 공은 중력의 영향을 받아 대개 포물선을 그린다. 경험상으로, 혹은 이론상으로 중력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면 공이 언제 어느 지점에서 ‘뚝’하고 떨어진다고 해서 이상할 게 없다. 야구 선수들은 타자가 친 공이 어디에 떨어질 지 예측하고 그 자리로 뛰어간다. 반면 야구를 처음 해본 사람이 야구공의 낙하 지점을 예측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물체의 운동의 궤적이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계산하지 않아도 몇 번 관찰하고 경험하면 어렴풋이 감이 잡힌다.
이제는 초승달이 뜨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원을 그려 보름달을 상상한다. 달이 실제로 둥글다는 사실과 달의 운동 궤적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 초승달은 태양의 빛을 받는 달의 면에 지구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밤의 지구에는 그림자가 없는 달의 면만 보이는 것이란 걸 말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무언가 흐름이 존재한다고 생각되면 그 흐름의 방향과 속도, 그리고 양상을 예측한다.
우리는 모두 힘을 받으며 살아간다. 아직까지 인간이라면 누구나 중력을 받는다. 일상의 여러 압박과 스트레스 또한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특별한 누군가에게는 영감과 삶의 동력을 받기도 한다. 물체는 힘을 받으면 운동을 한다. 운동에는 속도와 방향이 있다. 속도가 0이라고 해서 힘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여러 방향의 힘의 합이 현재의 정지 상태를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자의이든, 타의이든, 어찌됐든 인간은 하나 같이 일단 어느 방향으로라도 쏘아진 물체다.
현재는 과거가 만든 것이고, 미래는 현재와 과거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돌이켜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래가 현재와 과거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는 궤적을 유추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된다. 다만 인간은 여타 운동하는 물체와 달리 의지가 있다. 인간에게는 내재된 힘이 있다. 그래서 인간의 궤적은 예측하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개인적으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한다. 누군가는 염세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주변에 이미 수많은 힘이 작용하고 있고, 나는 그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없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잘 가고 있는 걸까. 그건 두고 봐야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