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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Jul 04. 2021

유보의 미학

일흔여섯번째 이야기

우리는 매순간 선택을 강요받는다. 의지가 존재하는 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인간은 늘 선택을 한다. 상황에 어떠한 개입을 하지 않는 것 또한 누군가의 선택이다. 얼만큼 적극적이고 소극적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매번 선택을 한다. 



건축의 시작에는 선이 있다. 상상은 종이 위에 그어지는 선으로 구체화되며 점차 형상을 갖춘다. 단 하나의 선만으로도 공간은 구획된다. 이는 선택과 의지의 산물이다. 대개 건축 도면은 하나의 선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적어도 3개 이상의 선으로 한 면이 만들어지고, 이는 벽을 만들고 벽의 폭과 높이에 대한 정보를 담는다. 그리고 벽은 공간을 조성하고, 시작과 끝을 만들기도, 혹은 흐리기도 한다. 도면은 그 도면을 그린 사람의 수많은 고민과 선택을 담고 있다. 종이 위의 가상 공간이지만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선 하나하나가 내재한 마음을 말이다. 



백지 위 어디에 어떤 모양의 선을 얼마나 크고 작게 그릴 지 고민한다.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이곳이 맞을 지, 저곳이 맞을 지 모른다. 과연 이 정도의 크기가 맞는 지 또한 모른다. 한 번 그려본 뒤 선이 만드는 관계를 확인해보고 아니다 싶어 다시 선을 지운다. 어느 정도 감이 들면 선을 긋는 게 쉬워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단번에 선을 완성하는 사람은 없다. 



‘최선’이라는 말에는 조건이 붙는다. 그 조건은 시간이다. 주어진 시간 속에 가장 나은 선택이 존재할 뿐이다. 언제나 더 나아질 수 있다. 다만 생각하지 못했거나 상황이 맞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늘 고민한다. 주어진 상황과 시간 속에서 내릴 수 있는 좋은 결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선택은 가지 치기다. 한 순간의 선택은 그 이전의 선택과 관계를 맺고, 후행하는 선택에 영향을 준다. 때문에 시간이 허락하는 한 선택을 유보한다. 결정을 짓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더 나은 선택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본다면 유보 또한 누군가의 의지다. 


유보 또한  의지다.


확신은 우직하고 강인하다. 때로는 무지해 보이고 무섭기도 하다. 상황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언제나 더 좋아질 수 있다. 가능성의 탐구를 목적으로 하는 유보는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에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우리는 시간을 통제할 수 없기에. 그 순간만큼은 확신을 가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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