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아홉번째 이야기
단위 시간 동안에 이동한 위치 벡터의 변위로서 물체의 빠르기를 나타내는 벡터량
속도는 위치의 변화량을 시간으로 나누는 연산의 결과값이다. 흔히 초등학교 수학 시간에 배우는 걸로 따지자면 속도는 거리를 시간으로 나눈 결과값이다. ‘빨리빨리’의 사회 정신 속에 살아온 터라 속도를 보면 얼마나 빠르고 느린지, 그 결과치에만 눈이 간다. 하지만 속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거리와 시간, 그리고 그 방향성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거리는 두 대상의 공간적 간격, 혹은 물리적 길이를 의미한다. 이는 때로 두 대상 간의 심리적 격차를 지칭하기도 한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지구 반대편에 사는 펜팔과 몇 달이 걸려 도착하는 편지로 사소한 일상을 주고받던 이들 사이의 거리가 과연 멀다고 할 수 있을까. 반대로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가까워진 지구촌 시대, 코로나 시대에 화상 미팅 플랫폼을 통해서만 만나는 지구 마을 주민들 간의 거리는 여전히 가깝다고 할 수 있는가.
단순 공식 속 속도는 거리에 비례하며 시간에 반비례한다. 속도, 거리, 시간, 이 셋은 서로에게 변수로서 작용한다. 각각의 변수는 그 변화의 폭이 무궁무진한 것 같지만 실제로 어느 정도 한계치가 존재한다. 어느 시점에서 적어도 하나의 변수는 고정적으로 보인다. 가령, 인간의 속도는 정해져 있다. 속도가 정해지는 순간, 속도의 절대량은 중요해지지 않는다. 또한 시간은 인간의 의지와 능력과 무관하게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때문에 인간이 속도의 의미를 평가할 때는 오히려 거리의 가치가 중요하다. 진보의 관점에 익숙한 인간은 늘 ‘더 멀리, 더 많이’의 표어를 입에 달고 산다. 속도와 시간의 한계에 대한 인식 속에서 인간은 거리의 절댓값만을 늘리려고만 했다. 많은 사고들이 이러한 조급함으로 인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인정하는 장인과 명품은 짧은 시간 안에 탄생하지 않았다. 어떠한 것들은 일정한 속도로 밀도 있게 퇴적되는 시간의 산물이 더 중요하다.
속도는 위치의 변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위치가 변할 때 방향이 생긴다.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것과 부산에서 서울을 가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순간의 방향은 일정 시간 동안 달라질 수 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변화는 의지가 있더라도 일직선으로 곧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속도를 측정하기 위해 일정 시간적 여유를 갖는다. 과정이 어찌됐더라도 큰 흐름 속에서 방향이 옳다고 평가할 수 있다면 된다.
속도는 빠르고 느림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속도는 거리와 시간에 대한 것이고, 방향을 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