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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Aug 08. 2021

기억이 없는 건축

여든번째 이야기


아파트 값이 올랐다. 누군가는 지금이 주택 시장의 상승장이 한창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상승장의 끝물이라고 한다. 혹자는 MZ 세대는 ‘내집’을 소유할 수 없는 세대라고 한다. 포기하는 게 빠르다며. 지금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영화 파일을 다운로드하는 것을 신기해 한다. OTT 서비스가 널렸는데 굳이 드라이브에 용량을 차지하면서까지 파일을 소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알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말마다 비디오방에 가서 비디오나 DVD를 빌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몇 기가 안 하는 무형의 영화 파일조차 소유하지 못하는 시대가 왔다. 소유하지 못한다면 그보다 적은 돈을 내서 공유하고, 공유하지 못한다면 즐겨야 하는 시대. 



공유를 강요 받는 MZ 세대는 어김없이 5000원을 내고 카페에서 있을 한 시간을 샀다. 그래도 그 한 시간을 풍요롭게 써보고 싶었는지 소위 말하는 신상 핫플 카페에서 커피값을 투자했다. 최신 트렌드에 따라 디자인된 공간이었다.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곳이었고, 가구와 조경, 그래픽까지 어느 정도 신경 쓴 곳이었다. 핫플답게 사람들로 붐볐으나 좋은 공간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웅웅거리는 소리에 옆 사람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으며 편히 커피를 마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울리는 소리가 모든 공간에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적막함보다 약간의 소음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울림의 정도가 문제일 뿐이다.



좋은 공간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 역시나 뻔한 대답. 그렇다면 좋은 건축은 무엇일까. 익숙하지 않은 기이함을 보고 멋있다고 하는 이는 옆사람과 점점 더 취향을 공유하지 못한다. 높은 천장고와 큰 공간이 좋은 공간을 만드는가. 좋은 공간과 건축을 이루는 건축 요소는 존재하지만 각각의 요소가 좋은 공간과 건축을 만들지는 않는다. 최욱 건축가는 눈을 감았을 때 좋은 기분이 들면 좋은 공간이라고 말한다. 한승재 건축가는 좋아하는 건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쉬이 답하지 못한다. 건물보다는 낮에는 주차장이지만 밤에는 사람들이 쉬는 공터가 되는 주차장에 더 애착이 가는 듯하다. 결국 좋은 공간과 건축을 말할 때 분석적인 접근은 부차적이다.


좋은 공간은 무엇인가.


좋은 건축은 건축물이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 장소에서의 감각과 기억만이 남는 곳이 좋은 공간이다. 화려하고 빛나는 신축 건물은 1000년의 세월을 견디며 낡고 바랜 건축물에 비할 수 없다. 시간의 흐름을 간직한 공간은 깊이감이 다르다. 어디가 좋았냐는 질문에 건축물은 기억에 남지 않아야 한다. 건축은 비단 건축물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누구와 함께 혹은 홀로 있었는지, 온도와 습도는 어떠했는지, 바람이 불었는지, 비나 눈이 왔는지, 또 햇볕은 잘 들었는지. 여름의 바다와 겨울의 바다는 색이 다르다. 봄의 산과 가을의 산은 온도는 비슷할 수 있으나 숨을 쉴 때 냄새가 다르다.



 감각에 대한 기억만이 선명할 때,

건축물은 기억에 남지 않았을 때,

그러한 곳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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