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구나

산후우울증 녹이기 2 :: 바라보기

by 달빛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노트북 바로 옆에는 탁상 거울 한 개가 놓여 있습니다. 원래는 다른 곳에 두려고 산 것이었지만, 거기에 다른 물건들이 먼저 놓이게 되었기에 이곳에 머무르게 되었어요. 금강산에 도착하지 못하고 설악산에 주저 앉은 울산바위처럼요. 그런데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그 거울을 무심코 바라보게 되곤 해요. 그런데 그것이 종종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산후우울증, 이렇게 녹였어요_2 :: 바라보기


친구와 가족들에게 산후우울증이 뿜어내는 어두운 기운과 그 원인들을 툭 툭 털어 놓았어요. 그러자 천천히 가라앉는 우울의 앙금들. 하지만 그것들을 완전히 녹여버릴 수는 없었지요. 그런 저를 향해 신랑이 말을 던졌습니다.


"글로 한번 써봐요."


아기를 신랑에게 맡긴 후, 출산 후의 일들과 감정들을 차분히 적어 보았습니다. [자연분만을 하고 싶었는데 수술을 했다. 그 상황이 무척 비참했다. 모유수유를 잘 하고 싶었는데 잘 안 되고 있다. 그래서 속이 몹시 상하다] 따위를요. 그러고 그 문장들을 여러 번 읽었어요. 그러자 우울함을 불러온 일들이 제3자의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그 '제3자'에게 위로를 하게 되더라고요. [자연분만을 할 줄 알았는데 수술을 해서 마음이 안 좋았겠구나. 모유수유가 잘 안 돼서 속이 상하는구나]처럼요.


그러자 차차 떠오르는 무의식의 뼈대. 자연분만과 모유수유를 무조건 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내가 힘들었다는 것 말이에요. 그러데 그 두 가지는 사실 산모의 절대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것. 그런데 저는 왜 그런 희생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아온 걸까요. 사회가 보내는 무언의 압박 때문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그 통념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런 무의식이 생겼을 테고요. 그런데 그건 내 생각이 아니었잖아요. 설령 그게 내 생각이 되었다 할 지라도 상황이 안 되면 다른 길을 찾아보면 되고요. 그러자 이렇게 정리가 됐어요.


뜻하지 않은 몰골로 출산을 한 것도 맞다.

모유수유 과정에서 잘못된 처치를 받은 것도 맞다.

그런 출산 상황을 만든 의료진과 산후조리원에 일말의 책임은 있고, 그건 분명 개선되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병원과 조리원의 시스템 개선을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지금,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 그리고 아기를 돌보고, 복직 후를 준비하는 일.


결국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신에게 구명 튜브를 던질 수 있던 건 나 자신이었습니다. 멀리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또다른 나'요. 1초 전에도 습관처럼 거울 속에 비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너구나, 그렇구나, 글 쓰고 있구나, 라고 응원해주는 또다른 내가 있네요.


설화에 의하면 본디 울산에 있었다는 울산바위. 지금은 속초의 대표적인 명물이지요. 그런데 만약 울산바위가 예정대로 금강산에 도착해서 1만 2천봉우리의 하나가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목적은 달성했겠지만 수려하고 빼어난 풍경 속에서 그저 멋진 봉우리'들'의 일부가 되지 않았을까요? 지금처럼 소중하게 여겨지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문득, 옆에 있어준 탁상 거울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잘못된 무의식의 문을 두드려준 우울증에게까지 고마운 마음까지 생기려고 하네요. 그렇게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울함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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