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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시 Dec 17. 2018

죽과 수프의 거리

음식 에세이 7 :: 닭고기 무우 고구마 수프

중고등학생 때 무척 좋아했던 책이 있습니다. 공부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한두 쪽씩 읽던 이야기 모음집인데요. 카운셀러로 유명한 두 명의 미국인이 엮은 책이지요. 당시 그걸 골랐던 이유는 딱 한 가지,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라는 제목 때문입니다. 


그런데 책의 원제는 이것과 많이 다르지요.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Chicken Soup for the Soul '이거든요. 닭고기 수프. 요즘에도 살짝 생소한 느낌인데 책이 발표되었던 96년에는 얼마나 이물스러웠겠어요. 결국 책은 간판을 바꿔서 재출간 되었고, 시골 소녀가 자주 찾던 책방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더군요.


한데, 원제에 있는 닭고기 수프를 '닭고기 죽'으로만 빠꿔서 국내에 출시되었다면 어땠을까요?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은 제목에 있는 '우동'이란 단어만으로 일본스러운 느낌이 나듯. 닭고기 죽이라는 단어가 불러오는 한국적인 느낌이 책 속 서양 일화들과 등을 지게 될 듯해요. 수프와 죽의 거리는 이렇게나 멉니다.


그러고 보니 똑같이 닭고기를 사용한 이유식이더라도 죽과 수프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네요. 그중 하나는 우유(분유 혹은 모유) 첨가 여부입니다.



닭고기 무우 고구마 수프

    재료(3끼 분량) : 불린 쌀 15g, 닭고기 20g, 무우 10g, 고구마 20g, 물 70g, 우유(분유 혹은 모유) 100g

    도구 : 믹서, 체, 이유식 냄비

    과정 

        0. 쌀은 미리 불려놓기 (30분 이상)

        1. 불린 쌀을 믹서에 갈기 (물 20g과 함께) 

        2. 물 50g과 함께 닭고기 익히기 (육수 버리지 않기(치킨 스톡의 역할)) 

        3. 적당량의 물에 깍둑 썰기 한 고구마, 무를 삶기 (잘게 썰면 더 빨리 익어요)

        4. 고구마는 뜨거울 때 으깨기

        5. 2의 닭고기와 3의 무를 함께 믹서에 넣어 갈기 (잘 안 갈리면 2의 육수 몇 스푼을 넣기)

        6. 4,5를 2의 남은 육수와 함께 끓이기

        7. 끓으면 분유(혹은 모유)를 넣어서 농도 맞추기 (처음부터 다 넣지 말고 농도 맞춰가며 넣기)

        8. 7을 체에 거르기 

       


저희 아기는 이걸 7개월 즈음에 먹었지요. 그 무렵의 아기에게는 생우유를 줄 수 없기에, 이 수프를 만들 때에는 모유를 넣어 주었어요. 부족하다 싶은 날엔 분유를 넣기도 했고요. 다만 분유든 모유든 너무 오래 끓일 경우 영양소 손실이 크기 때문에 막판에 '후루룩' 넣어주는 기분으로 만들었답니다.


여기에서 죽과 수프의 두 번째 차이가 발견돼요. 죽은 오래오래 푸욱 끓여내는 것이 핵심인 반면, 수프는 애초에 만들어진 치킨 스톡에 다른 재료들을 추가해 만들기 때문에 죽보다는 불 위에서의 속도가 짧거든요. 만약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의 한국 버전이 나온다면 '내 마음의 보양식' 정도로 하면 어떨까요? 삼계탕이나 닭죽의 느낌을 살려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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