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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러기 Apr 12. 2019

아나콘다는 사람을 먹지 않는다

아마존 동물 이야기

경비행기에서 찍은 아마존 모습

“여기에도 아나콘다가 있어?”

내가 아마존에 도착해서 물었던 첫 질문이다.

어렸을 적 아나콘다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의 내용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지만 엄청나게 큰 뱀이 사람들을 잡아먹는 장면이 강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내가 아마존에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나의 가장 큰 궁금증은 정말 아마존에는 아나콘다가 있을까였다. 그래서 처음 기관에 도착해 동료들에게 물었던 개인적인 첫 질문은 여기도 아나콘다가 사는지였다.


“당연하지.”

‘정말로 이곳에 아나콘다가 산다고? 그럼 어떻게 해? 아나콘다는 사람을 잡아먹는데,, 우리 괜찮은 거야?’라고 묻고 싶었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언어 수준으로 할 수 있는 말은 “아나콘다 사람 먹어”였다. 그럼에도 나의 표정과 억양으로 사람들이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을 이해했는지 “아나콘다는 사람을 먹지 않아.”라고 말하며 안심해도 된다는 표정을 지어 주었다.

아나콘다가 사람을 먹지 않는다고? 그럼 그 영화의 내용은 과장이 아니라 아주 거짓이었던 것인가? 알고 보면 아나콘다는 생각만큼 그렇게 큰 뱀이 아닌 건가? 더 많은 것을 자세하고 묻고 싶었지만 도저히 내 스페인어 실력으로는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다.


6개월쯤 지나서였다. 아마존 부족 마을을 다녀오는 어스름한 저녁 무렵, 내가 타고 있는 차 앞으로  아주 큰 고양이 한 마리가 빠르게 지나갔다. 이런 정글에 무슨 고양이지? 그리고 고양이라 하기엔 너무 큰 게 의아해 운전하는 동료에게 지금 지나간 것이 뭐냐고 물었더니 호랑이란다. 아마존에 호랑이가 있다고? 처음 듣는 말이라 친구가 나를 놀리나 싶었다. 그래서 나도 저것이 호랑이이면 우리 다 먹히는 거 아냐? 하며 웃으며 말했더니 동료가 “괜찮아. 호랑이는 사람을 먹지 않아.”라고 대답했다. 집에 돌아와 아마존 호랑이를 검색해보았더니 아마존에서는 재규어를 호랑이라고 부른다고 적혀 있었다. 너무 빠르게 지나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보았던 것과 사진 속 재규어는 몹시 흡사했다. 재규어가 사람을 먹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나, 동료가 나를 놀린 게 맞았다.


나는 시청의 인력개발부에서 일했는데 우리 부서는 한국으로 치면 시민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 사회복지와 생활민원 등을 처리하는 곳이었다. 우리 부서 중 하나인 재난과 직원들이 갑자기 분주해지더니 장총을 들고 나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아나콘다가 송아지를 먹고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연락이 와서 잡으러 나간다고 했다.

“뭐라고? 아나콘다는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다며?” 내가 놀라서 다시 묻자

“응, 아나콘다는 사람을 먹지 않지, 하지만 소는 먹어.”라고 답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 건지, 내가 얼마 전에 아주 큰 고양이 같은 걸 본 적이 있는데 그게 재규어가 맞냐고 물었더니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럼 재규어는? 재규어는 사람을 먹지 않냐고 물었더니 재규어도 사람은 먹지 않는단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바삐 나가는 직원들을 더 붙잡고 물을 수가 없었다.


몇 시간 후 돌아온 직원들이 사진을 보여 주었다. 나의 어릴 적 기억만큼 집채만 하지는 않더라도 십 미터는 족히 될 것 같은 거대한 뱀이 송아지를 통째로 삼킨 듯한 모습으로 찍혀 있었다.

“아나콘다가 송아지를 먹을 수 있다면 사람도 잡아먹을 수 있는 거야. 호랑이(재규어)도 사람을 해칠 수 있어.”

동료들이 자꾸 나를 놀리는 것 같아 웃음기 없는 얼굴로 강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아나콘다는 사람을 먹을 이유가 없지, 재규어도 그렇고, 사람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그들이 사람을 공격하지 않아. 사실 사람이 먹이사슬의 최고 위에 있잖아.”

앗,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나콘다도 호랑이도 사람이 있으면 도망가. 사람이 제일 무섭거든. 아마 네가 그때 본 호랑이는 새끼 호랑이였을 거야. 다 큰 호랑이였으면 겁 없이 차 다니는 곳으로 나오지 않지. 아나콘다도 결국 오늘 사람들에 의해 죽었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동물을 해치지 않는다면 그 동물들도 사람을 해치지 않아. 사람을 먹는 동물은 없어. 사람이 동물을 죽이는 거지”


맞는 말이었다.

여기서는 새들이 참 사람 가까이까지 날아든다. 손 뻗으면 닿을만한 곳까지 가서 사진을 찍어도 가만히 있는다. 가끔 사람 손에 내려앉기도 한다. 내가 아주 가까이에서 찍은 새 사진을 보여주자 친구가 “거기 새들은 참 사람 무서운 줄 모르네..”라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사람이 그들을 해치지 않으니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나무늘보도 정말 말 그대로 느긋하게 나무 위에 누워 있고, 덩치가 큰 개미핥기가 사람들 사이로 걸어와 공원의 개미를 먹어도 아무도 놀라거나 그들을 놀라게 하지 않는다.


작년에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탈출한 퓨마를 사살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동물원에서 태어나 평생을 우리에서 살다가 처음 우리 밖을 나가는 날 퓨마는 죽었다고 했다.

심지어 퓨마는 동물원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발견되었을 때에는 어느 구석에 누워있었지만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사살했다고 들었다.

그날 하루 종일 내 머릿속엔 “El león no come al hombre.(사자*는 사람을 먹지 않는다)”라는 말이 맴돌았다.  

*아마존에서 퓨마를 사자라고 부른다.


아마존 주민의 팔에 내려앉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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