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도난 사건
아주 작은 컴퓨터를 도난당하다
해외에서 아무 물이나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특히나 덥고 습한 데다 위생상태도 좋지 않은 아마존에선 판매하는 생수나 끓인 물만 마셔야 한다고 이곳에 오기 전부터 몇 번씩 주의를 들었다.
하지만 이곳에 온 첫 주, 첫 장애인 가정 방문, 장애아동 어머니께서 여기까지 찾아와 주셔서 고맙다며 주시는 물 한잔을 뿌리치기는 어려웠다. 그 물이 마당가에 있는 양동이에서 그냥 떠서 주시는 물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난 눈을 질끈 감고 한 모금 마셨다.
그날 밤, 자려고 누웠는데 한기가 들었다. 이렇게 더운 곳에서 왜 으슬으슬 추운 것 같지 하며 체온을 쟀더니 38도,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집 떠나와서 그런가, 서럽네 하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깼는데 아무래도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아 다시 체온을 쟀더니 39.5도.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새벽 1시, 어떻게 해야 할까? 걸어서 20분쯤 거리에 병원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택시가 없는 이 동네에서 이 시간에 어떻게 병원에 가야 할까? 직장동료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이 시간에 전화를 받기는 할까? 열이 난다가 스페인어로 뭐지? 내가 아프다는 것을 전할 수는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다가 다시 체온을 재보니 40도.
이러다 갑자기 이 먼 타지에서 아무도 모르게 혼자 죽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병원까지 가는 길은 아니까 걸어서라도 병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걷는데 하늘이 뱅글뱅글 돌았다. 그때 오토바이 한 대가 나를 보고 섰다.
“무슨 일이야?”
“나는 40이야. 병원”
‘내가 지금 열이 40도야. 병원에 가야 해.’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 정도가 전부였다. 그리고는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 앞에 섰던 오토바이의 주인은 교대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간호사였다고 한다. 동네에 처음으로 아시아인이 왔다고는 들었지만 한 번도 본 적은 없었는데 한밤중에 혼자 외국인이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 것을 보곤 술을 많이 마셨나 걱정이 되어 말을 걸었는데 눈이 반쯤 풀려 40이라고 말하는 순간 간호사의 직감으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고 한다. 나를 오토바이에 태웠더니 몸을 가누지 못해 오토바이 앞에 앉히고 내 뒤에서 나를 안고 겨우 오토바이를 몰아 병원에 데려다주었다고 하는데 난 기억이 없다.
내 병명은 세균성 이질, 침대에 적혀있는 단어를 스마트폰 사전에 찾아보고 나서야 난 내 병명을 알았다. 아마존에 온 뒤 계속 설사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 설사가 이렇게까지 열이 나는 큰 병인가 싶어 의사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영어를 할 수 있는 의사가 아무도 없었다. 계속 사전 어플을 켜놓고 의사와 대화를 이어가며 내가 무슨 병에 걸렸나, 열이 왜 이렇게 나냐 이야기했지만 의사들은 내 말보다는 처음 보는 스마트폰에 더 관심을 가졌다. 인터넷이 안 되니 이곳에선 별 쓸모도 없는 스마트폰인데 말이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 토하고 설사하고, 15분에 한 번씩은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기 시작했다. 물 한 모금을 마셔도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서 위로 아래로 모든 것을 쏟아냈다. 그렇게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다가 어느 순간 보니 침대 머리맡에 두었던 스마트폰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엔 침대 밑에 떨어졌거니 했는데 침대 밑을 봐도, 이불을 다 들춰보아도 없다.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아니 도둑맞았다. 화장실을 간 사이 누군가 들어와 내 스마트폰을 가지고 간 것이다. 인터넷이 안 되니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했던 핸드폰이었지만 그 스마트폰에는 내가 이곳에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필수조건인 사전 어플이 들어 있다. 지금껏 이곳에서 찍었던 사진들과 적어두었던 메모들도 있고 한국에서 가져온 E-book들도 있다. 한국의 연락처도 모두 들어있다. 인터넷이 안 되니 쓸모없다 생각했는데, 스마트폰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 가장 문제는 이런 필수품인 스마트폰을 이곳에선 다시 구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몹시 당황한 나는 간호사를 호출해서 스마트폰을 도난 맞았음을 손짓 발짓으로 설명을 했다. 간호사가 놀라서 나가더니 잠시 후에 병실로 병원장과 의사 간호사 십 수 명이 들어왔다. 6인실 병실이었지만 병원의 배려로 처음부터 난 혼자 병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내 침대뿐 아니라 다른 침대 시트를 모두 들춰보고 침대 밑을 확인하고 서랍장들을 모두 열어보았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누가 훔쳐간 것이라고!”
난 쓸 데 없는 일을 하는 의사와 간호사에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 말을 스페인어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말할 힘도 없었다. 분주한 그들을 보며 난 또 까무룩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니 이번에는 제복을 입은 경찰관 십여 명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이 중에 가장 높은 사람인 듯한 사람이 내게 무엇인가를 물어보았지만, 알아듣지 못했다. 경찰들은 아까 간호사와 의사들이 뒤졌던 곳을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핸드폰 하나 때문에 경찰들 십여 명이 와서 이렇게 뒤지고 있는 것이 말도 안 된다 생각이 들었고, 이런다고 잃어버린 핸드폰을 무슨 수로 찾나 싶었다.
목이 너무 말랐다. 탁자 위 컵을 들어 입에 가져가기만 했는데 물을 마시기도 전에 그대로 화장실로 뛰어가는 데까지 이르자 난 스스로 미쳐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핸드폰을 찾는 것은 그만두고 제대로 치료나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나가 달라는 말을 힘겹게 뱉었지만 내 작은 목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했다. 난 또 그들을 보며 잠이 들었다.
이번에는 누가 내 손을 만지는 느낌에 눈을 떴다. 어느 할머니가 침대 옆에 앉아 내 손을 잡고 울고 계셨다. 소스라치게 놀라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누구세요?”
할머니가 뭐라고 말을 했지만, 스페인어를 할 수 없는 난 ‘간호사’,‘딸’이란 몇몇 단어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뭐라는 거지, 내가 딸 같다는 것인가, 왜 우시는 거지? 어디서 내 병이 몹시 중하다 들으셔서 날 걱정해주시는 건가? 내가 죽을병에 걸렸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난 무서워졌다. 내 호출에 들어온 간호사가 할머니를 자리에서 일으켰지만 할머니는 내 손을 쉬이 놓으려 하지 않았다.
간호사가 할머니를 억지로 모시고 나간 후 난 아픈 것과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의 서러움이 몰려와 눈물이 났다. 이 상황을 이해하기도 힘들었고 내가 지금 뭐하겠다고 이렇게 멀리 와서 이러고 있는지 화도 났다. 무섭다가 서럽다가 화가 났다가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나에게 몰아쳤다.
마침, 의사가 회진을 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의사와 스페인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냥 내 말만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영어로 말하다가 그마저도 포기하고 한국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의료진은 환자에게 제대로 환자의 상황을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지 않냐, 병원에서 물건을 도난당했는데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 모르는 사람이 병실에 들어와서 내 앞에서 울고 있는데 이 상황을 설명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의사는 당연히 나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의사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단지 그냥 소리치고 싶었고, 화를 내고 싶었다.
의사는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다. 화가 분노로 바뀌고, 그 분노를 참지 못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하는 거친 나의 말을 끝까지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리곤 나의 말이 끝나자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딱 한마디의 스페인어를 하였다.
“괜찮다”
그가 하려는 말은 무엇이었을까? 나의 상태가 괜찮다, 걱정 말라는 뜻이었을까? 내가 이렇게 화를 내도 괜찮다, 이해가 된다는 말이었을까? 혹은 미래형 동사를 알아듣지 못하는 나에게 괜찮아질 것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중요한 것은 놀랍게도 그 말을 들은 내가 괜찮아졌다는 것이다. 나에게 몰아치던 부정적인 감정의 파도가 정말로 괜찮아, 잔잔해졌다. 그렇게 잔잔히 다시 나는 잠에 들었다.
다시 잠이 깨었을 땐 밤이었다. 구토와 설사는 여전했지만, 종일 39도 언저리에서 떨어지지 않던 열이 37.5도로 떨어져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젊은 여성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열은 좀 떨어졌다고 들었는데 좀 어때요?”
영어였다. 이 마을에 온 후 들은 첫 영어였다.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단어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였다.
본인은 브라질에서 온 의사이며, 이 도시에서 영어를 할 수 있는 단 두 명의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 옆 병원에서 일하고 있으며 내 주치의가 스페인어를 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와 달라고 부탁했지만, 본인의 진료가 많아 이제야 왔다며 미안하다고 전했다. 내 의사는 저녁에 수술이 있어 함께 오지 못했으며 나에게 설명해줄 것을 모두 이야기해줬고 본인이 영어를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 했다는 말도 했다.
그녀는 내 상태를 설명해 주었다, 내 병은 이 곳에서 흔한 병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만 볼 병은 아니다. 열이 높아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저녁부터 열은 떨어져 의료진들이 한시름 놓았다는 말도 전해 주었다. 구토와 설사도 2~3일 내에는 좋아질 것이고, 오늘 밤 더 이상 열이 오르지 않으면 내일 정도에 퇴원해도 괜찮다. 그러나 혼자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집에 간호해줄 사람이 없으면 하루정도 더 병원에 있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제가 미쳐가는 것 같아요. 물을 마시지 않고 입에 가져다 대기만 해도 화장실로 뛰어가요.”
원래 뇌라는 것이 먹는다, 마신다라는 것을 인식하면 장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 그러니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해주며 정말로 오늘 밤 푹 자고 나면 내일부턴 좋아질 것이라고 위로해주었다. 그러며 스마트폰을 잃어버리게 된 것에 대해서 병원에서도 굉장히 미안해하고 있고 그 일로 병원도 발칵 뒤집혀서 오전에 날 담당했던 간호사도 지금 경찰서에 연행해 가 조사받는 중이라고 했다.
“간호사를 연행해갔다고요?”
맙소사, 낮에 내 손을 잡고 울었던 할머니는 간호사의 어머니셨다. 본인의 딸이 유치장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를 찾아와 우리 아이 잘못이 아니다라며 잘 말해달라며 우셨던 거라는 걸 듣고 하늘이 까마득해졌다.
당연히 간호사 잘못이 아니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하긴 생각해보니 이 곳, 인구조사하는 날 집 밖에 나온 모든 사람들을 연행해가는, 아직은 공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해도 뭐라고 말하기 힘든 나라였다.
밤새 더 이상 열이 오르지 않았고, 구토와 설사도 많이 좋아져 나는 다음날 퇴원했고, 퇴원하자마자 경찰서로 가서 간호사 석방을 강력히 요구했다. 간호사는 그날 유치장을 나왔지만, 그게 나의 요구 때문인지, 혐의 없음이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간호사와 그녀의 어머니에게 사과하고 싶었지만,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
그러고 일주일쯤 뒤 핸드폰은 나에게 돌아왔다. 핸드폰을 가져갔던 도둑은 그것을 아주 작은 컴퓨터라고 알고 있었고, 벨이 울리자 신기해 전화를 받는 바람에 잡혔다고 한다. 이 죄로 그는 무려 8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나에게 돌아온 핸드폰은 그 후로도 3년간 나와 함께 하였다. 사건 이후 2년여 정도 지나자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프로모션도 많이 해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외국인이라 프로모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던 나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 중 가장 후진 기종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한국에 오자마자 새 핸드폰을 구입했다. 마을을 발칵 뒤집었던 그때의 핸드폰을 버리진 않았어서 어디 서랍 안에 있을 것은 같은데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의사가 내게 말했던 "괜찮다"라는 말은 내 마음 서랍에 잘 간직해두었다. 가끔 나에게 부정적 감정이 몰아칠 때 그 말을 꺼내어 본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그 날 의사가 처방했던 그 감정의 약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에게 몹시 잘 드는 명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