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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러기 May 23. 2021

양치질 교육


‘이거다, 이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어.’
‘아니야. 이게 없으면 선글라스를 어디다 집어넣냐 말이야.’
선글라스 케이스를 집어 들었다 내려놓았다를 반복했다.

치아모형을 구하러 온 동네를 돌아다녔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동네의 유일한 치과병원에 찾아가 치아 모형 사진을 보여주며 이걸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지만 고개를 저으셨다. 오히려 의사 선생님께서는 혹시 구하게 되면 본인도 좀 빌려달라고 하셨다.
 
아마존 부족 사람들을 대상으로 양치질 교육을 하기로 했다. 점차 부족 사람들이 도시로 나오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잦아지는데, 기본적인 위생이 지켜지지 않아 도시 사람들이 부족 사람들을 꺼리고 있었다. 또 도시를 접하며 아이들이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하면서 치아 건강도 예전보다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아마존 부족들에게 양치질 교육이 꼭 필요했다.

한국의 사회복지사는 양치교육을 직접 하지 않는다, 물론 위생교육도 크게 보면 사회복지사의 수많은 역할 중 하나이기는 하겠지만, 한국 사회복지현장에서 양치질 교육을 해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부끄럽게도 나도 양치질을 올바르게 하지 않아서 실제로 교육할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가득했다.

인터넷에서 양치질 교육법을 찾아보니 치아모형 없이 교육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구할 수 없으면 직접 만들기라도 해야겠다.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 선글라스 케이스가 보였다. 열고 닫히는 모양이 입의 모양과 닮았다.

한참을 고민했다. 선글라스는 해가 강한 곳으로 온다고 큰돈을 주고 구입한,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명품이었다. 하지만 선글라스가 명품인 거지 케이스가 명품인 건 아니니까, 눈을 질끈 감았다. 케이스 안팎을 빨갛게 칠하고 여닫는 부분에 하얀 종이를 붙이고 치아 모양을 그려놓았다. 어렸을 적 엄마가 미술학원에 보내줄 때 열심히 다녔어야 했다. 치아모형보다는 심해에 있는 괴상한 모양의 조개처럼 보였지만 나에겐 최선이었다.

치아모형을 만드는 것은 교육 대본을 만드는 것에 비하면, 오히려 쉬웠다. 나는 인터넷에서 올바른 칫솔질에 대해 검색했다. ‘윗니는 칫솔모를 위에서 아래로 회전하듯이 돌려 한 부위당 10번씩 쓸어내려’와 같은 문장을 먼저 스페인어로 번역했다. 나의 스페인어 실력은 몹시 부족하기 때문에 내가 번역한 스페인어를 구글 번역에서 영어로 다시 번역해 제대로 바꾼 것인지 확인했다. 잘못된 번역이면 다시 바꾸거나, 아니면 한국어를 다시 영어로 번역한 후 다시 구글 번역을 통해 스페인어로 번역했다. 이 과정을 여러 번 걸쳐 스페인어로 제대로 바꾼 후 그다음에는 아마존 부족어로 바꾼다. 아마존 부족어는 번역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으니, 스페인어와 아마존 부족어가 모두 가능한 사람을 찾아서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그리고 번역된 아마존 부족어를 대본을 안 보고도 말할 수 있게 그대로 통째로 외웠다.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해서 50명쯤 모였다. 외워 온 아마존 부족어로 인사를 하자, 사람들이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만들어 온 치아 모형을 보여주자 다들 웃음이 빵 터졌다. 분위기가 좋았다. 치아모형에 양치질하는 시범을 보이며 대본대로 교육을 하기 시작했다. 내 어눌한 부족어가 신기하고 웃기는지 사람들이 꺄르륵 웃는다. 밝은 분위기에 오랫동안 준비했던 나의 노력이 모두 보상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양치질 교육 후 사람들에게 치약과 칫솔을 나눠주고 나를 따라 하라고 하고 실제로 양치질을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도 따라 하지 않는다. 양치질을 직접 해보라고 말하는데 모두들 가만히 있다. 좀 전까지 좋았던 분위기가 싸해졌다. 나는 칫솔을 입에 물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하고 있었다. 등 뒤로 땀이 흐른다. 그때 아마존 부족 학교로 파견된 현지인 선생님이 내 앞에 섰다.

“세뇨리따, 교육 정말 잘했는데 제가 조금만 덧붙여도 될까요?”

내가 제발 그래 달라는 표정으로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이건 칫솔이고, 이건 치약이라고 해요. 자, 칫솔을 이렇게 두고 여기에다 치약을 이만큼 짜요. 칫솔을 입에 넣어도 아프지 않아요. 치약은 먹는 게 아니고 뱉어내야 해요.”

선생님이 천천히 칫솔에 치약을 짜는 시범부터 보였다. 사람들이 치약을 짜자 냄새를 맡아보게 하였다. 칫솔을 살짝 입에 물게 하곤 잠시 기다려 치약의 맛에 적응하게 하였다. 칫솔모를 이에 올려놓게 하고 조금씩 문질러보게 하였다. 윗니는 칫솔모를 위에서 아래로 회전하듯이 돌려 한 부위당 10번씩 쓸어내리게 하는 식의 정확한 양치법은, 양치질을 처음 해 보는 아마존 부족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용기 내어 다시 앞에 섰다. 나는 입을 크게 벌려 이를 보이며 칫솔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로 입안을 헹구고 ‘퉤’하고 뱉어내고 사람들을 따라 하게 했다. 사람들은 처음처럼 웃으며 나를 따라 했다.

며칠간 열심히 준비했던 나의 양치질 교육은 처참히 실패했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또 많이 배웠다. 나는 그 뒤로 프로그램을 계획할 때 칫솔을 입에 물고 등 뒤에 땀이 주르륵 흘렀던 경험을 떠올리며 프로그램의 대상자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대상자를 먼저 생각하라는 것은 사회복지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에 하나이면서도 나는 종종 잊어버리곤 했다. 처참히 망했던 그 날, 난 또 그만큼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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