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러기 May 01. 2021

그날의 소녀

도대체 왜, 아마존까지 가서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고 왔냐고  묻는다.

보통 그 이유는 너무 많아 하나만을 말하기는 어렵다 대답하지만,

그래도 왜냐고 다시 내게 묻는다면

난 인도에서 만난 한 소녀 이야기를 한다.


전광판에는 현재 온도가 42도라고 쓰여 있었다.

'아니 왜 계속 42도야? 분명 그제보다 어제가 더 덥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더운데..'

정말 너무 더워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아니 숨도 쉬기 어려웠다. 더위도 문제지만 길거리 쓰레기와 노상방뇨한 소변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죽을 것만 같았다.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택시를 잡았다. 여기선 택시비 흥정이 너무나 짜증나는 일이라 웬만해서는 택시를 타려고 하지 않았으나 이대로 걷다가는 내가 길에서 타서 없어질 것만 같았다.

목적지를 이야기하고, 기사가 말하는 금액이 터무니 없는 가격임을 알고 있었지만 , 이 날씨에 괜히 흥정하다가는 싸움만 날 것 같아서 그냥 알았다고 말했다.


“아저씨 에어컨 좀 세게 틀어 주세요.”

라고 말씀드리고 차 앞을 쳐다보니 맙소사, 에어컨이 있어야 할 자리가 뻥 뚫려 있었다. 분명 차를 탈 때는 시원한 것 같았는데, 너무 뜨거운 곳에 있다가 그늘로 들어와서 느끼는 한시적인 시원함이었나 보다.

그래도 차가 좀 달릴 때는 바람이 불어 좀 나았는데, 센트로로 돌아오자 차가 너무 막힌다. 한낮 에어컨 없이 정차되어 있는 차 안에 있으니 오히려 밖에서 걷는 게 나았을 것 같다.


“아저씨, 오늘 진짜 덥네요. 원래 인도가 이렇게 더워요?”

“지금이 제일 더울 때요. 오늘 46도라던가? 오늘이 올해 들어 제일 덥다던데”

“어, 그러면 아까 본 전광판이 고장났나 봐요. 며칠째 계속 42도던데.”

“아, 그게 일부러 42도까지만 표시되는 거래요. 사람들이 42도 넘은 거 알면 더 힘들어한다고...”

“하하하. 그러게요. 저도 오늘 46도라고 이야기 듣자마자 더 어지러운 것 같아요,”


무뚝뚝한 택시 기사 아저씨도 계속되는 차막힘에 심심하셨는지,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가셨다. 처음엔 날씨 이야기부터, 인도에는 왜 왔냐? 어디가 좋더냐? 등등 이야기를 이어 나갔지만 너무 덥다 보니 기사 아저씨도 나도 말할 기운도 없어졌다.

정차된 차 사이로 사람들이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정말 더워 100원짜리 색소 설탕물 아이스바를 사서 먹고 싶기도 했지만 인도 길거리 음식의 위생 상태를 생각하니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혹시 병 생수를 파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아기를 작은 담요에 싸서 안고 구걸하며 오는 어느 젊은 소녀를 보았다. 기껏해야 열다섯밖에 안되어 보이는데, 저 아기는 동생일까, 자녀일까, 날이 이렇게 더운데 아기가 괜찮을까, 이 더위에 이렇게 매연 가득한 거리에서 아기를 데리고 구걸하고 있다니, 절로 마음이 짠해져 뒤적뒤적 가방을 뒤져 돈을 찾고 있는데, 운전석 창문으로 젊은 여자가 아기 보자기를 들이밀었다.

뭐지? 난 조수석 뒤편에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보자기엔 아기가 아니라 검은 인형이 있었다.


'미친 여자인가, 인형을 아기라고 생각하나 보다.'

정말 아기처럼 인형을 안고 있는 여자에게 측은한 맘이 들었다. 돈을 건네려고 하는데 기사 아저씨가 아기 인형을 창 밖으로 밀어내며 인도말로 욕을 했다. 난 인도말인 힌디어를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지만, 아 정말 저 기사 아저씨가 심한 욕을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아저씨의 표정과 목소리의 높낮이로 알 수 있었다.   

 

여자가 멀어지고, 아저씨의 욕이 끝나자 나는 “ 에고, 안 되었네요. 미친 여자인가 봐요. 인형을 아기라고 생각하는... ”라고 이야기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욕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소심한 핀잔이었다.

그러자 아저씨가 나를 뒤돌아보며 무슨 이야기를 하냐는 식으로 “도대체 뭐가 인형이란 말이오. 저거 제대로 안 봤오? 시체잖아요. 아 재수없게스리..” 라며 다시 알아들을 수 없는 힌디어로 욕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여자가 들고 있던 보자기에 있던 것은 까맣게 마른 아기 미라였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죽은 아이를 들고 다니는 거지, 아이가 죽은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건가.


한참을 욕하던 아저씨가 설명을 시작했다.

"다음에 저런 사람 만나면 돈 주면 안 되오. 외국인 대상으로 하는 조직적인 앵벌이예요. 돈 줘봤자, 저 소녀가 가지는 것도 아니구..."

"그럼 저 아기 시체는 누구...?"

"글쎄, 어디서 죽은 아이를 얻어왔거나 했겠죠."

"그러면, 저 소녀는 어떻게 왜 저기서.....?"

"글쎄, 저 아이 부모님이 없거나, 부모님이 저 조직에 팔았거나, 하여튼 신경 쓰지 마요. 그냥 오늘 재수 없었다 생각하시오."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나는 목적지에 내려 한참을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었다.

택시기사는 신경 쓰지 말고 잊어버리라고 했지만, 난 그럴 수가 없었다.


내 인생에서 그 날 인도 여름 날씨 같은 날에,

사회복지사라는 나의 직업이 그 날의 날씨처럼 너무 덥고 습해서 단 한 발자국도 더 걸어갈 수 없겠다 생각되는 날에,

내가 하는 일이 도대체 어느 길을 가고 있는지, 너무 지쳐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는 날에도,

아기 보자기를 들고 있는 소녀가 내 앞에 선다.

내가 세상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그 소녀 한 명쯤은 다른 인생을 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