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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러기 Mar 30. 2021

팽팽한 절박함

이 글은 이주민센터에서 상담가로 활동했을 때의 경험을 적은 글입니다.

어느 한쪽도 물러날 수 없는 팽팽함이 느껴집니다. 두 사람의 절박함이 그러합니다.

   

디나(가명)씨는 8개월 전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에 있던 8개월동안 절반인 4달은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취업비자도 없고 한국어도 전혀 하지 못하는 그녀가 일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4달 후 일을 구한 곳은 불량식품을 만드는 한 작은 공장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공장도 자신처럼 불법이라 자신을 고용했다고 합니다. 작고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사업체이지만, 그녀는 일을 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사장님은 그녀에게 회사에 일이 없어 일주일간 쉬어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찾아간 공장은 굳게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주위에 물어보니 간판도 없는 작은 회사의 사장님은 그녀에게 일주일만 쉬라고 말했던 그날밤 빚쟁이에 쫓겨 몇 개 안되는 기계들을 챙겨 몰래 도망갔다고 합니다. 한국어가 서툰 그녀는 사장님의 성함이 Mr. Lee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2달동안 일을 했지만 한 푼의 급여도 받지 못한 그녀가 센터에 찾아와 도움을 청했지만, 사장님의 행방도, 이름도 모르는 그녀를 도와줄 방법이 없었습니다. 다만 다음번에 일을 찾을 때는 여러사람이 일하는 좀 더 큰, 합법적인 회사를 찾으라고 충고해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디나씨는 얼마 후 다시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여전히 작은 가구공장이었습니다. 여전히 그녀는 비자도 없고 한국어도 서툴기 때문입니다. 한 달이 지났는데 사장님이 월급을 주지 않습니다. 월급을 달라고 매일 사장님께 말하였지만, 사장님은 계속 내일, 내일 이라고만 하십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미루는 사장님을 믿으며 디나씨는 두 달동안 일을 하였고 또 두달치의 월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돈 많이 벌어오겠다며 가족들을 두고 고향을 떠나왔는데, 그녀는 한번도 고향에 돈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사실, 당장 내일 끼니를 때울 돈도 그녀에게는 없습니다.    


승혜(가명)씨는 가구공장 사장입니다. 아니, 사장이었습니다. 지금 그녀의 공장에는 아무도 일하지 않습니다. 엔틱가구가 유행이라고 해서, 그녀는 비싼 목재를 사서 고급스러운 가구를 만들었지만, 그녀의 가구들은 잘 팔리지 않습니다. 그녀의 작은 공장은 반품되어 온 가구들로 가득한, 사람 하나 서 있기 힘든 창고로 변해 버렸습니다. 지난 여름 긴 장마로 공장에 쌓여있던 가구들은 곰팡이가 슬고 뒤틀려져서 이제는 어느 것 하나 팔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싼 가구들은 조금 흠이 있어도 사람들이 싼 가격에 사간다고 하는데 비싼 엔틱가구는 조금의 흠만 있어도 사람들이 사 가지 않습니다.    


모두가 들떠 있는 지난 추석, 그녀의 지갑엔 3000원 밖에 없었습니다. 차비가 없어 그녀는 추석에 고향집에 갈 수 없었습니다. 전화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공장 전화와 집 전화는 이미 지난달에 끊겼고, 얼마 전 그녀의 핸드폰도 요금을 내지 않아 정지되었기 때문입니다. 전화가 끊긴 건 어쩌면 잘 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빚쟁이들의 전화를 받을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다들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녀는 혼자만 늘 뒤처지고 넘어지는 것 같아 스스로가 한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삶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녀를 믿고 일해준 디나씨의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도 진짜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회사전화도 핸드폰도 모두 끊겨 사장님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직접 공장에 찾아가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곰팡이 냄새로 가득한 공장에서 수척한 모습의 사업주와 노동자가 서로 마주 보고 섰습니다. 두 여성의 팽팽한 절박함 사이에서 저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누구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차라리 외국인 노동자라라고 무시하는 악덕 사업주라면 핏대 높이며 밀린 월급 주라고 싸울 수 있을 테고, 아니면,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노동자라면 기약 없는 기다림을 좀 해보자고 설득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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