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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러기 Mar 22. 2021

사소한 일

문화적응 스트레스

얼마 전 베트남에 다녀왔다.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지 않았던 베트남에서 난 베트남 오토바이택시인 쎄움을 타야 할 일이 있었다.


쎄움은 타기 전에 미리 요금을 흥정해야 했는데 목적지까지 가는 요금이 실제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내가 외국인이라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 아닌지 괜히 의심이 되었다. 어떻게 계산한 가격인지 묻고 싶었지만 베트남어를 할 줄 몰라 시원스레 물어보지 못하니 운전기사가 나를 속이는 것만 같았다.  


원래 자전거도 탈 줄 모르는 나는 2개의 바퀴로 중심을 잡고 가는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영 불안했다. 더구나 출발하자마자 나를 태운 쎄움은 달리고 있는 차 사이로 막 끼어들며 신호도 지키지 않았다. 나는 그다지 바쁠 것이 없으니 좀 천천히 가자고 운전기사에게 말을 해도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인지 아님 문제없다는 뜻인지 “yes, yes"라고만 하며 곡예운전을 멈추지 않았다. 여행책자에서 교통법규를 무시하는 것 같으면서도 베트남 스타일의 또 다른 운전법이 있으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났지만 난 혹시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시원한 바람에도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다 내가 탄 쎄움이 나의 일행이 탄 다른 쎄움들이 가는 길과 다른, 어느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 버렸다. 이 길이 지름길인가 싶으면서도 자칫 이러다 일행을 잃어버리는 건 아닌가, 또는 운전기사가 으쓱한 골목에서 갑자기 강도로 돌변하는 건 아닌가 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한국에서라면 이럴 때 핸드폰으로 일행에게 전화를 걸면 될 일이지만 24시간 손에 들고 다니던 핸드폰이 내 손에 없으니 막막할 따름이었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릴 때쯤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도 보였다. 안도하며 쎄움을 빠르게 내리려다 나는 오토바이 연통에 종아리를 데었다. 처음엔 놀라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해서 가만히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종이컵 바닥 크기 정도의 피부가 너덜거렸고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프기 시작했다.


40도를 넘나드는 더위 속에, 아직 여행 일정도 절반 이상 남았는데 이렇게 다치다니... 시간이 좀 지나자 화상을 입은 너덜거리는 피부 아래에서 진물과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지도를 펴고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병원이 눈에 띄지 않았다. 글자를 읽을 줄 모르니 지도에 표시된 병원 주위를 돌아다녀도 어떤 것이 병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내 어색한 베트남 발음을 알아듣지 못해 물어볼 수 없었다.


결국 병원을 찾지 못하고 호텔에 돌아와서 내 상처를 보여주며 병원에 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자 호텔 직원은 “no problem!"이라고 하며 병원에 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오늘 밤 푹 자고 나면 아픈 게 나아질 것이라고, 베트남에서는 오토바이에 데이는 일은 흔한 일이라고 했다. 아픈 것은 좀 나아질 지라도 그냥 둬도 예쁘지 않을 내 종아리에 커다란 흉터가 남게 생겼는데 “no problem!"이라니... 하지만 연신 “no problem!"이라며 웃으며 이야기하는 호텔 직원에게 더 이상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이상한 것 같아 난 결국 병원에 가지 못했다.    


얼마 전 베트남 국제결혼 가정 이주여성의 문화적응스트레스에 대한 연구로 논문을 썼다. 문화적응스트레스란 익숙하지 않은 새 환경에서 기존의 문화와의 차이로 인해 발생되는 스트레스이다. 1년 내내 책상에 앉아 문화적응스트레스를 연구했던 것보다 나는 베트남에서 쎄움을 탔던 경험으로 문화적응스트레스를 더 잘 알게 되었다.

낯선 오토바이를 타니 무서웠고, 익숙하던 핸드폰이 없으니 불안했다. 말을 못 알아들으니 이 나라 낯선 사람들이 갑자기 도둑으로 돌변할 것 같고 나를 속일 것만 같았다. 아프지만 병원에 가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도 없었다. 내게는, 적어도 한국의 20대 여성에게 화상 흉터는 큰 문제일 것 같은데 이 문화에서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사고는 나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속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나를 위해 지름길로 가주는 호의를 베푼 것이었고, 흉터는 남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상처는 아물었다. 그러나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은 이 사소한 일에서 나는 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했다.    


내가 이주민센터에서 만나고 있는 이주노동자분들은 이런 사소한 일들을 지금껏 몇 번이나 경험했을까?


                                                                                                    2005년 7월


*무려 16년 전에 쓴 글을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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