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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러기 Mar 26. 2021

내가 할 수 있는 4개의 언어

사실 그 어느 것도 잘하는 것이 없다.

첫 번째, 영어


중학교 1학년 때던가, 2학년 때던가, 영어 선생님이 나와 이름이 비슷해서 특별히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셨던 것이 오히려 나와 영어가 멀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심각하게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던 탓에 누군가에게 주목을 받는 것이 너무 싫었는데 수업시간마다 나를 지목하여 영어책을 읽게 하는 탓에 정말 영어시간은 나에게 고역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영어는 내가 가장 못 하는 과목이었고, 수능시험에서도 다른 전 과목 틀린 문제 개수보다 영어 한 과목에서 틀린 문제가 더 많았다.


처음으로 영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던 때는 내가 처음으로 외국인을 만나 이야기를 했을 때이다. 고등학교 때에도 학교에 잠깐 원어민 선생님이 계시긴 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한국어가 아주 능숙하셨다. 그래서 한국어를 잘하는 선생님과 내가 굳이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으로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외국인을 만나니 그전까지 “교과목”이라고만 생각했던 영어가 처음으로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영어가 언어이고, 내가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시험성적을 잘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안 이후부터는 영어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두 번째, 스페인어


3년간을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나라에 살았는데도 난 참 스페인어를 못한다.

코이카 볼리비아 신입단원 교육에 “스페인어를 못해도 괜찮다”라는 안내 꼭지에서 여전히 나를 예로 든다고 한다. 신입단원들이 초창기에 스페인어를 배우는 것에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니 그러지 말라고, 스페인어를 하지 못해 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좋은 예로 나를 뽑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결국은 3년간 살았어도 내가 스페인어를 잘할 수 없었다는 뜻이니 결코 좋은 예라고만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스페인어를 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참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기본적인 단어도 모를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비슷한 의미의 단어인데 “죽다”라는 단어는 알지만, “죽이다”라는 단어는 모른다. 3년간 살며 우리 마을에 사람이 죽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죽다”라는 단어는 알고 있지만, 그동안 한 번도 누군가를 죽인 범죄가 일어난 적은 없기 때문에 “죽이다”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


다 큰 어른은 공부하지 않으면 외국어가 늘기 어렵다. 그래서 나의 스페인어는 살아남기 위한, 굶어 죽지 않는 언어 수준 정도이다. 문법 같은 것도 하나도 맞지 않는데, 그래도 신기한 것은 정말 서바이벌 언어라 오히려 제대로 공부한 영어보다도 더 의사소통이 잘 될 때도 있다.




세 번째, 치만어


나에겐 자랑스럽게 “내가 이것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1등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대한민국 1등이다. 나는 대한민국 사람 중에서 가장 치만어를 잘한다.


치만어는 아마존 지역의 부족어 중 한 개이며. 현재 2,000명에서 3,000명 정도의 치만부족이 사용하고 있는 소수언어이다. 아마존에 국경을 긋고, 여기 사는 사람은 브라질 국민이다, 여기 사는 사람은 볼리비아 국민이다라고 나누는 것이 실제로 아마존 부족들에게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하지만, 대부분의 치만족은 볼리비아 국민이고, 치만어는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볼리비아의 36개 공용어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는 이 치만어를 한국 사람 중에 가장 잘한다.

한국인 중에 치만어를 가장 잘 한다고 하니 굉장히 유창하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나는 아주 간단한 회화와 기본 단어 몇 개를 아는 수준이다. 아니, 이었다. 지금은 그마저도 거의 잊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한민국에서 치만어를 가장 잘한다. 왜냐하면 나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치만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누가 나에게 치만어를 해보라고 하면 간단한 인사말 정도밖에 기억을 못 하는데, 가끔은 “이것을 반으로 쪼개고 짓이겨서 당신의 아이의 국에 넣어 먹이세요”라는 참도 어렵고 긴 말이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기생충약을 나눠주며 수백 번 반복했던 말과 함께, 그 때의 환경과, 그때의 사람들과, 그때의 분위기도 함께 스쳐간다.


치만어에는 “good-bye”라는 뜻의 작별인사가 없다. “See you again!”이라는 인사만이 있다. 떠돌아다니며 살며 자주 작별인사를 해야 하는 치만 사람들은 지금 헤어져도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믿고 있다.

그래서 나도 한국에 돌아올 때 치만 사람들에게 다시 보자고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먼 아마존 마을에 정말 다시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인사대로 See you again이 되길 믿고 싶다.



네 번째, 한국어


누가 “너는 어떤 언어를 할 줄 아니?”라고 내게 물으면 나는 자신 있게 “한국어!”라고 대답했는데, 요즘은 정말로 그렇게 자신 있게 대답해도 되는가 의문이 든다.

더군다나 이렇게 글을 쓰고 있자면, 내가 정말 한국어를 잘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나의 생각도 이렇게 제대로 글로 표현할 수가 없는데, 내가 한국어를 잘하는 게 정말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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