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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러기 Mar 12. 2021

오두막에서의 하룻밤 Ⅰ

아이티 여행 이야기

오두막에서의 하룻밤1

아이티 여행은 정말 단조로웠다.

아이티 지진 추모공원 안에서 기념관을 보고 나오니 동네 아이들이 추모공원의 큰 검은 대문 사이로 팔을 넣고 동전을 구걸하고 있었다. 이 공원에 들어오기 위해 아이티 정부에 적지 않은 금액의 기부금을 내고 들어왔는데 나의 기부금이 이 평화로운 기념관을 유지하는 데 사용이 되는 것인지, 아님 공원 밖에서 소리 지르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로 가족과 친구들을 잃은 아이티 현지인은 들어올 수 없는 추모공원이라니...

중남미에서 가장 먼저 독립한 아이티를 꼭 가보고 싶었지만, 한국인 여행객이 거의 가지 않는 나라라 여행정보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호텔 예약도 쉽지 않아 걱정하던 중 우연히 아이티에 계시는 한국인 선교사의 연락처를 받게 되었고 본인의 집에서 묵는 것을 허락해주셨다.

하지만 담장 높은 선교사 댁에서 묵으면서 가정부가 해주는 한식을 먹고, 한국 교회 예배에 참여하고 선교사의 운전기사가 데려다주는 ‘외국인’만 들어갈 수 있는 추모공원 같은 곳을 가고 있다 보니 내가 아이티에서의 한국인의 삶을 느끼러 이곳에 있는 것 같았다.
 
아이티에서 나는 진짜 아이티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안전하고 깨끗한 숙소를 제공해주시는 선교사에게는 정말 감사했지만, 이곳에 계속 머무르는 한, 난 아이티를 여행한 것이 아니었다. 현지인과 만나고 이야기하고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필요했다.

내겐 아이티에서의 하룻밤이 남았다. 에어비앤비 어플을 통해 현지인 집 숙박을 찾아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 숙박하고 싶어요. 방이 있나요?” 답이 없거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아이티 언어로 답변이 왔다.      

갑자기 확 겁이 났다. 아이티 여행 이틀째가 생각이 났다. 국립박물관을 관람하고 있었는데, 밖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나고 사람이 웅성거렸다. 큰 소리가 났던 곳을 쫓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멀리서 경비 아저씨가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아저씨가 뛰어오더니 날 뒤로 밀치고는 재빨리 창의 덧문을 내렸다. 다른 층에 있던 영어가이드가 와서는 밖에서 누가 사람들을 향해 총을 쐈다며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박물관의 모든 문을 잠글 것이고 안에 머무르라고 말해 주었다.

그날 기억이 나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 현지인 집에서 지내는 것이 무서워졌다. 인터넷이 느려 어플에 올라온 집의 지도나 사진들도 제대로 볼 수 없는데 말도 통하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어렵다 싶었다. 그때 영어로 메시지가 왔다.     

“안녕? 나는 아이티에 살고 있는 미국인이야. 우리 집에서 진짜 아이티를 느껴볼래?....”     

이 집이다 싶었다. 일단 말이 통하고 왠지 미국인이라고 하니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녀의 집은 “언덕에 위치한 파란 오두막”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인터넷이 느려 집 소개 사진은 외관 사진인 첫 장만 흐리게 보였지만 파란 작은 오두막은 로맨틱하게만 보였다. 아이티에서의 나의 마지막 밤을 보낼 완벽한 집이었다.     

바로 예약을 하고 주소를 받았다. 6일간 묵었던 한국인 선교사께 인사를 했더니 정말 괜찮겠느냐 물으셨다. “그럼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이래 봬도 5개월 차 중남미 여행 중인 베테랑입니다.” 계속 걱정의 눈빛을 거두지 않으시자 “묵는 곳이 미국인 집이에요.”라고 덧붙여 말씀드렸다. 그 말을 듣자 조금 안심하시는 듯했다.

오토바이 택시는 큰길에서 꺾어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길은 점점 좁아지는데 오히려 사람들은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오토바이가 자꾸 사람들에 막혀 서다 가다를 반복했다. 오토바이가 설 때마다 “여기?”냐고 물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우물가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물을 긷고 있었다. 와, 우물이 도시에도 있구나, 우물가 앞에 한참을 서 있다가 겨우 사람들을 헤치고 오토바이는 계속 올라갔다. 이제 사람 한 명 지나가기도 좁은 길, 오토바이는 힘에 부쳐 굉음을 내며 올라가다 한 집 앞에 멈췄다.     

언덕 위의 파란 오두막, 소개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산동네, 파란색으로 칠해진 판잣집. 사실 오두막의 뜻은 내가 상상했던 예쁘게 지어진 작은 별장 같은 것이 아니라 작고 초라한 집이라는 뜻이니.... 어찌나 오토바이가 큰 소리를 내고 올라왔는지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내가 어버버하고 있는 사이 택시기사는 이미 내 배낭을 땅에 내려놓고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다.     

파란 오두막에서 노란 금발머리의 젊은 여자가 반갑게 인사를 하며 나온다. 여자의 팔짱을 끼고 있는 남자친구의 표정도 참 좋다. 반가워, 밝은 환대에 조금 마음이 풀어져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좀 더 나을 거야. 쨍쨍했던 한낮의 밝음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집안이 너무 어둡다. 좀처럼 집 안의 사물들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침대 하나, 테이블 하나, 좁지만 하룻밤 지내기엔 뭐 나쁘지 않아. 위안을 해 본다. “집 한 번 둘러볼래?” 눈동자만 살짝 돌려도 다 볼 수 있는 방을 둘러볼 것이 뭐가 있나, 괜찮다며 의자에 앉았다.

여자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어느 바닷가로 휴가를 갔다가 휴양지에서 가이드를 하고 있던 이 멋진 아이티 남자를 만났다. 사랑 가득한 눈으로 말하는 두 젊은 남녀의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 휴가가 끝나고 여자는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서로를 잊을 수가 없었다. 아이티 남자가 미국으로 가려했지만 비자를 받을 수 없었고 그래서 미국 여자가 두 달 전 아이티로 왔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여자는 조잘조잘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하고 남자는 미소를 짓고 난 이 무모한 사랑에 절대 놀라지 않았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다. 이런 예쁜 사랑 이야기에 “그래서 여기서 넌 뭐 하려고 하니?” “부모님은 뭐라고 하셨니?” “에어비앤비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이런 세속적인 질문을 할 수 없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꽤 어둑해졌다.     

“조금 어두운데, 불은 어떻게 켜?”

“아참, 미안해, 오늘 여기 정전이야.”     

아, 앞이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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