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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나 Sep 11. 2023

첫 유산과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누가 보더라도 나는 아이를 잃은 사람이었다.



1년 정도 남편과 난임 센터를 다니며 임신 시도를 해온 상태였다. 지난 봄에 처음 인공수정을 시도해보았는데, 업무를 병행하기 어려울 정도의 호르몬 변화로 힘든 시기를 경험했다. 매일 열이 나고, 입맛은 사라지고, 오랜 시간 집중이 어려운 탓에 몫을 다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으로 심리적으로 타격이 컸던 것 같다. 아마 ADHD약을 먹지 못하는 것도 한 몫 했을 거고.


그래서 지난 6월부터 11주간의 CEO 조직 매니저먼트 코스를 앞두고선 우리 팀에게, 수강생 대표님들에게, 믿어준 러닝스푼즈팀 모두에게 너무 중요한 일이기에 시험관 시도를 중단하기로 마음 먹었었다. 처음이라 더욱 온전한 몸 상태를 가지고 제대로 해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으니. 그리고 그 결정 덕분에 정말 매주 신이 나는 성과들을 만들 수 있었다. 역시나 일하는 건 너무 재밌고, 다시는 그 과정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자식을 갖지 않는 삶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남편에게 '오빠 나 애기 대신 강아지 키워도 괜찮을 것 같애.'라며 어떤 종을 입양할지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그러다 8월 초, 생각치도 못한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꽤 오랫동안 자연임신이 되지 않던 상황이라 정말 기대가 0 이었는데, '포기하면 생긴다' 라고 말하는게 사실이구나 싶었다. 코스 종료까지는 딱 3주가 남았는데, 좀만 더 있다 오지... 라는 부모답지 않은 생각도 들고. 워낙 유산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해서, 자꾸만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우선은 경거망동하지 말자'가 첫 반응일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생명이 찾아온 순간, 제대로 기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제는 진짜 임신이었기에 호르몬 변화가 더 크게 몰아쳤다. 강의로 3시간은 넘게 서있어야 하는데 오래 서있기가 어렵고, 바늘로 꾹 찌르는 것 같은 복통도 자주 찾아와서 심하게 아프기도 했다. 하루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들어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이른 아침 6시쯤 일어나 4시간을 몰아쳐서 일하는 습관을 길러야 했다. 운동을 워낙 즐기던 사람이라 그 중에서도 많이 움직이지 못하는게 제일 괴로웠다. 집에만 있지 않으려 노력해봤지만 외부 미팅 1-2개만 있어도 그날 에너지는 모두 셧다운이 됐고, 아직 주변에 말할 시기도 아니니 양해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정말 크루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쩔 뻔 했나 싶다.


그런데 문제는 첫 임신이다보니 생각보다 기대했고, 생각보다 이 생명체에게 정을 줘버렸다는 거였다. 아무리 경거망동하지 말자고 해도 마음이 안됐던거지. 내가 여자구나! 하는 사실을 자주 인식하고 사는 편이 아닌데 이번에 확실히 느꼈다. 임신을 인식하는 그 순간부터 '엄마로서의 나' 의 가치관이 무럭무럭 자라는데, 가족관을 넘어 인생관 전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처음엔 '엄마'라는 단어도 입에 붙지 않을 정도로 어색했지만, 3주 무렵이 지나서부터는 누군가의 엄마가 되고, 우리 가족이 셋이 되는 그림을 조금씩 그려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임산부 특권 중 하나가 매일 남편과의 산책 시간이 생긴다는 건데, 신기했던 건 매일 일 얘기만 하는 대표 부부의 대화에서 '만약에 OO이가 태어나면~' 이라는 가정법이 가득찬 부모의 대화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초등학교 때 일기도 방학 때 몰아쓰던 내가 태교 일기를 손으로 쓰지 않나. 가족, 우리 크루들, 아주 친한 친구 몇명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내 세상은 조금씩, 모든게 달라지고 있었다


그러다 7주차가 되는 그 날, 초기 유산을 진단받았다. 모든 꿈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동안 성장이 느리다며 조심스런 결과를 계속 듣던 중이라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도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매일 밤 침대에 앉아 "OO아. 거기 있지? 어디 가면 안돼" 라고 말을 걸며 불안함을 달랠만큼, 제발 아니기를, 정말 잘못 본 것이길 간절히 바래왔었다. 원장님이 정말 따뜻하게 위로해주셨지만, 남편이 든든하게 옆을 지켰지만,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고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뱉어낼 수 밖에 없었다. 발자국같은 눈물을 남기는 탓에 지나가는 병원의 누가 보더라도 나는 아이를 잃은 사람이었다.


집에 돌아와 남편을 부둥켜 안고 정말 5살 아이처럼 소리내 울었다. 병원에서는 씩씩하게 잘 버티던 남편도 결혼하고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늘 무던한 남편이라 나도 놀랐다. 이유를 물어보니 이 모든 고통과 슬픔을 온몸으로 겪는 내가 안타까워 눈물이 났다고.


유산의 이유는 절대 엄마 탓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무엇이든 탓하고 싶은 맘에 울먹이며 남편에게 물었다. "오빠 내가 너무 일해서 그럴까? 강의한다고 너무 오래 서있었나? 오래 앉아서 일해서 그런가? 정말 내 잘못은 아닐까?"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었나보다. 내 몸에 살았던 생명이었기에 하늘의 뜻으로 돌리기 더 어려웠을 수도.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다음 날 일어났는데 왠지 슬픔에 계속 빠져있기는 싫었던 것 같다. 자연스레 캘린더를 보며 예정된 책임들이 떠올랐다. 모두가 이해할만한 이유긴 하지만 지나고 봤을 때 내 몫을 다 하지 않는다면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크루들과 떠나기로 한 고성 워크샵도 일정대로 진행하고, 결혼식도 참석하고, 예정된 강의도 감사히 진행했다. 대표님 다섯 분과 각자 격주로 진행하는 1:1 코칭도 마찬가지. 그리고 지난 주 수요일, 유산 수술까지 잘 마쳤다. 초기 유산이라 큰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후에도 평소 컨디션을 기준으로 일정을 그대로 진행했다.


하지만 한계였나보다. 이틀 내내 외부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쓰러질 것 같은 순간이 계속 찾아왔다. 그제야 '유산 후 휴식'을 검색해봤고 블로그를 보니 다들 일주일은 계속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만큼 쉬었다고 했다. 출산한 것만큼의 강도로 쉬어야한다는 말에 깜짝 놀라기도. 그러고보니 나는 유산 결과를 들은 날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제대로 쉰 적이 없었구나. 그때서야 알았다. 그래서 크루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틀동안 회복에만 집중하며 푹 쉬었다.


그러고보면 휴식이 정말 필요했던 것 같다. 임신 때부터 닌텐도 RPG 게임을 모두 독파하고, 밀려뒀던 애니와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즐겁긴 했지만 이상하게 죄책감이 올라왔었는데. 쉴만큼 쉬고나니 그 모든 시간이 필요했구나 느낀다. 이제서야 쌓아온 생각들을 무엇으로든 창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보면. 


이제 짜내도 나올만한 눈물도 없고 내 쓸모를 다하지 못한다는 조급함도 사라졌다. 돌아보니 충분한 애도의 시간도, 휴식도 필요했을텐데 왜 그렇게 나를 못 살게 굴었는지 모르겠다. 세상에 뭐라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이었는지 ㅎㅎ


그치만 이 소식을 전하면서도 가장 마음에 걸리는게 있다. 우리 같은 초기 유산은 아무것도 아닐만큼 5-6개월 차에 상상도 안되는 슬픔을 동반한 유산을, 한번도 아닌 여러 번 겪는 분들도 정말 많다. 심지어 우리를 위로해주신 지인분들 중에서도 계실 정도로. 하지만 다들 슬픔을 묻고 지나가시는 편이라, 나는 이 경험을 하기 전까지 가족을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 희생이 필요한지 잘 몰랐던 것 같다. 


특히 임신과 출산, 후에는 육아를 하게 될 기혼 여성임과 동시에 팀과 비즈니스를 책임지고 늘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대표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건 여간 챌린징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가정을 꾸리며 사업하시는 여성 대표님들 이제는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될만큼. 자연스레 창업 생태계에 여성 창업자의 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한 아젠다 중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또한 내가 누틸드에서 1호 임산부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대표가 뼈저리게 경험한 탓에 가족을 꾸리는 여자 직원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너무 잘 알게 됐으니까. 이 이슈는 정말 큰 질문으로 가져가며 나름의 답을 찾아가볼 예정이다.



그렇게 이제는 가벼워진 육체(?)와 건강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체력도 점점 되찾아 가는 중이고, 우선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시도하지 않을 계획이라 우선은 편하게 일할 계획이다.


나만 쉬었지 크루들은 정말 신기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기에 누틸드로는 곧바로 공유해야 할 서비스와 재밌는 소식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대표의 임신 크리에도 흔들리지 않고 각자 일을 잘 해내준 크루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울 뿐. 이번 경험으로 '내 뜻대로 안되는 것도 많다' 는 걸 제대로 느꼈는데 그 겸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만들어가보려고 한다.




며칠 전, 모든 과정을 아는 친한 친구가 메리골드라는 꽃을 선물하며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라는 꽃말을 알려줬다. 비슷한 과정을 겪는 분들이 있다면 메리골드의 꽃말을 떠올리며 나처럼 힘내셨으면.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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