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프랭클린의 문장이 깨닫게 해준 것
지금의 작은 안전을 위해서 자유를 포기하는 사람은 둘 다 가질 권리가 없고, 둘 다 잃게 될 것이다.Those who would give up essential liberty to purchase a little temporary safety deserve neither nor safety.
_벤자민 프랭클린
조승연 작가는 이 문장을 공유하며 '프리랜서인 내가 어떻게 하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해봤을 때 항상 안정성을 포기해야 하더라. 자유와 안전은 마치 Trade-off 같다'고 얘기했다.
정말 공감이 갔다. 평소 나는 컴포트 존이 만들어지려고 하면 황급히 더 큰 도전거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사실 당사자로서 이게 더 큰 도전인지도 인식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때문에 친구들에게 “참 힘들게 산다.”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굳이 힘들게 산다는 것에 동의한다. 굳이라는 단어에 들어간 의미도 안다. 안락하고 안전한 공간에 머무른다면 내가 보는 세상은 좁더라도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새로운 어려움을 극복하며 구축되는 나만의 단단한 논리와 확장된 인식, 그로 인한 자기확신을 얻기는 어렵다.
이게 뭐 그리 좋은거냐고 물을 수 있다. 당연히 이게 히어로의 절대반지처럼 모든 상황에 통하는 답이 된다는 건 아니고, ’내가 이것도 할 수 있네?‘ 같이 잘 모르는 어떤 상황에도 내가 통제하는 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즐거움, 성공 경험을 의미한다. 당연히 본질적인 자존감도 높아진다.
그리고 그것이 요즘 사람들이 원하는 자유, 즉 환경에 통제당하지 않는 나다움을 정의할 기회라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
레이 달리오는 <원칙>에서 자연은 발전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체계이며 인간은 자연 속 생물임으로 같은 원칙을 따라야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자신에게 딱 적당한 세상에 멈춘다는 건 자연 안에서 점점 더 병약한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다는 말과 같다.
때문에 자꾸만 도전을 한다. 현실을 도피하지 않고 늘 상처받는다. 성장통을 견뎌야 하는 근육은 아프지만 대신 생생히 현실을 들이킬 수 있다. 그래야 본질적인 자유에 더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자주하는 말 중에 ‘시장에 내보여야지만 성장한다’는 생각은 거기서부터 나왔다.
오늘 헤이즐이 내 생각이 났다며 공유해준 이 문장을 보고 더욱 확신했다. ‘지금의 작은 안전을 위해 살지 않는’ 이 삶의 원천은 자유라는 내 인생의 유일한 목적에 있다는 걸 말이다.
<데미안>의 주인공처럼 차가운 현실을 직면하며 깨우치는 고통을 참아내지 않는다면, 입으로만 외치는 자유는 웃음거리가 되고 아는 방법으로만 살며 교만해질테니까.
자유는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나를 던지는 성장으로 얻어지는 산물이라는 것. 30대에 얻은 소중한 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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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연 작가의 <인생을 바꾼 명언 Best 4>에서 얻은 영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