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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나 Mar 30. 2020

우리는 코끼리를 찾아야 한다;웨딩북 조직진단 회고 1편

변화와 혁신은 '코끼리 찾기'부터 시작된다.


검진은 액션을 낳는다


일 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한다. 대수롭지 않은 척하며 리포트를 읽어보면 생소한 단어와 함께 몸속에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았다는 것에 깜짝 놀란다.


변화는 그날부터다. 먹던 음식을 바꿔보기도 하고, 멀게만 느껴지던 집 앞 공원에서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처럼 명확한 문제 인식은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두루뭉술한 우려보다 어디가 어떻게 나쁜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검진 결과가 힘이 센 이유다.


엄마가 항상 의사보다 먼저 아는게 문제



회사도 마찬가지다. 개선의 액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확한 문제 인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개인의 건강과는 다르다. 조직문화는 같은 환경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여 이뤄짐으로 각자 문제를 다르게 인식하기 쉽다. 사람이 모일수록 문제의 원인은 더 모호하다.


하지만 우리는 무언가를 창조하고 개선하기 위해 일한다. 개선한다는 것은 무엇이 문제의 원인인지 정의하고 측정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작년보다 올해가 나았는지, 내가 느끼는 회의감과 의구심은 다른 이들은 느끼고 있지 않은지, 또한 해결의 단서를 알려면 지금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그래서 조직문화에도 측정 방법이 있다. 조직진단이라고 불리는 구성원 서베이며. 웨딩북은 작년 12월, 설립 이래 처음으로 조직문화 진단을 실행하게 된다.



즉, 모두 함께 회사에 숨어있는 코끼리를 찾기로 했다는 말이다.




웨딩북청담을 점거한 코끼리 (상상도)








코끼리가 거기서 왜 나와?


조직문화 진단을 한다고 해놓고선, 웬 코끼리?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케팅이나 브랜딩같은 분야만큼이나 언어가 사람의 인지와 행동을 생생하게 변화시키는 분야가 조직문화다. 그래서 서베이의 이름에 질문 제작, 리포트, 결과 공유 방식만큼이나 신경을 썼다.


5분 만에 끝내버리는 다른 만족도 조사처럼 느끼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2019 조직문화 서베이'는 아니었다. 우리도 하품이 나오는 이름인데 무엇을 더 바랄까.



몹시 지루


좀 더 친근하고 의미가 있는 이름이 없을까.


혜운 님의 제안에 당일 재택이었던 나는 집에 있던 조직문화 책들을 뒤져보았고 그 언젠가 우리 팀이 함께 읽었던 어댑티브 리더십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5권에 걸쳐 급속한 변화의 시대에 조직 리더가 지녀야 할 어댑티브(adaptive) 리더십을 설명하고, 실무적으로 알려주는 가이드북이다. 특히 2권은 조직적인 진단을 위한 방법론을 엮어냈다. <방 안의 코끼리>라는 재밌는 제목을 가지고 있었는데 서베이 타이틀로 딱이었다.



'방 안의 코끼리(An elephant in the room)'
아주 중요하지만 다들 말하기가 껄끄러워 그냥 넘어가는 문제를 가리킬 때 흔히 쓰이는 용어




이 개념을 제대로 이해해보려면 상상해봐야 한다. 만약 어느 날 회의실에 코끼리가 나타났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1단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놀라운 크기에 압도된다. 실로 충격적인 경험.

2단계: 처음에는 귀여워도, 회의실을 들어갈 때마다 육중한 몸체를 피해 비집고 들어가야 하고 문은 닫기 지도 않는다. 불편함에 짜증도 난다.
 

3단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회의실 밖으로 코끼리를 밀어보려 한다. 회사에 장정이 모두 모여 끌어봐도 움직이기는커녕 꼼짝도 하지 않는다. 불편함은 여전하다.


4단계: 어떻게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포기한다. 이제는 모르는 척하기에 이르렀다. 어떤 불편함이 있어도 누구도 코끼리 얘기는 하지 않는다.





이 4단계에서 알 수 있듯이 <방 안의 코끼리>라는 것은 모두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떤 이유에서건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 현상을 가리킨다. 문제가 코끼리처럼 너무 거대하고 무거워 그저 덮어두고 외면하거나, 해결하기 쉬운 다른 원인을 찾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원래는 시사용어로 태어났지만 조직 내 문제를 가리키기 너무나 적합했다. 유레카.


게다가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계획하는 송구영신 감성까지 건드리면 좀 더 우리의 의도를 잘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웨딩북의 조직문화 진단 프로젝트는 <12월의 코끼리 찾기>라는 귀여운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12월의 코끼리 찾기 제작기


전례가 없던 프로젝트라 실행 여부에 대해 고민이 많았지만, 역시나 조직문화 전문가 김성준 님의 전폭적인 도움을 바탕으로 12월 초부터 실제 기획에 들어갔다. 2개월 반이라는 긴 시간을 투입한 끝에 서베이 실행 > 결과 수집 > 분석 > 리포트 제작 > 발표를 완료할 수 있었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난 후 성준 님이 어떠셨냐는 질문을 하셨을 때, 우리 팀의 솔직한 회고는 '진짜 무식해서 용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허허허 허ㅓ'였다. 그만큼 어떤 프로젝트보다 정말 많은 노력과 공부, 시간이 필요한 프로젝트였다.



사람은 용감하면 안될 때 용감해진다



용감해서 시작은 할 수 있는데, 실행을 무식하게 할 수는 없으니(?)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혹시나 다른 스타트업도 우리처럼 조직문화 진단을 해야 한다면 도움이 될까 싶어, 어떤 것들을 고려하고 고민해야 했는지 정리해보았다.



1편에서는 아래 6가지 항목 중 1~3까지 전달하고자 한다.

1. 실행부터 고민하기
2. 질문 제작하기
3. 서베이 전달 방식
4. 1차 결과 분석하기
5. 정보 조직화와 정보 디자인을 동시에
6. 69페이지 종합리포트 완성
7. 분석 결과 공유 대장정

 






[실행부터 고민하기]

우리는 왜 조직진단을 하는가.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는 것의 무게감 인지하기.


조직문화 진단은 언제든지 하면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 팀도 실제로 훨씬 전부터 기획했으나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이유로 10월에 접기도 했었다.


애초에 조직진단의 목적은 조직발전에 기여하기 위함이다. 사내에 합의된 조직 지향가치가 없는데 오로지 특정한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만 시행한다면 구성원 모두가 결과를 정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또한 진단 결과는 부정적인 문제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특정한 이슈가 발생한 직후에 서베이를 한다면, 일부 응답자 편견이 너무 개입될 것이고 만약 질 좋은 답변을 수집한다고 해도, 조직 내부 상황이 전체적으로 문제 인식과 개선을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진단을 무조건 밀고 나가는 것도 답은 아니다.


따라서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는 것에 대한 무게감을 인식해야 한다. 오히려 문제'만' 인식하게 만들어 혼란만 만들지 않을지, 측정과 개선의 실마리가 될 합의된 가치들이 사전에 있는지. 예민하게 기획하고 실행해야 한다.






[질문 제작하기]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문제를 포착할 수 있을까


질문 제작은 성준 님이 틀을 정말 많이 잡아주셨다. 1차적으로 성준 님이 보내주신 참고할 수 있는 조직진단 프레임워크 등을 공부했다. 통상적으로 어떤 요인을 점검하는지, 조직진단은 어떤 요소로 이루 지며,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어떤 어휘를 쓰는지 등이었다. 다음으로 성준님과 스터디에서 3시간 동안 함께 질문을 만드는 연습을 했다. 질문의 카테고리는 대부분 이때 정해졌다.


큰 틀로는 다섯 가지 대요인을 꼽았다. 경영진과 리더들의 리더십, 웨딩북 헌법, 비전/미션/방향성이 잘 전달되고 있는지, 일하는 방식, 직무만족도 등이다.


 


2차로 우리 팀끼리 오랜 시간을 다듬어 최종 문항들을 뽑아냈다. 아래 카테고리에 따른 1~5점 질문과 함께 주관식 9문항을 더해 전체 49문항이 나왔다.


묻고 싶은 것은 너무 많지만 응답자가 질문 양에 겁먹지 않도록 최소화한 숫자다. 질문을 만드는 것도 어려웠지만 꼭 물어봐야 할 질문을 선정하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응답자 정보는 최소한만 받기로 했다. 조직에게 의미 있는 데이터를 얻을 수 있으면서도 최대한 개인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적정선을 고민했다.


직위 : 경영진/중간관리자/구성원

소속 본부

재직기간 1년 미만 / 1년 이상


이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데 경영진-중간관리자-구성원의 생각 차이가 보여질 것이며 동시에 경영진과 중간관리자로 구분해 리더십을 묻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개인이 드러날 수 있는 팀 단위가 아닌 본부로 물어본다는 것은 결괏값에서 본부별 상대적인 온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며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개선하는 몫 또한 본부 전체가 가져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재직기간 기준은 1년으로, 웨딩북의 문화적 변곡점 시기이자 개인이 자세하게 드러날 수 없는 기간으로도 알맞았다.


웨딩북 청담 오픈 & 사무실 이사 등 작년 초를 기준으로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고, 정확하진 않겠지만 조직문화팀이 생긴 3월 이후 입사자와 기존 구성원들의 생각 차이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서베이 전달 방식]

서베이의 성패는 솔직한 답변을 이끌어 내느냐 마느냐에 달려있다.


원래는 평범하고 객관적인 스토리로 전달할 계획이었는데, 혜운 님이 그걸로는 구성원들이 정말 솔직한 의견을 낼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12월의 코끼리라는 이름이 탄생한 것도 서베이 안내를 고민했던 단계에서였다.


현재를 제대로 진단하는 것 자체가 우리 전체를 위한 일임을 잘 전달해야 했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raw data 결과는 조직문화팀과 외부 전문가(성준 님)만 열람할 수 있다는 점을 확실히 해 안전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무엇 하나 어려움 없도록 자세한 서베이 사용설명서도 만들었다.


하지만 왠지 부족할 것 같았다. 서베이의 성패는 구성원의 의견에 정말 모두 달려있는데 이걸로 충분히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기회는 한번뿐인데.


우리의 진심이 보여져야 했다. 결국 혜운 님이 편지를 써서 읽으면 어떨까 하는 의견을 제안했고, 전사공유 날 우리는 발표와 동시에 이적 - 걱정 말아요 그대를 틀었다.


스크린에는 편지 내용을 담은 영상이 올라갔다. 혜운님이 촉촉한 겨울 감성으로 읽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는 마음 속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제발 걱정하지 말아요~


 


아래는 내용 전문.

음악과 함께 소리 내어 읽어보면.... 많이 오글거린다.

* bgm 틀기: https://youtu.be/Dic27EnDDls

안녕하세요. 조직문화팀입니다:-)

어느덧 날이 많이 추워졌습니다. 딱 1년 전인 지난 겨울엔 우리의 공간을 꿈꾸며 달리고 있었는데 어느새 우리의 공간 속에서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고 있네요.되돌아보니 겨우 1년이란 시간이 지난 것 뿐인데, 우리의 서비스와 일터에는 참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내년, 아니 당장 내일도 크고 작은 변화들이 계속될텐데 이런 변화들을 우리 모두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잘 만들어가기 위해 조직문화팀이 서포트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이야기 끝에 미래를 그리려면 현재의 우리 모습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잘 하고 있는 점, 더 발전시켜나가야 할 점, 개선해야 할 점 등을 짚어야 완벽하진 않더라도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다음 방향을 더 잘 만들어 갈 수 있을테니까요. 더불어 급변하는 조직에 맞춰 달려 오느라 숨가빴던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지난 날을 돌아볼 시간도 꼭 필요하고요.

사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해피아워, AMA, 웨딩북 스퀘어 등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과 시도들이 있었지만 짧은 시간 내에 조직규모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이런 시간들의 활발함이 더뎌진 건 안타깝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구성원의 반 정도만 알고 있는 2018년 7월, 웨딩북 헌법이 공표 되었을 즈음에만 해도 전사적으로 활발한 논의가 가능했던 건 물론이고 상돈님이 한 명 한 명 만나서 헌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고 들었어요. 그 때만 해도 인원이 20명 초중반 정도 였는데 1년 반 새에 인원이 50명으로 급격히 늘었고, 조직규모가 커지고 사업이 확장됨에 따라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이전처럼 쉽게 그리고 많이 하기가 어려워진 환경이 될 수밖에 없어진 거죠. HR강연에서 들은 건데, 30명이 넘을 때 HR제도를 완전히 다시 설계해야 할 만큼 조직이 급변하는 시기를 맞는다고 해요. 우리는 언제 30명이 되었는지도 모르게 20명대에서 50명대로 순식간에 늘어났으니 커뮤니케이션 적인 측면에서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던건 어찌보면 피할 수 없었던 일인 것 같아요.

따라서 조직문화팀에서는 이러한 변화와 상황을 인지하고, 온라인 서베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통해 웨딩북에 대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이번 시도에서 가장 핵심은 "솔직함"인데요, 이 서베이 직후 당장의 구체적 액션이 나오는 건 어려울 수 있지만 우리가 지금 잘 하고 있는 점, 개선해야 할 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함께 인지함으로써 더 나은 발전방향을 고민해보고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조직이 커질텐데요, 이런 시도와 시간들이 더 잦아지게 함으로써 아무리 조직이 커져도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럼 없이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조직문화팀도 많이 고민하고 서포트하겠습니다. 그러니 늘 발전을 위한 이야기를 멈추지 말아주세요.

웨딩북 화이팅!




불타는 조직문화팀의 진심이 느껴지니








2편에서는 나머지 제작기를 마무리하고 12월의 코끼리가 어떤 결과들을 낳았는지를 정리해보려 한다.

코끼리 분석과 알리기 ; 웨딩북 조직문화 진단 회고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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