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베이 데이터 분석부터 리포트 제작 그리고 공유까지.
지난 1편에서는 조직문화 진단의 필요성과 '12월의 코끼리 찾기' 이름의 유래, 어떤 점을 고려하며 조직문화 진단을 실행했는지 설명하는 제작기를 시작했다.
이번 편에서는 제작기 후반부(4-7)를 마무리하고, 진단 이후 어떤 결과들을 얻었는지 설명해보려 한다.
1. 실행부터 고민하기
2. 질문 제작하기
3. 서베이 전달 방식
4. 1차 데이터 분석하기
5. 정보 조직화와 정보 디자인을 동시에
6. 69페이지 종합리포트 완성
7. 분석 결과 공유 대장정
*웨딩북의 조직문화 진단 제작기의 전반부가 궁금하신 분들은 1편으로 > 우리는 코끼리를 찾아야 한다; 웨딩북 조직문화 진단 회고 1편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는 서베이 도구로 모아폼을 사용했다는 점을 공유한다. 역시나 성준 님이 추천해주신 덕분인데, 오로지 설문조사에만 특화되어 있는 서비스다 보니 구글 서베이 폼에 비해 훨씬 자유롭고 세밀한 설문조사 제작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5점 척도를 어떤 모양으로 매기게 할 것인지, 5점과 1점 척도 밑에는 어떤 표시 글을 쓸 것인지 이정도 디테일한 커스터마이즈가 가능한 점이 좋았다. 다음에도 일상적인 서베이가 아닌 중요한 설문조사를 계획한다면 다시 모아폼을 쓰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딱 적합한 도구를 발견한다는 건 정말 큰 차이를 낳는다.
(주)웨딩북 소속 전원 50명을 대상으로, 서베이는 연말에 진행됐다. 각 직군에 맞는 리더십 질문이 달라 서베이 자체를 6개로 나눠 제작했었다. 금요일이었던 12월 27일이 마감일이었는데, 나는 연말 휴가를 앞두고 있었던 터라 제출 요청 메세지를 보내고 나니 1년 치 농사를 끝낸 느낌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조직진단은 시작하지도 않은 거라는 걸
결과적으로 42명의 응답을 받았다. 누가 안 했는지 체크할 수 없는 익명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높은 참여율이었다.
보통 응답 자체에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구성원들이 하나의 점수로 줄을 세우거나 성실하게 답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하던데, 전문가인 성준 님이 보기에도 그런 답변이 없어 보인다고 하셨다.
꽤나 주관식이 많았던 터라 부담스럽거나 귀찮음을 느끼지 않을까 많이 걱정했었다. 우리의 진심이 조금은 통했구나ㅠㅠ 서베이 전달 방식과 이름에 많은 공을 들인 보람이 있었다.
또한 믿음이 한번 더 굳건해졌다. 역시 우리 구성원들은 조직문화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에 가치를 아는구나라고.
설문지 자체에도 신경을 썼었다. 응답자 경험도 우리에겐 UX라고 생각해 직급이나 평가해야 하는 리더십이 달라 질문이 다른 경우, 최대한 혼선을 없애 위해 서베이 폼 자체를 6종으로 분리했다.
기본적으로는 응답자에게 직접 입력하게 했던 직급, 소속 본부, 1년 이상/미만 재직 기간로 데이터를 분류할 수 있었다.
전반적인 결과는 생각보다 긍정적이었다. 1 전혀 아니다 ~3 보통이다~ 5 매우 그렇다 가 5점 척도의 기준이었는데 가장 높은 항목의 평균점수가 4.48이고 가장 낮은 항목의 평균점수가 3.10일만큼 전반적으로 점수가 보통 이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문항에 따라 평균을 내보았더니 생각보다 확실한 차이들이 보였고 이 지점들이 우리가 1차로 분석할 곳으로 보였다.
본부별 온도 차이
직급별 온도 차이
재직기간별 온도 차이
처음에는 역할을 나눠 효율적으로 작업할까 했지만 서베이 분석도, 우리 구성원들이 직접 응답한 데이터를 만져보는 것도 처음인 우리라 각자 숫자를 만지고 그 의미를 직접 파악해보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조금은 돌아가더라도 필요해 보이는 시간이었다는 말이다.
결국 우리는 같은 로우데이터를 가지고 각자 엑셀과 싸워보기로 했다. 성준 님이 우리가 직접 리포트도 제작해보면 어떻겠냐라고 제안을 해주셨던 터라 리포트라는 결과물 형태는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어떤 단계로 작업을 해야 할지도 감이 안 잡히는 단계였기에 우선은 데이터 속에 빠져보는 것이 당시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며칠 후, 각자가 분석한 결과를 가지고 만나기로 한 회의에서 우리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혜운 님과 나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결과물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혜운 님은 엑셀 데이터를 바탕으로 각 분야의 차이를 정리해 표와 해석을 중심으로 문서에 정리하던 와중이었고, 나는 숫자 소수점이 무더기인 이 데이터에서 각 분야의 차이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히트맵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히트맵에 대한 내용은 조금 있다가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인데, 빈 셀을 제외하고 모든 칸에 숫자가 있었고, 아래처럼 범주에 따른 색이 칠해져 있었다.)
결국 리포트라는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둘의 사고가 완전한 역순이었다. 나는 히트맵의 표현과 결과를 바탕으로 혜운 님 같은 서술을 더하려 했고, 혜운 님은 분석 내용을 담은 문서를 바탕으로 시각화는 다음 단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로 의도를 설명하고선 너무 어이가 없어서 같이 한참을 웃었다ㅋㅋㅋㅋ 마치 MRI을 찍는다면 두 뇌의 모양이 다를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말도 안 되는 청신호였다. 우리도 모르게 각자 할 일을 찾아갔던 것이다. 둘 다 1차로 유의미한 분석 지점은 알고 있으니 좀 더 깊고 세심한 분석 내용을 채우는 것은 혜운 님이 맡고, 나는 그것을 어떻게 더 잘 시각화할지를 고민해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가 협업의 진짜 시작이었다. 이후 데이터를 분류하는 것에서부터 종합 리포트를 완성하기까지 우리 팀의 여정을 정리해본 그림이다.
STEP 1 & 2 : 데이터 분류 및 1차 분석
STEP 3 : 완전 반대로 접근했던 정리 방법
STEP 4 : 정보 조직화와 정보 디자인을 동시에
STEP 5 : 69페이지 종합리포트 완성
당시에는 우리가 어떤 개념의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일개미는 일을 하는 거실뿐 뚠뚠.
이제서야 전문가들이 만들어둔 개념으로 해석해보면서 각자가 정보 조직화와 정보 시각화를 맡아 동시에 진행했던 것이라 알 수 있었다.
혼돈 상태의 데이터를 분류하고 질서를 부여해 정보의 사용 목적과 환경에 맞게 구조적으로 체계화하는 작업.
조직화한 정보를 사용자에게 더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그래픽 요소를 활용하여 데이터가 정보로서 의미가 생성되도록 형상화하는 것.
혜운 님은 분석 내용을 맡는데 전념하기로 결정하며 2차로 데이터를 더 깊이 파기 시작했다.
1차로 분석했던 틀이었던 본부, 직급, 재직기간 간의 온도차에서 그치지 않고 2가지 요소를 엮어 보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면 본부 + 재직기간을 더해 평균값을 내고 A본부의 1년 이상 재직자와 B 본부의 1년 이상 재직자의 온도차를 분석해보는 것. 직급 + 재직기간을 엮어도 새로운 정보가 나온다. 왜 이 질문에 대해 입사 1년 이상된 중간관리자와 미만인 중간관리자의 생각이 다를까 같은 것 말이다.
이렇게 한번 더 들어간 정보 재배열(관계 맺기)은 우리에게 더 세밀한 분석 포인트를 가져다주었다. 혜운님은 당시를 떠올리며 아주 작은 차이에도 어떤 의미가 있을지 깊이 분석하고자 했다고 기억했다.
실제로 1차 때는 보이지 않던 다양한 주안점들이 쏟아졌다. 분석을 깊이 들어갈수록 가설과 추정은 많아지지만 조직문화팀이 그간 인식하고 있었던 조직 내 작거나 큰 문제를 통해 오히려 숫자 이면에 숨은 맥락을 더 찾을 수 있었다.
한편, 나는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시각적인 요소를 어떻게 사용해 쉽게 전달할지를 고민했다.
참고 자료로 받았던 다른 회사의 진단 리포트는 대부분 소수점의 결괏값 + 막대그래프를 통해 분석 결과를 표현하고 있었다. 뭔가 아쉬웠다. 가장 문제라고 생각한 것은 문제가 문제로 안 보인다는 점이었다. 소숫점 이하의 숫자들과 막대그래프 높낮이의 차이 정도로는 독자에게 제대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어 보였다.
그래서 1차 분석 때 생각해낸 것이 히트맵이었다. 기존에 시각화 방법을 잘 알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매일 즐거보는 미세먼지 앱이 생각났고 색깔로 지역별로 좋고 나쁨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점을 우리도 사용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리서치를 해보았는데, 실제로 데이터를 손쉽게 비교하기 위해 널리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었다.
1~5점 척도에서 색깔 범주는 아래와 같았다. 전체 평균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 개선점이 조금 더 드러날 수 있도록 3-3.5점을 중간값 색깔로 정했다.
그 외에도 시각적인 요소를 고민한 부분은 두 가지였다.
혜운 님이 주관식 내용을 분석해 카테고리화 해둔 것을 이용해 카테고리명으로 카운팅 했다. 한 답변에 여러 포인트가 있을 때는 복수로 카테고리를 세었다. 카테고리명과 숫자를 써서 나열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문항처럼 한 번에 상대적인 비교가 되도록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히 영역기반 시각화의 대표적인 트리 맵을 발견 했고 적용했다.
히트맵에서 사용한 컬러코드와의 통일성을 위해 부정적인 답변은 빨간색으로, 긍정적인 것은 초록색으로. 가치판단이 없는 답변은 노란색 위주 배경을 넣었다.
혜운 님이 추가로 구성하기를 제안했던 것이 바로 본부별 문항 순위표였다. 본부별로 어떤 점이 긍정적이고 개선할 점인지를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본부 평균을 기준으로 하는 문항 순위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전체 평균에 대비해서 본부 평균이 어떤 편인지도 판단할 수 있었다.
너무 좋은 구성이라고 생각해 바로 시작했고, 어떤 점을 시각화할 수 있을까 했을 때 한눈에 전체 평균 대비한 본부 평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한눈에 알아봤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때 예전 9시 뉴스 마지막 즈음에 항상 나오던 주요 기업 주식 현황표가 생각났다. 위/아래 화살표로 어제 주가 대비 오늘 주가가 높은지 낮은 지를 쉽게 표시했다. 그걸 적용하기로 했다. 앞에서도 언급한 컬러코드 통일성을 위해 코스피 차트와 색은 반대로 썼다.
이렇게 혜운 님은 분석 내용을 서술해 채워주고 분석을 더 풍성하게 만들만한 새 구성요소를 제안하면 나는 그것을 시각화할 방법을 고민했고,
반대로 내가 리포트 제작을 하다 전체 구조상 추가할 분석 요소가 있으면 혜운 님에게 요청했다.
우리는 마치 스포츠팀 같았다.
그렇게 조직문화팀이 최종으로 내놓은 리포트 전체 구조 아래와 같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각 구성의 하나의 예시만을 넣었다.
1. 전문가 분석
2. Executive Summary 전체
(1) 분석 내용
(2) 문항 순위표
3. Executive Summary 본부별
(1) A 본부
a. 분석 내용
b. 문항 순위표
4. A 항목 총평 (e.g 리더십)
(1) 문항별 주요 분석
a. A-1 문항 주요 분석
- 전체 평균 및 문항 순위 표기
- 문항별 분석 내용
- 본부별 온도차
- 직급별 온도차
- 재직기간별 온도차
- 중간관리자 내 재직기간별 온도차
(당시 웨딩북은 4개의 본부가 존재했고, 항목과 문항은 리더십 16개, 헌법 7개, 비전/미션/방향성 3개, 일하는 방식 17개, 직무만족 5개. 주관식 총평 4개 이렇게 6가지 항목, 49개 문항으로 구성되었다.)
자체 분석 이후 성준 님께 전문가 코멘트를 요청드렸다. 타 회사의 조직문화 진단 실례를 잘 아시는 전문가의 입장에서 지금 웨딩북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려주는 메시지는 우리에게도, 구성원에게도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분석 내용에서 주안점을 꼽아 요약한 내용과 전체 평균을 기준으로 문항 순위표를 넣었다. 순위표를 통해 상위 점수를 받은 질문과 하위 점수를 받은 질문을 한눈에 보고 전사 조직문화의 긍부를 한눈에 알 수 있게 했다.
본부별 분석 내용의 주안점을 꼽아 요약한 내용과 전체 평균 대비 본부별 평균을 기준으로 정리한 문항 순위표를 넣었다. 전체 순위표와 마찬가지로 상위 점수를 받은 질문과 하위 점수를 받은 질문을 한눈에 보고 각 본부의 조직문화가 전사 대비 어디에 와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게 했다.
항목이라고 칭하는 것은 대요인을 말한다. 리더십, 헌법, 비전/미션/방향성, 일하는 방식, 직무만족, 주관식 총평으로 나뉘며 해당 항목에 대한 간략한 총평과 함께 어떤 요인을 질문했는지를 구성했다.
각 문항에 따른 심화된 분석과 데이터를 제공했다. 전체 평균 및 문항 순위 표기는 물론이고 본부별, 직급별, 재직기간별, 중간관리자별 온도차를 시각화해 우리가 노력해야 할 부분을 한 번에 인식할 수 있게 구성했다.
그렇게 69페이지에 달하는 최종 리포트가 완성됐고 우리는 집에 가고 싶었다.
보통 기업에서 조직문화 진단 결과는 경영진에게 보고를 위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데이터를 구성원들로부터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경영진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경영진의 조직 전략 설정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우리는 구성원과 리더들의 삶에도 큰 개선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인 만큼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투표를 했는데 결과를 공개적으로 오픈하지 않는 것과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HR/조직문화 일을 하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게다가 구성원이 자신의 의견을 기꺼이 솔직하게 공유해주는 것은 정말 대단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도 우리의 고민과 과정을 알리고 결과를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반면, 조직문화팀의 관점이 깊이 담긴 분석 내용 공유는 다른 이야기였다. 각 본부의 문제는 그들이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결과를 직접 분석할 수 있게 하면 우리보다 상황에 맞는 원인을 더 잘 분석하고 더 좋은 개선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해석을 전사로 공유한다면 오히려 각 본부가 더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애초부터 막게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됐다.
따라서 조직문화팀의 해석은 거시적인 관점으로 조직 전체를 봐야 하는 경영진까지만 공유하고 그 외 리더들과 구성원들에게는 해설이 없는 답지를 제공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초반에 결정했던 공유 계획은 두 차례였다.
- 경영진 : 조직문화팀 분석 내용을 포함해 모든 내용이 담긴 완전판 리포트
- 전사공유 : 조직문화팀 분석 내용을 뺀 전체 평균 데이터 + 본부별 평균 점수 데이터 리포트
하지만 성준 님과 논의 후, 우리가 크게 놓친 부분이 있음을 발견했다. 문제는 본부별 온도차였다.
각 항목과 문항 당 본부별 온도차가 전사에 바로 공유될 경우, 본부를 담당하고 있는 리더와 구성원은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특히 리더십에 대한 문항이 많았으므로 상대적으로 낮게 나온 본부의 리더는 부끄러울 것이고, 구성원은 다른 본부와 비교해 더욱 리더와 조직을 탓하게 되어 비관적이게 볼 것이다. 우리는 개선하자고 공유했으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의도치 않은 공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좋은 점수를 받은 본부는 어떤가. 리더와 구성원 모두가 낮은 점수의 본부에 집중하기에 바빠 자신들의 문제는 쳐다보지도 않을 가능성이 컸다. 어떤 본부라도 문제없는 곳은 없을 텐데 각 문항에 대해 1위 본부와 4위 본부가 보이는 순간 자연스레 순위만 남게 된다.
더불어 코끼리 결과의 상대적인 격차가 조직 내 가십처럼 이야기되는 것도 절대 지양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특히 수치심을 느낀 중간관리자들이 조직문화 개선을 외면하게 된다면 모든 게 말짱 도루묵이었다. 성준 님이 이 부분을 특별히 강조해주셨는데, 본부별로 리더들과 따로 시간을 잡아 먼저 본부의 결과를 알려주고 그들의 사정을 듣는 시간도 필요할 것이라고 제안해주셨다.
다시 한번 우리가 왜 조직문화 진단을 하고자 했는지를 상기했다. 우리 모두가 잘하는 점과 개선할 점에 대한 공감을 갖고 함께 더 나은 방향을 위한 의지를 다지는 것이 목적이 아닌가.
즉, 조직 전체가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개선을 위한 방향을 잡게 하고, 개인은 스스로 인지하고 자정 하는 노력을 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려면 공유 계획은 더 세심해져야 했다.
경영진 외에는 해설 없이, 각 본부별 리더는 해당 본부 데이터만 알 수 있고, 미리 리더에게 본부 데이터를 공유해 심리적인 안전감을 만들 것.
그 외 전체 구성원들에게는 전체 평균 중심 데이터만 공유해, 특정한 그룹의 구분 없이 모두가 자기반성과 개선의 노력을 할 수 있도록 큰 메세지를 던질 것.
변경된 공유 계획은 이랬다.
- 경영진 : 조직문화팀 분석 내용을 포함해 모든 본부의 데이터가 담긴 완전판 리포트
- 각 본부별 리더십 : 조직문화팀 분석 내용을 뺀 전체 평균 데이터 + 문항 순위는 해당 본부 것만 + 문항별 데이터 구성은 본부별 온도 차이만 (그 외 직급별, 재직기간별, 중간관리자별 온도차는 모두 제거)
- 전사공유 : 전체 평균 데이터 + 전체 평균 문항 순위로만 구성된 리포트
'이제 해결됐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만큼 리포트 버전이 많아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경영진용, 본부별 4종, 전사공유용 리포트가 다 달라야 한다는 거구나!
우와! 이제 알았어!
정말 많은 공부와 시간, 노력을 투입한 프로젝트지만 그 결과로 웨딩북이 얻은 것은 더 많았다.
가장 신기했던 결과였다. 우리가 조직진단 결과를 공유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구성원들의 입에서 '코끼리'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조직 내에서 문화적인 문제점 이야기를 꺼낸다는 건 항상 어려운 이야기다. 하지만 '코끼리'는 말하기 쉬웠다. 그게 코끼리가 가진 힘이었다.
이후 회의와 미팅 곳곳에서 이런 표현들이 자주 들렸다.
'코끼리에서 보면~' '이거 코끼리 아닌가요?' '구성원들이 코끼리에서 말했듯이'
모두가 문제를 서슴없이 말하는 것만 해도 엄청난 변화였다.
추상적이고 무거운 조직문화 문제가 귀엽게 지칭할 수 있는 대상이 된 것이다. 솔직히 이렇게 좋은 효과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1편의 시작에서 말했듯이 진단은 액션을 만든다. 진단이 없을 때는 문제가 특정되지 않기 때문에 각기 다른 가정으로 문제들을 정의해 풀리지 않는 의구심과 회의감을 가지기에 쉽다.
하지만 조직진단을 통해 전체 구성원이 같은 문제지를 받고 모두 같은 개선점에 합의했다면 이후 해결책은 분명해진다.
이로써 손대기 힘들던 조직문화 문제는 손에 잡히는 개선점으로 요약되고, 내부의 불평 거리를 찾는 대신 이미 정의된 모두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집중하게 된다.
매년 12월에 코끼리를 찾을 거라는 계획은 생각보다 힘이 컸다. 경영진과 리더십이 올 연초부터 코끼리 결과에서 포착된 문제들을 어떻게 하면 미리 키우지 않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많은 액션을 낳기도 했다. 이제 매년 같은 척도를 기준으로 상대적인 올해 데이터가 나올 것이라는 가정은 더 이상 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큰 힘이 된 것이다.
실례로 현재 작업 중인 웨딩북 헌법 ver2. 인 원칙 제정 논의에서도 많은 부분이 '어떻게 하면 코끼리에서 나온 문제를 개선할지'가 주요 어젠다였으니까.
12월의 코끼리 찾기 글을 통해 웨딩북 조직문화에 대해 궁금하시다는 메세지를 많이 받았다. 웨딩북 조직문화 전반이 담긴 팀페이지를 공유하고자 한다. 많이 놀러 오시고 좋은 분들 많이 지원해주세요=)
► 웨딩북팀의 모든 것: https://team.weddingbook.com/
<12월의 코끼리 찾기> 프로젝트는 우리 만의 방법을 찾느라 많이 고생한 프로젝트다. 그래서 다른 스타트업이나 담당자분들에게 도움이 될수 있도록 회고에 더 많은 내용을 담고자 했다. 특히 노력한 부분이 있다면 실제 참고자료를 제공하고자 애쓴 것이다.
1편에서 요청하신 분들에게 공유드렸던 질문 리스트와 2편에서도 준비한 리포트 pdf 샘플이 그 증거다.
웨딩북은 앞으로도 우리의 고민과 배움을 생태계에 더 많이 공유하고자 한다. 우리 팀이 좋은 책과 다른 팀의 콘텐츠에 도움을 많이 받은 것처럼 이를 통해 다른 분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일도 없을 거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회고를 끝내야 프로젝트가 정말 끝난 거라고 하던데